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간 목요일]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마태오 24,42-51)

2017. 8. 30. 오후 4: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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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31일 목요일


[연중 제21주간 목요일]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마태오 24,42-51)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이 믿음으로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어 격려를 받고 기쁘다고 전한다. (1테살로니카 3,7-13)
7 형제 여러분, 우리는 이 모든 재난과 환난 속에서도 여러분의 일로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 때문입니다. 8 여러분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다고 하니 우리는 이제 살았습니다.
9 우리가 여러분 덕분에 우리의 하느님 앞에서 누리는 이 기쁨을 두고, 하느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10 우리는 여러분의 얼굴을 보고 또 여러분의 믿음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게 되기를 밤낮으로 아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11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친히,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가 여러분에게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시기를 빕니다.
12 여러분이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도,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13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라며,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성실히 일하고 있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처럼 되라고 하신다. (마태오 24,42-5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2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45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46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8 그러나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49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50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51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제1독서(1테살3,7~13)

"우리는 여러분의 얼굴을 보고 또 여러분의 믿음에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게 되기를 밤낮으로 아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10)

사도 바오로와 그 일행들이 테살로니카 교인들을 위해 평소에 하는 기도이며, 특히 테살로니카 교인들이 기쁨을 제공해 준 데 대한 감사와 보답의 차원에서 얼마동안 계속된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기도의 구체적인 내용은 테살로니카 1서 3장 11~13절에 나온다. 여기서 '밤낮으로'에 해당하는 '뉙토스 카이 헤메라스'(nyktos kai hemeras; night and day)끊임없이 기도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기도하고 있습니다'에 해당하는 '데오메노이'(deomenoi; praying) 역시 현재분사로서 특별한 시간의 제약없이 계속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말이다.

테살로니카 교인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사도 바오로와 일행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날 때마다 기도하는 것이다.

또한 '아주'로 번역된 '휘페렉페릿수'(hyperekperissou; earnestly)'~을 뛰어넘어''휘페르'(hyper), '~밖으로''에크'(ek), 그리고 '보통이 아니게'라는 뜻의 '페릿소스' (perissos)의 합성어로서 '보통을 훨씬 초월하여 엄청나게'라는 뜻이다.

이것은 더 이상 강조할 수 없을 만큼의 정도를 강조하는 단어인데, 사도 바오로는 여기서 테살로니카 교인들을 위한 자신들의 중재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는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테살로니카 1서 3장 10절의 후반절은 사도 바오로 일행이 밤낮으로 아주 간절히 기도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첫째는 테살로니카 교인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이미 테살로니카 1서 2장 17절과 18절, 3장 1절에서도 말한 적이 있다. 사도 바오로와 그 일행은 사탄의 방해가 있는 와중에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테살로니카 교인들이 나아갈 좋은 길을 얻도록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는 테살로니카 교인들의 믿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부족한'에 해당하는 '휘스테레마타'(hysteremata; what is lacking)'휘스테레마'(hysterema)의 복수형으로서 '어떤 상태에 미치지 못하여 부족한 것들'이라는 뜻이다.

사도 바오로는 지금까지 테살로니카 교인들의 믿음이 마치 완전한 것처럼 말하다가 (1테살1,3.8; 3,6~8) 갑자기 여기서 그들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을 한다.

앞에서의 이야기는 그들의 믿음이 견고하다는 것이었지 완전해서 더 이상 훈련이 필요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들의 믿음은 환난과 시험을 극복해 낸 견고한 것이었지만 아직도 성장의 과정에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채워주다'는 의미로 번역된 '카타르티사이'(katartisai; may perpect; may supply)의 원형 '카타르티조'(katartizo) 훼손된 부분을 수선하거나 남은 부분을 하나하나 채움으로써 온전케 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사실 테살로니카 교인들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은 '이 정도면 됐다'라고 안심해도 좋은 믿음의 분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 누구도 믿음의 완성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24,42-51)

  "깨어 있으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2~44)

예수님의 재림 시기를 알지 못하는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 지를 교훈하는 내용이다. '깨어 있으라'에 해당하는 '그레고레이테'(gregoreite; stay awake!)'지켜보다', '주의하다', '경계하다'라는 뜻을 가진 원형 '그레고류오'(gregoreuo) 현재 명령형이다.

여기서 '지켜 보다'의 뜻은 단지 심판의 날을 눈을 뜨고 지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신차리고 주의하여 그날을 예비하라는 의미이다.

무관심과 나태, 영적인 깊은 잠에 빠져서 그날을 갑작스럽게 당황해 하며 맞이하지 말고 (1테살 5,3) 영적으로 각성하여 언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든지 주님을 맞을 준비가 상태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동사가 현재 명령형이라는 것은 그러한 상태를 항상 현재처럼 유지하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항상 자신이 살아가는 현재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처럼 예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을 명심하여라'에 해당하는 '에케이노 데 기노스케테'(ekeino de ginoskete; but understand this; but know this)에서 '기노스케테'도 원형 '기노스코'(ginosko)2인칭 복수 현재 명령형으로 보아 '그러나 너희들은 이것을 알라'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에 해당하는 '포이아 퓔라케'(poia phylake; at what time of ight; the hour of night  when)에서 중요한 단어는 '퓔라케'(philake)이다.

'경점'(更點)으로 번역될 수 있는 '퓔라케'(phylake)망루나 성문에서 파수를 보는 병사가 경계하며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퓔랏소'(phylasso)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경계하는 것', '파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에서는 46회 용례 중에서 36회가 '감옥'(prison)으로 번역되었는데, 감옥은 보초병이 죄수들의 동태를 지키기 위해 잠자지 않고 경계 근무를 서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보호병이나 성(城)의 파수병이 경계 근무를 서면서 교대병과 교대하는 시간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였다.

하루의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밤'으로 규정한다면, 이스라엘은 이 밤을 세부분으로 구분하였고, 로마의 지배 이후에는 밤을 네부분으로 구분하였다.

사실 도둑이 들어오는 시간을 현실적으로 아는 것이 불가능한 시간이다. 그 시간은 온전히 도둑의 마음에 달려 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재림하시는 시간을 도둑의 시간에 비유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역사의 한 시점을 선택하여 재림할 것인데, 당신이 몸소 심판을 주도하신다는 뜻을 계시한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for at an hour you do not expect, the Son of Man will come)라고 마태오 복음 24장 44절 후반의 동사가 미래적 의미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원문에서는 '올 것이기'에 해당하는 '에르케타이'(erchetai)는 원형 '에르코마이'(erchomai)의 현재 시제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재림은 매우 긴박한 일이며, 항상 현재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마태오 복음 24장 37절 이하에는 사람의 아들의 재림 때에도 노아 때처럼,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일과 같이 그럴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신의 영혼의 구원 문제나 생명의 말씀에 관심없이 이 땅에만 머리를 박고 세속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영원을 놓칠 수 있는 가능성이 100%이다.

지구가 멸망하든, 태양계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든, 핵전쟁이 일어나든, 어느 분들이 에언한 것들이 그대로 내 눈 앞에서 이 지구상에 이루어지든 우리는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처럼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어야 한다.

주님 재림 시기의 불(不)예측성처럼 나의 개인적 죽음의 시간도 불(不)예측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죽고, 언제 주님께서 오시든지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문제는 그런 일이 필연적으로 일어났을 때의 나의 영혼 상태가 중요한 것이다. 주님 심판 대전에 할렐루야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하고, 주님의 십자가 앞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본질적인 것이다.

그러러면 미리미리 우리 영혼이 은총의 지위를 회복하여야 하고, 그 은총의 지위를 잘 관리해야 하고, 먼훗날 우리들의 모습속에서 성부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 예수님의 모습과 성모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기뻐하시고 안아주실 수 있도록 그분 뜻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깨어 있어라.>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4,42).”

“깨어 있어라.” 라는 말씀은, 항상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말의 심판을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너희의 주인”은 심판관으로 오시는 예수님입니다.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은,

“종말과 재림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모르지만, 틀림없이 이루어질 일이고,

지금이라도 곧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입니다.

언제인지 모르니까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날이 오늘일 수도 있으니까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앞의 36절에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로지 아버지만 아신다.” 라는 말씀이 있는데,

아무도 모르고 있어야 공평한 심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마태 24,43).”

여기서 ‘도둑’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이고, 집주인은 심판을 받아야 할 우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준비하지 않고 방심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종말과 재림이 갑작스러운 일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도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는데, 도둑이라는 말 자체에는 특별한 뜻이 없습니다.

(심판을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당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마치 도둑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날이 되면, 자기가 소중하게 가지고 있던 지상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을

모두 잃게 될 것이기 때문에...)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이라는 말씀은, “밤 몇 시에 올지는 몰라도

틀림없이 도둑이 온다는 것을 집주인이 알면”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종말과 재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늦어질 수도 있지만,

어떻든 예수님 말씀처럼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그날을 준비해야 하는 때는 언제나 항상 ‘오늘’입니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마태 24,44).”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일부러 ‘우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를 골라서

기습 공격하듯이 갑자기 오시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그러니 너희도 늘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다가

갑자기 그날을 맞이하는 일이 없도록.”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마태 24,45-47).”

이 말씀은, “깨어 있어라.” 라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 말씀인데,

여기서 ‘종’이라는 말은 좁은 뜻으로 보면 교회 지도자들이고,

넓은 뜻으로 보면 모든 신앙인들입니다.

모든 신앙인들로 생각하면, 주인이 우리에게 맡긴 임무는

각자 자신이 받은 은총을 잘 관리해서 ‘은총의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제때에’ 라는 말인데,

이 말을 신앙생활에 연결해서 생각하면 ‘언제나 항상’입니다.

 

신앙생활은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끊임없이 성실하게 해야 하는 생활입니다.

따로 정해진 시간이 없고, 따로 정해진 장소가 없습니다.

신앙인은 언제 어디에 있든지 항상 신앙인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어떤 특정 시간에 신앙인의 신분이 중지되는 것이 아니고,

또 어떤 특정 장소나 상황에서 신앙생활이 면제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면, 신앙인은 군대에 가도 학교에 가도 직장에 가도 늘 신앙인입니다.

주일이 아닌 날에도 바캉스 철에도 신앙인이고,

밥을 먹을 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신앙인입니다.

그렇게 평소에 꾸준히 성실하게 신앙인으로서 생활한다면,

언제 어떻게 종말과 재림이 이루어지더라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 종말은 두려운 날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완성되는 날이고, 신앙생활의 목적지에 도착하는 날이니까,

기뻐해야 하는 날이고, 행복한 날입니다.

종말, 재림, 심판을 준비한다고 해서 날마다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면서

죽는 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실한 신앙인이라면 살던 대로 살다가 기뻐하면서 그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3-34).”

이 말씀은 원래 현세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지만,

종말의 심판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추구하면서 살고 있는 신앙인은

종말, 재림, 심판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24,48-51).”

이 말씀은 겉으로만 보면, 종말과 재림의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는

어리석은 사람에 관한 말씀으로 보이지만,

내용을 잘 보면, 종말 때의 심판 자체를 무시하는 사람에 관한 말씀입니다.

(“심판 같은 것은 없다. 사람의 인생은 한 번 죽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사는 동안 실컷 내 마음대로 살겠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

안 믿는 사람들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들 가운데에도 종말, 재림, 심판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어서

믿음 없는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말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모르지만,

각 개인의 인생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임종 때에 지난 인생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오늘 회개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오늘의 묵상

주님께서는 이 지상에 있는 동안 각자의 재능과 재산, 시간과 건강을 잘 관리하도록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맡겨 주신 모든 것을 충실하고 슬기롭게 운영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재능을 훔치는 도둑은 게으름과 안이함입니다. 그 도둑에게 우리가 관리하는 것들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방종과 방탕은 주님께서 오실 때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사람의 지성과 지혜를 어둡게 합니다. 방탕한 사람들은 오실 주님을 기다리지 못하고 죽음의 졸음과 잠에 빠진 채 어둠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점점 키워서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흠 없는 사람,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기원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재난과 환난 속에서도 꿋꿋이 주님을 섬기고 있는 신자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었기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내적 기쁨을 누렸습니다. 사도는 영적 자녀인 그들의 기쁨이 줄지 않도록, 그들의 믿음이 계속 커지도록 자상한 아버지처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는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합리화하며 신앙생활을 등한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에게는 이 세상의 종말이 느닷없이 오지 않겠지!’ 하고 낙관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오십니다. 깨어 있음과 성실함의 지혜가 우리의 순례 여정을 꽃피게 함을 기억합시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공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2010년 8월 26일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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