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간 수요일] 사람의 마음 (마르 7,14-23)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지켜보고 그가 지은 집을 보고 하느님을 찬미한다. (1열왕 10,1-10)
그 무렵 1 스바 여왕이 주님의 이름 덕분에 유명해진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까다로운 문제로 그를 시험해 보려고 찾아왔다.
2 여왕은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향료와 엄청나게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싣고 예루살렘에 왔다. 여왕은 솔로몬에게 와서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을 모두 물어보았다.
3 솔로몬은 여왕의 물음에 다 대답하였다. 그가 몰라서 여왕에게 답변하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4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모든 지혜를 지켜보고 그가 지은 집을 보았다.
5 또 식탁에 오르는 음식과 신하들이 앉은 모습, 시종들이 시중드는 모습과 그들의 복장, 헌작 시종들, 그리고 주님의 집에서 드리는 번제물을 보고 넋을 잃었다.
6 여왕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내가 임금님의 업적과 지혜에 관하여 내 나라에서 들은 소문은 과연 사실이군요.
7 내가 여기 오기 전까지는 그 소문을 믿지 않았는데, 이제 직접 보니, 내가 들은 이야기는 사실의 절반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의 지혜와 영화는 내가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납니다.
8 임금님의 부하들이야말로 행복합니다. 언제나 임금님 앞에 서서 임금님의 지혜를 듣는 이 신하들이야말로 행복합니다.
9 주 임금님의 하느님께서 임금님이 마음에 드시어 임금님을 이스라엘의 왕좌에 올려놓으셨으니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사랑하셔서, 임금님을 왕으로 세워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게 하셨습니다.”
10 그러고 나서 여왕은 금 백이십 탈렌트와 아주 많은 향료와 보석을 임금에게 주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 임금에게 준 것만큼 많은 향료는 다시 들어온 적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며,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오는 악한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신다. (마르 7,14-23)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19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20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연중 제5주간 수요일 (1열왕 10,1-10)
열왕기 상권의 전반부 1-11장은 솔로몬의 치세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진다. 그 가운데서도 5-9장은 솔로몬 왕국의 최고 번영을 상징하는 성전 건축과 왕궁 건축 사건을 중심으로 다룬다. 그러나 이어지는 10장은 솔로몬의 타락을 통한 왕정의 변질을 다루고 있는 11장 직전에 위치하면서 솔로몬 왕국 번영의 최정점을 이중적인 관점에서 소개하고 있다.
즉 솔로몬에게 지혜와 더불어 부와 명성도 주시겠다고 하신 하느님의 약속이 최대로 실현된 정점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솔로몬과 이스라엘이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인하여 타락과 분열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분기점이라는 점에서 부정적 의미도 갖는다.
10장의 1-13절은 스바 여왕의 솔로몬 방문과 솔로몬의 대외 교역에 대한 추가 기사를 다루고 있고, 14-29절은 솔로몬 왕국의 부와 영광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나타난 일련의 사건들은 솔로몬 왕국에 대한 긍정적 묘사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솔로몬의 타락과 이스라엘의 분열을 나타내는 관점에서 부정적 의미를 또한 전달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선물로 주신 지혜가 믿음 안에서 선용되면, 부와 영광이라는 선한 결과를 가져 오지만,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오용되면, 오히려 그 지혜가 사람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배신하게 하고 멸망을 자초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있다.
특별히 10장 1-13절은 스바 여왕과 솔로몬 왕과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 9장 26-28절에서 솔로몬은 대외 무역을 활발히 전개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며, 동시에 그가 소유한 지혜의 명성은 이방 먼 나라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따라서 스바 여왕의 방문은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소문이 먼 이방 세계에까지 널리 확산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한 실례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본문은 솔로몬 왕이 한 여인에게 자신의 지혜를 입증하여 그 탁월성을 인정받게 된다는 측면에서, 그의 치세 초기에 등장했던 두 여인에 대한 친자소송 재판사건(3,16-28)과 정확히 대구를 이룬다.
이 두 사건은 솔로몬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명성을 얻게 된다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을 갖지만, 그 결과에 있어서는 확연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즉 두 여인에 대한 친자 소송 재판 사건 이후에는 솔로몬이 백성들로부터 왕으로서의 진정한 권위를 획득하여 이스라엘의 태평성대를 이룩하는 긍정적 상황이 전개되는 반면(4장), 스바 여왕의 방문 사건 이후에는 솔로몬이 많은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삼아 우상 숭배라는 타락의 길을 걷게 되고, 이로써 왕국 분열의 씨앗을 배태하는 부정적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11장)
한편, '스바'로 번역된 '쉐바' (sheba)가 어디인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스바 여왕을 이집트와 이디오피아를 통치하던 자로 묘사하고 있으며, 오늘날 흑인들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함의 후손 가운데 스바가 있어(창세10,7 ; 1역대1,9 ) 아프리카 출신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심부 지역에 대한 고대 명칭으로 본다. 고대 기록에 보면, 남아라비아에는 미네아인, 사베아인, 카타바이나인, 하드람인등 네 민족이 거주했는데, 이들 중 사베아인(sabaeans), 즉 스바의 백성들이 가장 융성했다고 한다.
이 곳은 유향, 몰약, 보석등과 같이 고대인들이 부러워하는 각종 진귀한 산물들의 집산지였으며, 통상로인 남아라비아를 지배하면서도, 비교적 안전한 변방지역에 위치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나라의 여왕이 솔로몬 왕을 직접 방문했다는 것은 그만큼 솔로몬의 지혜의 명성이 대단했다는 것을 시사한다.(4,34)
아마도 솔로몬의 명성은 이스라엘을 정기적으로 통과하던 아라비아 무역상인들에 의해 스바 여왕의 귀에 까지 자연스럽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솔로몬에 대한 소문이 예루살렘에서 아라비아에 이르는 2,400km 정도나 되는 먼 거리까지 미칠 정도로 대단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여기 '명성을 듣고' 에서 '듣고' 에 해당하는 '쇼마아트' (shomaath)는 완료 동사가 아니라 동작이나 상태의 지속성을 나타내는 능동 분사라는 점에서, 스바 여왕은 솔로몬에 대한 소문을 한두 번 듣고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소문을 계속적으로 듣다가 결국 솔로몬의 명성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방문했음을 알 수 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 왕을 방문한 데에는 이스라엘과 통상 관계를 수립하려는 의도도 있었음을 배제할 수 없겠지만, 저자는 스바 여왕의 솔로몬 방문 목적은 '까다로운 문제로 그를 시험해 보려고' 하고 명시하고 있다.(1) 즉 그녀의 방문 목적이 소문으로만 들었던 솔로몬의 지혜를 자신이 직접 시험하여 확인하는 것에 있었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스바 여왕이 제기한 '까다로운 문제'는 왕들간의 대화에서 단순히 언어적 유희나 가벼운 재치를 내용으로 하는 수수께끼나 비유가 아니고, 참된 지혜를 소유한 사람만이 해결할 수 있는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는 질문으로 봐야 하며, '시험하다' 라는 의미로 번역된 된사 '나싸' (nasah)도 솔로몬의 지혜가 과연 귀로만 들었던 명성에 부합하는지를 단순히 ' 입증하려 했슴' (prove)을 나타내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많은 수행원'에서 '수행원' 으로 번역된 명사 '하일' (hail)은 원래 '힘'(1사무2,4) 이나 '능력'(시편110,3)을 뜻하는데, 본문에서는 '군대'(탈출14,4)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니까 단순히 여왕의 수행원이라기 보다는 무장한 군인들을 포함한 위용을 자랑하는 여왕의 일행을 표현한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에 해당하는 '카베드 메오드' (kaved meod)는 '심히 많은(막강한)' 으로도 번역되어 여왕 일행의 위용을 더 강조해서 표현하고 있다.
스바 여왕이 가져온 물품으로 향료와 금과 보석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금'에 대해서 '엄청나게 많은' 에 해당하는 '라브 메오드' (lav meod)라는 강조적 표현까지 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스바의 막강한 경제력을 나타내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풍부한 양의 향료와 금과 보석 등이 스바 여왕으로부터 솔로몬에게 주어졌다.(10-11)
솔로몬의 이같은 물질 축적은 한편으로는 부를 약속하신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으로 볼 수 있다.(3,13) 그러나 솔로몬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스바와 같이 막강한 경제력을 갖춘 이방 나라들을 부러워하며 부의 축적에 집착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같은 많은 양의 물질을 축적하는 것에 집착한다는 것은, 역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과 같은, 왕정의 통치자로서 본연의 자세에서 소원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같이 솔로몬의 재물 축적은 이방의 '많은' 여인을 취하는 또 다른 축적으로 이어지고(11,1) 급기야 하느님을 멀리하고 이방의 우상들을 숭배하는 영적 범죄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소개되는 물품 가운데 향료는 스바 여왕이 살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아라비아에서 생산되는 것은 그 질이 좋았기에 매우 고가로 거래되었다. 금은 아라비아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바 여왕이 엄청나게 많은 금을 가지고 올 수 있었던 것은 활발한 국제 무역을 통하여 많은 금을 축적했기 때문이다.
보석은 아라비아 지역에서 풍부하게 생산되었던 여러 종류의 진귀한 보석을 가리킨다. 이러한 값진 선물들을 당시 주요 운송 수단이었던 낙타(약대)에 실어 2,400km정도나 멀리 떨어진 예루살렘까지 가지고 왔다는 것은 스바 여왕이 이번 여행에서 기대하는 바가 상당히 컸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왕은 솔로몬에게 와서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을 모두 물어보았다." (2)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기 위하여 다양한 종류의 질문을 미리 마음에 준비했던 것을 말하는데, 천지 만물의 원리와 법칙을 밝히는 자연 현상 뿐 아니라, 정치, 종교, 문화를 총망라하는 광범위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헌작 시종들" 은 "술 관원들" 로, 왕이 마실 술을 선별하고, 왕실의 주연에 관계된 일들을 책임 맡은 고관들을 뜻한다. 이들은 직무상 왕을 가까이에서 섬겼던 까닭에 왕을 시해하기에도 용이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이들은 항상 왕의 돈독한 신임을 받고 있는 자들 중에서 임명되었다.
"임금님의 지혜와 영화는 내가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납니다." (7)
여기서 '지혜' 란 머리의 영민함 만을 뜻하지 않고, 인간 경험의 전영역을 망라한다. 솔로몬이 그동안 이룬 건축과 통치의 업적, 그의 신중한 태도와 탁월한 지식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종교적 심성까지 모두 포괄하고 있는 것이 '지혜'이다.
한편 '영화' (복) 로 번역된 '토브' (tob)는 일차적으로 '선한'(탈출18,17), '아름다운' (신명6,10)이란 뜻을 갖는다. 그러나 성경에서 '토브'는 용모의 아름다움 같은 심미적, 감각적 측면(창세24,16)과 고귀하고 진실된 성품적 특성(이사38,3), 또한 악과 대조되는 선으로서의 도덕적 특성(2역대 14,1)과 선호하는 감정(신명23,16)등을 나타내는 데 사용한다.
따라서 본문의 '토브'는 '번영' (prosperity)이나 '부함' (wealth)으로 번역한 것과 같이 솔로몬의 물질적 축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솔로몬의 성품과 관련해 고귀함, 진실함, 의로움, 선함 그리고 그에게서 풍기는 인격적 매력등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지혜가 사리판단이나 인식능력과 관련된 두뇌의 명석함에 머물지 않고, 심성과 윤리적 행위등을 포괄하는 인격적 측면에까지 연결된 것으로 열왕기 저자는 본다. 이것은 역대기 하권 9장 6절의 병행구절에서 '지혜의 위대성'만을 언급하는 관점과 구별되는 것이다.
스바 여왕이 '주 임금님의 하느님' 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솔로몬을 칭찬한 본질은 솔로몬을 향한 하느님의 권면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9) 즉 하느님께서는 이방 여왕의 입을 통해서 자신이 주권적으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다는 사실과 그 세우신 목적을 깨닫게 하심으로,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언제나 겸손하게 하느님의 존재와 통치를 인정하며, 하느님께서 세우신 목적대로 살아갈 것을 솔로몬에게 간접적으로 경고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본문에서 성경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물질적 성공과 번영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면서, 솔로몬의 영적인 상태와 관련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같은 내용 이면에는, 이후 있을 일들에 대한 어떤 불길한 징조를 전달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본문에서 솔로몬이 외적인 측면에서는 확연히 드러날 만큼 눈부신 성과를 이룩했음을 기록하면서도, 그가 더 온전히 지켜나가야 할 신앙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가 영적인 측면에서 지금 바른 길로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를 질문하게 만든다.
연중 제5주간 수요일 복음(마르7,14~23)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황,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20~23)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5장 18절에서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란 표현이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인간의 악한 마음이 여러 행동에 투영되지만, 특히 언어 생활을 통해 드러남을 강조적으로 보여 준다.
마르코 복음 7장 21절의 '나쁜 생각들'을 뜻하는 '호이 디알로기스모이 호이 카코이'(hoi dialogismoi hoi kakoi; evil thoughts)가 7장 21절과 22절 전체의 주어이다.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6장 19절에서는 '나쁜 생각'을 따로 떼어 사람을 더럽히는 대표적 실체로서 말하기보다는, 단지 악한 요소 중에 하나로만 표현하는 차이점이 있다.
마르코 복음 7장 21절의 '디알로기스모이'(dialogismoi)의 기본형 '디알로기스모스'(dialogismos)는 '생각'이라는 뜻외에 '변론', '의논', '다툼' 등의 의미도 있다. 그리고 '나온다'로 번역된 '에크포류온타이'(ekporeuontai; come; proceed)는 원형 '에크포류오마이'(ekporeuomai)의 직설법 현재 동사로서 '나오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마르코 복음 7장 21절과 22절에 나와 있는 나쁜 생각들이 인간의 역사가 끝나는 그날까지 늘 마음속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계속적으로 나쁜 생각이 흘러나오는 이유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인간의 마음이 본질적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이다(예레17,9; 창세6,5참조).
결국 마르코 복음 7장 16절과 20절에서 말하는 사람을 더럽히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what comes out of man)이란 바로 '나쁜 생각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 '나쁜 생각들'이 마르코 복음 7장 21절과 22절에서 12가지 구체적인 것들로 나열되고 있다.
이 열두 가지는 원문 성경에서는 모두 주격으로 사용되어 마르코 복음 7장 21절과 22절의 전체 주어인 '나쁜 생각들'을 열두 개의 항목으로 다시 풀어 주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 열두 개의 항목을 십계명의 순서와 무관하게 나열하고 있는데, 십계명의 순서에 따라 이것을 재구성하면, '중상'에 해당하는 '플라스페미아'(blasphemia; blasphemy; slander; 신에 대한 불경, 모독, 독성, 죄받을 언동, 욕설, 명예 훼손)는 제2계명에, '살인', '악의', '시기', '교만', '어리석음'은 제5계명과 연관되고, '음란', '간음', '방탕'은 제6계명, '도둑질'은 제7계명, '사기'는 제8계명, '탐욕'은 제9~10계명에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십계명 가운데서 대인 관계를 규정한 7계명 중에서 부모와 관련된 제4계명만 빠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불륜'에 해당하는 '포르네이아이'(porneiai; fornications; sexual immorality)는 '포르네이아'(porneia)의 복수형인데, 결혼의 유무와 관계없이 행해지는 모든 종류의 성범죄를 가리킨다. 이 단어는 '간음'이나 '방탕'과 비교해 볼 때 보다 폭넓은 의미에서의 성적 범죄 행위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성적 윤리를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간음'에 해당하는 '모이케이아이'(moicheiai; adulteries)는 '모이케이아'(moicheia)의 복수형인데, 일반적으로 결혼한 남녀가 자신의 아내나 남편이 아닌 사람과 성적 관계를 갖는 행위를 가리킨다(마태5,28참조).
'탐욕'에 해당하는 '플레오넥시아이'(pleoneksiai; greed)는 '플레오넥시아'(pleoneksia)의 복수형인데,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과도하게 이익을 얻으려는 욕망을 말한다. 여기서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이러한 과도한 욕망들이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날 때는 여러 가지 양상으로 표출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악의'에 해당하는 '포네리아이'(poneriai; malice; wickedness)의 단수형 '포네리아'(poneria)는 '노동', '아픔'을 뜻하는 '포노스'(pono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가 주는 모든 해악들을 가리킨다.
'시기'에 해당하는 '옵탈모스 포네로스'(opthalmos poneros; envy; an evil eye)는 '악한 눈'으로 직역되는데, 여기서 '악한 눈'이란 특별히 상대방을 경멸하는 눈짓 가운데 나타나는 오만함이나,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나타나는 시기와 질투 등을 가리킨다.
상대방이 잘되는 것을 보고서 자신의 우월함이 깎이는 것처럼 느끼는 열등 의식인 '질투'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어리석음'에 해당하는 '아프로쉬네'(aphrosyne; foolishness; folly)는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지각없이 어떤 일에 대해 몰상식하고 도의에 어긋나며 무분별하게 행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말한다.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마르 7,14-19).”
예수님 말씀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어떤 사람이 죄인이 되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의 탓이다.”입니다.
(남 탓도 하지 말고, 음식이나 어떤 물건 탓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아담과 하와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는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선악과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이 하느님 명령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유혹했기 때문이다.” 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그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지은 것은 아담과 하와 자신입니다.
(물론 죄를 짓게 만드는 유혹도 죄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는 말을 하지 않고,
하와 탓이라고 책임을 하와에게 떠넘겼습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창세 3,12).”
(이 말에는 그 여자를 주신 하느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아담의 말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면,
선악과를 만들어 놓고선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즉 하느님 잘못이라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하와도 자기가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고 사탄에게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창세 3,13).”
하느님께서는 두 사람의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각자의 죄를 물으셨습니다.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 7,20-23)”
여기서 예수님 말씀은 “사람의 마음은 원래 악하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하면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더러워집니다.)
산상 설교의 ‘참 행복’ 선언을 보면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하느님을 볼 것이라는 말씀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곳에는 더 이상 하느님의 저주를 받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도성 안에는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가 있어,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마에는 그분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입니다(묵시 22,3-4).”
도대체 어떻게 해야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
마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나 자신이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으로는 죄의 법을 섬깁니다(로마 7,18-25).”
이 말은,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이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대단히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자신의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나는 비참한 인간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그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이고, 예수님께 기도드리는 이유입니다.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마음이 깨끗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 없이, 또 기도하지 않으면서, 자기 혼자 힘으로 수행을 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는 ‘어느 정도 수준’이 아니라,
하느님(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수준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낙타와 바늘귀에 관한 말씀을 하신 뒤에,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10,27).”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은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일에도 적용됩니다.
하느님(예수님)께 의지해야 하고, 하느님(예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 8,13-14).”
자신의 힘만으로 마음이 깨끗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자만심을 버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힘을 받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첫 번째 방법은 ‘기도’이고, 두 번째 방법은 ‘사랑 실천’입니다(루카 11,41).
(두 가지를 동시에 함께 실행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