부활 제3주일(이민의 날) - 루카 24,35-48
◎ 주님, 저희 위에 당신 얼굴 밝은 빛을 비추소서. (또는 ◎알렐루야.)
○ 저를 의롭다 하시는 하느님, 제가 부르짖을 때 응답하소서. 곤경에서 저를 구해 내셨으니, 자비를 베푸시어 제 기도를 들으소서. ◎
○ 너희는 알아라. 주님은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기적을 베푸신다. 내가 부르짖으면 주님이 들어 주신다. ◎
○ 많은 이가 말하나이다.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 주랴-” 주님, 저희 위에 당신 얼굴 밝은 빛을 비추소서. ◎
○ 주님, 당신만이 저를 평안히 살게 하시니, 평화로이 자리에 누워 잠드나이다. ◎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1-5ㄱ
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3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5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35-48
그 무렵 35 예수님의 제자들은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너무 엄청난 사건이기에 그랬을 것입니다. 말이 그렇지, 돌아가셨다고 확신했던 분이 말씀을 걸어왔으니 놀람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먼저 다가가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경 말씀을 깨닫도록 하신 것입니다.
아무튼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긴가민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꾸짖으시기는커녕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오히려 당신 상처를 보여 주시며 음식까지 드시는 애정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은 어떤 설명보다 더욱 힘 있게 제자들을 설득하였습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 행위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스승님에게서 이 사랑을 먼저 느꼈습니다. 그러기에 애정을 확인받자 곧바로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머리보다 ‘마음을 먼저’ 열어 주신 셈입니다.
깨달음에는 애정이 언제나 이론보다 앞섭니다. 그러므로 ‘사랑 없는 이론’은 힘이 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해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부활을 ‘마음으로 승복’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부활 3주일 -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제가 대학 입학시험을 마쳤을 때 어머니는 저를 밤샘 철야 성령 기도회에 데려가셨습니다. 12월 31일 밤에 시작하여 1월 1일 아침에 끝나는 기도회였습니다. 저는 밤새 어떻게 견디나 걱정하며 마지못해 기도회에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생각 외로 놀라운 일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방언기도를 할 줄 알았더니 성령 기도회 지도자가 “이번 주에 여러분이 실천하며 살아야 할 성경 구절을 주님께서 성경 원어로 들려주시겠습니다.”하니까 조금 있다가 한 자매님이 일어나 처음 들어보는 말로 또박또박 말을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이 구절을 우리말로 해석해 주시겠습니다.”하니까 조금 있다가 사람들 사이에서 한 자매가 일어나 한국말로 성경 구절을 해석하였습니다. 의심이 많은 저도 전혀 속인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습니다. 1월 1일이 성모님 대축일이기 때문에 성모님께서 특별 선물을 주신다고 하며 처음엔 하늘나라의 향기를 맡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곤 사람들이 어떤 향기에 도취되었습니다. 다음은 웃음의 은사를 준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한참동안을 웃었습니다. 그리고 은사를 거두어가니 모두 뚝 그쳤습니다. 또 하늘나라의 음악소리를 들려준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음악소리에 도취해 있었고 앞에 있던 자매는 그 아름다움에 못 이겨 “주님~!”이라고 소리쳤습니다. 끝나고 저는 그 자매를 붙들고 어떤 소리가 들렸냐고 물었더니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음악소리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성령 기도회 회장님이 팔을 벌리고 걸어가니 걸어가는 것에 맞추어 서 있던 사람들이 줄줄이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습니다. 저도 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랬는지 심리적으로 혼자만 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자리에 함께 앉았습니다. 그리고 치유의 기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는 처음으로 이렇게 신기한 것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더 생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성경과 신학을 공부하다보니 그런 신기한 현상들은 더 이상 저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내가 신령한 언어로 기도하면, 나의 영은 기도하지만 나의 이성은 아무런 수확이 없습니다. ... 나는 영으로 기도하면서 이성으로도 기도하겠습니다. ... 나는 신령한 언어로 만 마디 말을 하기보다, 다른 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 내 이성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고 싶습니다. ... 이렇게 신령한 언어는 믿는 이들이 아니라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한 표징입니다.” (1 코린 14-22)하신 것과 같이 그 때 본 것들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성적이고 시각적인 것들은 어느 정도 믿음을 줄 수는 있지만 믿음을 더 증가시키기 위해 그것에 계속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제자들은 이미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았다는 말을 듣고 있었음에도 부활한 예수님을 실제로 보고는 매우 겁에 사로잡힙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라고 하시며 그들의 의심을 없애버리려 하십니다. 그래도 제자들은 기뻐하면서도 여전히 의심을 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먹을 것이 좀 있느냐고 물어보시고 그들이 준 생선토막을 그들이 보는 앞에서 잡수십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에 비하면 제자들에게 이렇게까지 하시는 것은 정말 불공평한 것처럼 보입니다.
처음으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셨을 때는 그녀가 옷자락을 잡으려하자 아버지께 올라가야 한다고 하시며 건들지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만져보라고 하시며 그래도 믿지 못하자 음식까지 먹어 보이십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도 그들이 당신을 알아보게 되었을 때 그들만 남기고는 사라져 버리셨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토마사도 한 명이 빠져있자 나중에 그를 위해서 한 번 더 나타나셔서 그에게 믿음을 주시고 교회에 남아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만 이렇게 특별하게 당신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사도들이 더 영성이 뛰어나서도 아니고 모자라서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도들, 즉 당신이 세우신 교회를 통해 당신이 세상에 증거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어떤 때는 개인들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오상의 비오성인의 예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교회는 비오 성인이 오상을 받았을 때 악에서 오는 것일 수 있다는 판단 하에 그가 신자들과 미사 하는 것을 금지시킵니다. 오상의 비오 신부님은 교회의 결정에 순명하고 몇 년 간을 혼자 다락방에서 미사를 드립니다.
이 교회에 순명하는 모습을 본 교회는 비오 신부님의 기적이 악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순명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신자들과 미사를 하도록 허락해 주었고 그가 돌아가신 후에 성인품에 올렸습니다. 어쨌거나 이것도 역시 교회가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은총을 알아보지 못한 예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도 역시 교회가 그 영성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회칙을 인준받으러 왔을 때 그는 교황님으로부터 직접 거부당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교황님께 특별한 꿈을 꾸게 하시어 그를 받아들이도록 하십니다.
교회가 개인들의 영성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하여 갈라진 형제 교회들처럼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를 박차고 나가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이들이 모두 사도들에게 와서 그 사실을 알렸지만 그들도 처음에는 믿지 못하였지만 나중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을 드러내 보이셨고 그것도 다른 이들보다 훨씬 자세히 드러내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세우신 교회를 특별히 사랑하시어 완전한 은총을 주시고 그 교회를 통하여 세상이 구원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 아무리 뛰어난 표징을 보인다고 하더라도 교회를 떠난다면 그것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떠나게 하는 것이 악입니다. 오늘 복음처럼 예수님은 어떻게 해서든 개인적인 체험들이 진리라면 교회가 인정할 수 있도록 특별하게 섭리해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을 외적으로만 보이시는 것에 만족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성령 세미나에서 이상한 현상들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으로 믿음이 생길 수 있지만 이성이 바탕이 되지 않은 믿음은 매우 약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당신의 몸을 보여주시고 음식을 먹어 보이시기까지 하신 이후에 이성으로 당신의 부활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을 설명해 주십니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개신교에서는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허락했기에 수백 개의 종파로 나뉘어졌습니다. 진리는 하나이고 교회도 하나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도움으로 온전한 진리를 선포합니다. 특별히 첫 교회의 수장이신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의 어떠한 예언도 임의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예언은 결코 인간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 하느님에게서 받아 전한 것입니다.” (2베드 1, 20-21) 이렇게 진리가 하나라면 교회가 한 진리 안에서 갈라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셨고 그 교회를 통하여 모든 이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성령님을 완전하게 부어주십니다. 이는 교회의 구성원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세우신 교회를 그만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영성에 도달하셨던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께서 돌아가실 때 “나는 교회의 딸로 죽는 것이 행복합니다.”하셨던 말처럼 우리도 교회의 한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교회 안에서 주님을 체험하고 증거할 것을 결심해야 하겠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 눈동자 속의 바다>
자식들로부터의 효도는커녕 갖는 박대를 당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는 연로하신 분들을 가끔씩 접할 때마다 가슴이 저며 옵니다. 저 역시 "부모님" 생각만 하면 속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기만 하기에 부모자식간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기가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중풍에 걸려 10년 이상 고생하신 아버지 병수발을 위해 아내와 자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회사에 사직서를 낸 효자, 그리고 아버지가 계신 바닷가로 훌훌 떠난 한 효자의 이야기를 읽고 오늘 내내 부끄러웠습니다.
아버지는 10년 전 중풍으로 쓰러지신 후 전신마비증세로 죽을 고생을 다해오셨습니다. 심각한 언어기능 장애로 하루 온종일 말 한 마디 못하고 그저 멀뚱히 허공만 바라보는 것이 아버지의 하루 소일거리입니다. 물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아버지였기에 아들은 하루 온종일 아버지 곁을 떠나지 못합니다.
새벽 4시, 눈을 뜨자마자 아들은 습관처럼 옆자리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바라봅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아버지의 코앞으로 바짝 귀를 가져다 댑니다. 가녀린 아버지의 숨소리를 확인한 후에야 안심한 아들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갑니다.
바다 일을 마치면 오전 8시 30분,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손수 아침밥을 짓습니다. 12시 30분, 저녁 6시 30분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아버지의 식사를 챙겨드립니다.
부자(父子)가 거처하는 집 담장은 다른 집과 달리 독특합니다. 10미터 길이의 담은 양끝만 높다란 돌담일 뿐, 가운데 7미터는 유치원생들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을 정도(무릎높이 정도)로 낮습니다.
돌담이 낮은 이유는 아들이 허물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늦가을, 방에만 누워있기 답답했던 아버지가 하루는 마루에 나와 겨우 앉아 계셨습니다. 아버지 곁에 나란히 앉아본 아들이 아버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어딘가 살펴보았더랍니다.
그런데 아들은 한 가지 가슴 아픈 일을 확인합니다. 혼자서 일어서지 못하는 아버지의 눈높이에서는 돌담만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제야 아들은 마루로 기어 나오신 아버지의 의도를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바다를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두꺼운 돌담이 바다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들은 돌담을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높이 1m 30cm 두께 60cm의 돌담을 묵묵히 부숴 나갔습니다. 3주 만에 높다란 돌담이 있던 자리엔 앞이 훤히 트인 낮은 벽돌담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아버지는 마루로 나와 계십니다. 돌담을 허문 뒤에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루로 기어 나오십니다. 아들은 그 아버지 곁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봅니다. 쪽빛 바다. 아버지를 돌아봅니다. 당신의 눈동자에도 바다가 들어와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바다를 보여드리기 위해 담장을 허무는 아들의 모습 참으로 기특해 보였습니다.
불편하신 아버지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평화를 드리기 위해 애쓰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이웃에게 해야 할 도리가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 앞에 발현하실 때마다 건네셨던 첫마디 말씀은 평화를 빌어주는 말씀이었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잠시나마 예수님과 결별한 제자들의 상황은 참으로 절망적이었습니다. 더 이상 존재의 의미나 가치관, 위계질서나 규칙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의 심리적 상황은 그야말로 "갈팡질팡" "우왕좌왕" "안절부절"이었습니다.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제자 공동체를 눈여겨보셨던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한 최우선적 사목의 방향을 설정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평화와 위로, 부드러운 접근을 통해 안심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신 인사 말씀이 "평화가 너희와 함께!"이란 인사말씀이었습니다.
병고와 불행으로 인해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평화와 위로를 선물로 안겨주는 노력이야말로 그리스도 신자로서 실천해야할 으뜸가는 의무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 불안에 떠는 이웃들에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느님께 맡기세요." "마음 편히 가지세요." "제가 기도할게요."와도 같은 위로와 격려의 말을 보다 자주 건네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3,13-15.17-19
그 무렵 베드로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3 “여러분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 그분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이사악의 하느님과 야곱의 하느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14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17 이제,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18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시리라고 예고하신 것을 그렇게 이루셨습니다. 19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