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10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밀알 하나 (요한. 12,24-26)

2017. 8. 10. 오전 5: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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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밀알 하나  (요한. 12,24-26)  


라우렌시오 부제는 로마 교회의 일곱 부제 가운데 한 분으로, 오늘날의 스페인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의 박해 때에 동료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체포되기 전에 라우렌시오 부제는 교회의 보물과 소유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의 행동에 분개한 박해자들은 온갖 고문을 가한 뒤, 석쇠 위에 눕히고 구워 죽였다.

그의 묘지는 캄포 베라노의 비아 티부르티나 근처에 있다.

훗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그곳에 그를 기념하는 대성당을 세웠고,

후 라우렌시오 성인에 대한 공경은 널리 퍼져 나갔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신다며, 하느님의 은총으로 여러분은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2코린 9,6ㄴ-10)
형제 여러분, 6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7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8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9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10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다. (요한 12,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제1독서 (2코린9,6-10)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 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9)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10)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고 진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코린토2서 9장 9절에서 구약 성경을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 사도 바오로가 인용한 성구는 시편 112장 9절이다.   

'불쌍한 이들에게 후하게 나누어 주니 그의 의로움은 길이 존속하고  그의 뿔은 영광 속에 치켜들리리라.' 

시편 저자가 여기서 찬양하는 의로움, 즉 '디카이오쉬네'(dikaiosyne; righteousness)'동료 인간들을 향한 올바른 행동, 친절, 은혜를 베푸는 의로움'이다. 이 단어는 마태오 복음 6장 1절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자선'의 의미이다. 

신명기 15장 7~11절이나 레위기 25장 35절 등에서 나타내는 대로 이러한 자선과 구제는 단순히 선민으로서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분명하게 '명령'되고 있는 '필수'사항이다. 

말하자면,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자는 불의한 자인 반면에 가난한 자와 함께 나눔을 실천하는 자는 의로운 자인 것이다. 

한편, 자선과 구제에 대한 신약 성경의 탁월한 가르침은 마태오 복음 10장 8절언급된 예수님의 가르침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은 바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명령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풍성한 은혜를 무상으로 거저 받았으며,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선과 구제, 그리고 의로움(의)의 가장 근원적이며 원초적인 동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는 본절의 표현은 무슨 의미인가? 

여기서 '존속하리라'로 번역된 단어는 '에케이'(echei)가 아닌 '메네이'(menei)이므로 '머물러 있다'(remain)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근본적으로 그 자선을 행한 사람의 의로움이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즉 시간에 종속되는 현세가 끝나고 영원이라는 세계가 펼쳐질 때,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의 의로움을 온 우주 앞에 드러내고 선포함으로써 그 사람의 의로움을 기려주실 것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그 사람의 의로움이 영원토록 남는다는 것이다. 

궁핍한 자,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는 보잘것 없는,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행한 의로움을 그리스도께서는 곧 당신께 행한 것으로 인정하시는다는 것(마태25,40)그 자선을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느님께서 갚으실 것이라는 사실(마태6,4)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10) 

코린토 2서 9장 10절부터 9장 15절까지는 자선 헌금으로 인해 상호간에 누리게 되는 제반 유익들을 밝히고 있다. 그 가운데 본절은 하느님께서 자선하는 자의 의로움의 열매를 풍성케 하실 것이라는 약속인데, 이것은 구약 성경을 간접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간접적으로 인용된 구약 성구는 바로 이것이다. '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이라는 전반절의 경우 이사야서 55장 10절'씨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라는 후반절의 경우 호세아서 10장 12절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 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 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해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라는 구절의 인용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구약 성경의 두 구절의 표현을 통합하여 인용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의로움을 행한 자에게 그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셔서 그의 의로움의 열매를 더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논증한다. 

코린토 2서 9장 10절에서는 하느님 법칙의 확고함을 알려 주는 세 개의 직설법 동사들쓰였다.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에서 '코레게세이'(choregesei)'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에서 '플레티네이'(plethynei), 그리고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에서 '아욱세세이'(auksesei)인데, 모두 미래 직설법 형태이다. 

여기서 미래 시제는 의지 미래로서 이 세 가지 목록이 하느님의 의지적 행하심으로 인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선언임을 나타낸다. 

본절에서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자선을 행한 자에게 자선을 더하도록 더 풍성히 채워주는 축복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그 사람의 자선을 통해 나타나는 결과, 즉 자선의 직접적인 열매라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작은 구제금을 통해서 그것을 풍성하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마치 농사를 위해 뿌리는 씨앗이 작고 보잘것 없지만, 그 가운데 이미 거대한 나무와 열매를 잠재하고 있는 것과 같이 하느님께서는 작고 연약한 것을 들어서 장차 크고 풍성하게 만드신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바로 하느님의 이와 같은 능력을 굳건히 믿었던 것이며, 코린토 교인들에게 요청되는 헌금의 자세 또한 바로 이와 같은 것이었다(2코린 8장,9장). 그들에게는 부요한 하느님의 놀라운 권능을 신실하게 부여잡는 것이 필요했다.

마치 이름없는 한 소년이 내놓은 오병이어가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았던 것처럼(요한6,5~13), 하느님께서는 코린토 교인들의 헌금을 통해 그 열매를 풍성케 하시고, 감히 인간이 상상하지 못하는 놀라운 축복으로 그 수확을 거두게 하실 것이다.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복음 (요한12,24-26)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4ㄴ) 

요한 복음 12장 24절에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즉 당신 자신의 대속(代贖)적 죽음이 갖는 의미를 밝히기 위해 이러한 관용구를 사용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죽음이 가져오게 될 놀라운 결과에 대해 씨와 열매의 비유를 통해

알게 하신다. 

여기서 '맺는다'에 해당하는 '페레이'(pherei; it produces; it brings forth)'페로'(phero)3인칭 단수 현재 시제로서 땅에 떨어져 죽은 씨앗에서 열매 맺는 것은 불변의 진리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 세상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전환점이 되는데, 그것은 '많은 열매'언급된 영혼 구원의 역사이다. 

많은 영혼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자유와 평화로 나아가게 될 것이 이 말씀 속에 함축되어 있다. 

또한 '열매'로 번역된 '카르폰'(karpon; fruit)'카르포스'(karpos)의 단수 목적격인데, 나무의 열매나 자손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비유적으로는 영적인 차원에서의 '결실', '산물'이라는 뜻으로도 좋다. 

70인역(lxx)에서는 이 단어가 히브리어 '페리'(pheri)의 번역어로 나타난다. '페리''자손'을 의미하지만, 비유적으로는 '행위의 열매'를 나타낸다(예레6,19; 호세10,13). 

그래서 여기서 '많은 열매'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으로써 온 세상에 흩어진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게 될 것이라는 뜻이 전달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다(요한11,52). 

그리고 또한 예수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믿음의 자녀들이 그분의 삶을 본받아 이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켜 갈  것이라는 의미를 전달해 준다. 

그들은 예수님의 전(全)인격을 본받게 되기에, 그들을 통해서 일어날 새로운 변화들이 기대된다(마태5,13~16).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죽음으로 끝난 일이 아니라,

부활의 전 단계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인류에게 새 생명을 주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일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묻혀서

많은 열매를 맺는 일과 같습니다.

순교자들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순교자들의 순교가 죽음으로 끝나는 일로만 보이겠지만,

그분들의 죽음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밀알 하나를 밭에 심는 일입니다.

여기서 ‘많은 열매’는 순교자들 자신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언하는 일은,

그 자신의 구원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순교를 하지 않더라도, 충실한 신앙인들의 신앙생활은 모두 다

밀알 하나를 밭에 심는 일과 같습니다.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그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신앙인들의 삶을 보고 인도를 받아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 사랑 실천, 봉사 등을

단순히 ‘희생’이라고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사실 밭에 심은 밀알은 겉으로는 죽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죽는 것이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1코린 15,42-43).”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1코린 15,58).”

예수님의 죽음은 부활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하나의 일입니다.

그처럼 우리도 죽음에서 부활로 바로 건너갈 수 있도록

지금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이 말씀의 뜻은,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고

육신의 목숨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은 그 생명을 얻을 것이다.”입니다.

요한1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5-17).”

 

권력과 재물을 탐하다가 인생의 말로가 비참하게 되는 사람을 자주 봅니다.

영원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허무한 것을 욕심내다가

그 자신의 인생도 허무하게 끝나는 사람은 대단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어리석은 사람의 말로를 보면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그 사람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을 따라가고 있으니 그런 사람들은 더욱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 12,26).”

 

이 말씀은 순서를 반대로 해서 읽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고,

예수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뒤따라가야 신앙생활이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공관복음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루카복음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루카 13,25-27).”

주님을 섬긴다고 주장해도 불의를 일삼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고,

제대로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주님의 집에(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송영진 모세 신부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은 자신의 재산과 재능을 이웃을 위해 기꺼이 봉헌하라는 권고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 사랑으로 봉헌되는 삶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사랑의 밀알, 생명의 밀알이 되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내어 주시고 구원의 원천이 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구원의 밀알이 되셨습니다.
로마 교회의 라우렌시오 부제는 자신의 죽음과 표양으로 로마의 회개를 가져온 밀알이 되었습니다. 푸르덴시우스 시인은 라우렌시오가 보여 준 신앙의 증거로 로마의 이교 신앙이 없어지게 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박해자들이 교회의 재산을 탐내자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석쇠 위에서 구워 죽이는 형벌을 기꺼이 받은 순교자입니다. 라우렌시오 성인은 ‘가난한 이들이 교회의 보물’임을 가르쳐 준 분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밀알이 되도록 하느님께 부름을 받았습니다. 가정 안에서 자녀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가르치는 밀알, 가난한 이들을 섬기고 자선을 베푸는 밀알,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는 밀알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희생되어야 많은 사람을 위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바치는 사랑의 희생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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