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선한 포도밭 주인 (마태오 20,1-16)

2017. 8. 22. 오후 7: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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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선한 포도밭 주인 (마태오 20,1-16)


스켐의 지주들이 아비멜렉을 임금으로 세웠다는 소식을 들은 요탐은, 나무들이 가시나무를 자기들의 임금으로 세운 우화를 들려준다. (판관 9,6-15)
그 무렵 6 스켐의 모든 지주와 벳 밀로의 온 주민이 모여, 스켐에 있는 기념 기둥 곁 참나무 아래로 가서 아비멜렉을 임금으로 세웠다. 7 사람들이 이 소식을 요탐에게 전하자, 그는 그리짐 산 꼭대기에 가 서서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스켐의 지주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그래야 하느님께서도 그대들의 말을 들어 주실 것이오.
8 기름을 부어 자기들의 임금을 세우려고, 나무들이 길을 나섰다네.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고 올리브 나무에게 말하였네. 9 올리브 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신들과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10 그래서 그들은 무화과나무에게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였네. 11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이 달콤한 것, 이 맛있는 과일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12 그래서 그들은 포도나무에게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였네. 13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네. ‘신들과 사람들을 흥겹게 해 주는 이 포도주를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
14 그래서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그대가 와서 우리 임금이 되어 주오.’ 하였네. 15 가시나무가 다른 나무들에게 대답하였네.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나를 너희 임금으로 세우려 한다면, 와서 내 그늘 아래에 몸을 피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이 가시나무에서 불이 터져 나가,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을 삼켜 버리리라.’”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며,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들려주신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2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3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4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5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6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7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9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10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11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12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15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16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판관기 13-16장 : 삼손과 드릴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제1독서(판관9,6~15)
"스켐의 지주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그래야 하느님께서도 그대들의 말을 들어 주실 것이오." (7ㄷ)
판관기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분배한 다음부터 사무엘의 영도아래 왕정이 들어서기 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약속의 땅을 점령하고,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를 야훼 신앙안에서 단결시킨 여호수아의 시대는 가고 혼돈의 시대가 돌아왔다. 여호수아기의 저자는 땅과 율법의 관계를 보증에서 경고로 발전시킨다.
즉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전에는 율법에 대한 순종이 땅의 소유를 보증하지만, 그 땅에 정착하면서부터는 율법에 대한 불순종이 땅의 상실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판관기는 이 경고가 구체적 현실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하느님께 충성을 다하지 못하면, 그분이 선물로 주신 땅을 차지하고도  그곳에서 번영을 누릴 수 없다. 오히려 그 땅에서 무질서와 혼돈을 겪을 뿐이며, 약속의 땅이 문제의 땅으로 돌변할 것이다. 
이 혼돈의 상황 앞에서 사람들은 왕정의 도래를 고대한다. 그러나 왕정이 들어서면 과연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스라엘을 안정과 번영으로 인도하는 것은 이상적 훌륭한 제도가 아니라 참 임금이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충성이다.
오늘 독서에서 요탐은 아비멜렉이 임금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화를 통해 왕정제도가 쓸데없음을 전하며 격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나온다.
참 임금이신 하느님을 버리고 눈에 보이는 임금을 찾는 그들을 우화를 통해 비판하는 것이다. 스켐의 지주들에게 아비멜렉을 임금으로 세운 것은 마치 나무들 중에서 올리브나무도, 무화과나무도, 포도나무도 아닌 가시나무를 세운 것과 같다.
그것은 올리브나 무화과나 포도나무는 열매가 있는데 반해 가시나무는 아무 열매도 결실도 없는 나무이기에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헛된 것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가시나무 그늘 아래 사람이 몸을 피할 수 있는가?  가시나무에 무슨 그늘이 있으며, 가시나무 그늘 아래 어떻게 몸을 피할 수 있는가?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모세, 여호수아를 거쳐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이스라엘이 계약의 하느님,  참 임금이신 하느님을 섬기는 것을 거부하고, 인간이 만든 제도를 따르고자 하는 그들에게 부당성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우리의 마음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사람과 사람이 만든 제도와 형식과 틀 말고 온전히 만유 위에 하느님만을 향하고 있는가?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20,1-16)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요?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15)

한글 새 성경'나에게 합당하지'에 해당하는 '엑세스틴 모이'(eksestin moi; It is lawful for me)의 번역을 생략했는데, 포도밭 임자의 행동의 합법성을 강조하는 뜻이 있으므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내게 합당하지 않느냐?" (Is it not lawful for me to do what I will~?) 라는 뜻이 된다.

원문대로 하면, 자신의 소유를 자신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은 합당한 행위였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당신의 마음대로 하신다 하여도 그것은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며, 더군다나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은 절대 공의로우며 인간에게도 유익이 되는 선(善)한 것이기에, 인간이 왈가왈부할 성질이 못된다는 것이다.

'내가 후하다고 해서'에 해당하는 '호티 에고 아가토스 에이미'(hoti ego agathos eimi;

because I am generous; because I am good)에서 '에고'(ego; I)라는 일인칭 대명사가 독립적으로 사용되었다.

'에이미'(eimi; am)란 동사에 주어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에고'(ego)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후하고 관대하며 선한 자가 바로 포도밭 임자(주인)이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아가토스'(agathos)'윤리적으로 선하다'는 뜻도 있지만, '상대방에 대하여 너그럽다'는 의미도 지닌다. 말하자면, 놀고 있는 자를 고용하여 넉넉한 품삯을 준 포도밭 임자 자신의 행동을 가리킨다.

한편, '후하다고'를 의미하는 '아가토스'(agathos)대응되는 단어로서 '시기하는'으로 번역된 '포네로스'(poneros; envious; evil)'비열한', '무가치한'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의인인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관대한 은혜를 베푼 것을 도덕적으로 비열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비록 늦게 포도밭에 왔지만 동료가 후한 대접을 받은 것에 대하여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마땅한데, 이것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꾸짖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자신의 우월감을 타인과 비교하여 드러내기를 좋아할 뿐, 하느님의 입장에서 내려지는 크나큰 사랑을 볼 줄 모르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아담과 하와의 본성적 요소가 만드는 세속적인 가치관과 기준은 항상 하느님의 뜻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거룩한 안목으로 볼 때, 모든 인간들은 하느님의 자비심을 얻어 입어야 하는 죄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느님의 자비심을 무시한 채 모든 것을 세속적이고 본성적인 가치관으로 바라보며, 자기 우월감을 확인하는 데서 만족감을 얻는 어리석음에 빠진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본문은 바로 세속적이고 본성적인 가치관으로 감히 하느님의 주도권에 대해 판단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확실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마태 20,8-12).”

 

이 이야기에서 맨 먼저 온 사람들이 불평하는 것은,

맨 나중에 온 사람들이 자기들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 때문이 아니라,

일을 더 많이 한 자기들에게 품삯을 더 많이 주지 않는 것 때문입니다.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라는 말은,

그들이 나중에 온 사람들보다 더 많이 받기를 바라고 있었음을 나타내는데,

생각은 그렇게 했으면서 주인에게 말할 때에는 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온 사람들은 품삯을 적게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되었고,

인정 없는 사람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제자들이 다툰 일이 연상됩니다.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루카 9,46).”

(여기서 ‘가장 큰 사람’이라는 말은, ‘가장 높은 사람’을 뜻합니다.)

혹시 제자들은 부르심을 먼저 받은 사람이 더 높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그들 가운데에는 부르심을 먼저 받아서 고생을 더 많이 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부르심을 나중에 받아서 고생을 덜 한 사람이 있었을 텐데,

예수님께서 똑같은 사도로 뽑아서 똑같이 대우하시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품은 제자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야고보 사도와 요한 사도가 가장 높은 자리를 달라고 청한 일도(마태 20,21),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또는 바오로 사도가 과거에 박해자였다는 것을 문제 삼으면서,

다른 사도들과 똑같은 사도로서 일하는 것을 반대한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일을 문제 삼으면서

전체 교회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신자들 사이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신자가 되어서 더 많이 박해를 받고 고생한 사람들이

박해가 없을 때에 신자가 되어서 고생을 별로 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은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경우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박해자였다가 회개하고 신자가 된 사람들과,

공공연하게 죄 속에서 살다가 회개한 신자들에 대해서도

시비를 거는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마태 20,13-16).”

 

실제 현실에서는 맨 먼저 온 사람들의 불평이 정당하고,

주인의 행동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하늘나라에 관한 비유’입니다.

그 나라는 전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묻지 않는 나라입니다.

(참으로 회개해서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을 함께 기뻐할 뿐입니다.)

그 나라는 사도 마태오가 과거에 세리였다는 것도,

또 사도 바오로가 과거에 박해자였다는 것도 문제 삼지 않는 나라입니다.

순교자 스테파노와 박해자였던 바오로 사도가 형제가 되는 나라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고 그 나라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명과 구원을 얻게 됩니다.

참여하게 되는 영광도 똑같습니다.

(영광에 차이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21-22).”

하늘나라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 예수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나라이고,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어서 예수님의 영광에 똑같이 참여하는 나라입니다.

어떤 차별도 없는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교계 제도 안에 존재하는 직위, 계급, 신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것은 직무 성격에 따른 차이일 뿐이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을 차별하는 일도 아니고, 은총의 차별도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1코린 12,4-6).”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1코린 12,12).”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 12,27).”

몸의 지체 사이에서 더 높고 더 낮은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똑같이 한 몸일 뿐입니다.

 

그런데 비유의 내용을 보면, 맨 먼저 온 사람들이 주인에게 불평하긴 했지만,

그 불평 때문에 어떤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눈에 뜨입니다.

그 점을 생각하면, 주인이 그들에게 하는 말은 꾸짖는 말이 아니라,

잘 알아듣게 타이르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 나오는 포도밭 주인의 비유는 하늘 나라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아침부터 일한 사람에게나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사람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똑같이 하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셈법으로 시기 질투하는 일꾼들은 정의를 요구하는 사람들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영광의 차이가 있어도, 모두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기에 나보다 더 큰 다른 사람의 영광을 부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합니다.
포도밭 주인은 너그러운 하느님을 표상합니다. 맨 나중에 온 일꾼에게도 후하게 하루 품삯을 주신 하느님은 옹졸한 분이 아니심을 알려 줍니다. 저녁 무렵이 되어 일할 것이 없는 일꾼에게 일자리를 배려하시는 하느님께서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당신의 은총을 받아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남이 자신보다 더 인정받고 영광을 받을 때에 상처받고 시기심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인간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는 보잘것없는 일처럼 보일지라도 하느님 눈에는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들이 많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은 은총의 선물입니다. 신앙을 부모에게 물려받아 일찍부터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나 나이 들어 뒤늦게 하느님을 섬긴 사람이나 모두 은총의 자녀입니다. 이러한 은총에 감사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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