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일 수요일
[연중 제17주간 수요일]밭에 숨겨진 보물 (마태 13,44-46)
모세는 증언판 두 개를 들고 시나이 산에서 내려왔는데, 그 얼굴의 살갗이 빛나고 있어 사람들이 두려워하자 자기 얼굴을 너울로 가린다. (탈출 34,29-35)
29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의 손에는 증언판 두 개가 들려 있었다. 모세는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게 되었으나,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30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모세를 보니, 그 얼굴의 살갗이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31 모세가 그들을 불렀다. 아론과 공동체의 모든 수장들이 그에게 나아오자, 모세가 그들에게 이야기하였다. 32 그런 다음에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그에게 가까이 왔다. 모세는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였다.
33 모세는 그들과 이야기를 다 하고 자기 얼굴을 너울로 가렸다. 34 모세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그분 앞으로 들어갈 때는 너울을 벗고, 나올 때까지 쓰지 않았다. 나와서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였다.
35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는 것을 보게 되므로, 모세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들어갈 때까지는, 자기 얼굴을 다시 너울로 가리곤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나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아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고 하신다. (마태 13,44-46)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제1독서 (탈출기34,29-35)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의 손에는 증언판 두 개가
들려 있었다. 모세는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게 되었으나,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29)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모세를 보니, 그 얼굴의 살갗이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30) 모세는 그들과 이야기를 다 하고 자기 얼굴을 너울로 가렸다. (33) 모세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그분 앞으로 들어갈 때는 너울을 벗고, 나올 때에는 쓰지 않았다." (34)
'얼굴의 살갗이 빛나게 되었다' (29)
이것은 40일 동안 금식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접한 결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의 영광이 모세에게 임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빛나게 되었으나'에 해당하는 '카란'(qaran; shone; was radiant)은 '광채를 내다', '빛나다'라는 뜻이다.
모세의 얼굴에 서린 영광의 광채는 하느님과의 깊은 교제의 결과요 흔적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 광채는 하느님의 영광의 그림자요, 모세에게는 너무나 큰 영광이 되었다.
이러한 모세의 얼굴을 보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모세의 사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회의를 품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얼굴에 서린 영광의 광채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믿음이 아니라 가시적인 것으로' 하느님을 믿게 될 것과 자신에게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이 자칫 개인숭배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여 그 영광을 너울(수건)로 가리는 성숙한 신앙의 면모를 보였다(탈출34,33).
'두려워하였다'(30)에 해당하는 '와이르우'(wairu; and they were afraid)의 원형 '야레'(yare)는 '두려워하다'(창세18,15), '떨다'(이사60,5)라는 뜻이다. 즉 모세의 얼굴에서 나오는 빛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초인(超人)을 보는 것처럼 두려워하며 떨었던 것이다.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가 하느님을 만나서 교제를 나누었다는 증거를 가지고 돌아온 사실은 백성들에게 용기를 더해 주는 은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죄로 말미암아 심성이 굽은 자들은 오히려 두려워했던 것이다.
실로 죄와 은총은 공존할 수 없으며, 죄는 하느님의 은총 조차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자기 얼굴을 너울로 가렸다' (33)
이것은 모세가 자신의 얼굴에 비친 하느님의 영광스런 광채를 자랑의 도구로 삼거나 이것으로 인해 자칫 자신이 백성들로부터 신격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겸손한 행위였다.
'너울을 벗고' (34)
'벗고'에 해당하는 '야씨르'(yasir; he take off; he removed)는 '돌이키다', '벗어나다'(1사무6,12), '떠나다','물러가다'(탈출8,7), '옮기다', '벗겨지다'(이사14,25) 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 '쑤르'(sur)의 사역형으로 '떠나게 하다', '몰아내다'(1사무28,3), '제쳐두다', '물리치다', '거두다'(시편66,20)라는 뜻이다.
이것은 모세가 하느님 대전에서 너울을 벗고 대화를 나누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모세가 하느님 대전에서 벗은 이유는 하느님의 현존과 임재를 상징하는 천막에 나아갈 때마다 거룩하신 하느님의 영광을 몸소 접하고 새로운 능력을 받기 위해서였다.
연중 제17주간 수요일복음(마태13,44~46)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44~46)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와 좋은 진주의 비유는 천국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숨겨진'으로 번역된 '케크림메노'(kekrymmeno)는 '감추다', '숨기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크립토'(krypto; hid)의 수동태 완료 분사로서, 과거 어느 시점에 보물의 주인이 밭을 깊숙이 파고 그것을 숨겨 두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외세의 침략이 잦았던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그것도 은행이 없었던 시절에 값비싼 보물을 땅속에 숨겨 두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잠언 2장 4절에는 지혜를 구하는 것에 대해서 '네가 은을 구하듯 그것을 구하고 보물을 찾듯 그것을 찾는다면'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이야기는 세속 민담에도 종종 나타난다.
천국은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이 보통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실체이다. 그러나 그 가치는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사도 아깝지 않을 만큼 큰 것이다.
말하자면,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보물이 숨겨진 밭을 산 것처럼, 천국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비유에서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 보물이 그것을 발견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거기에 묻혀 있는 밭 주인의 소유라는 사회 규약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밭을 살 때까지 그 보물을 땅 속에 그대로 묻어 두고는, 집으로 돌아가 자신이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보물이 묻혀 있는 밭을 사 버린다.
원문에 나오는 '(그가) 가진'에 해당하는 '에케이'(echei), '팔아'에 해당하는 '폴레이'(polei), 그리고 '산다'에 해당하는 '아고라제이'(agorazei)라는 세 개의 동사의 시제가 모두 현재이다.
동사의 시제가 속담이나 일반적인 진리를 나타내는 현재라는 것은, 여기에 나타난 행위가 역사적으로 실제로 일어났던 과거의 어떤 특정한 일을 예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경우가 발생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되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진 것을 다 팔아'에 해당하는 '판타 호사 에케이'(panta hosa echei; all that he had)는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의 모두'를 말한다. 즉 그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모두 팔아 그 밭을 샀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가진 전 재산보다도 그 보물이 숨겨져 있는 밭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정말로 가치가 있는 것을 획득하기 위해 역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마태10,37; 마르코10,29).
한편, 두번째로 나오는 좋은 진주의 비유도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천국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하나의 비유로 끝나지 않고 유사한 내용의 비유를 더 말씀하시는 것은 그만큼 천국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강조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상인'에 해당하는 '안트로포 엠포로'(anthropo emporo; a merchant)에서 '안트로포'(anthropo)는 사람이란 뜻이며, '엠포로'(emporo)는 상업을 하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도매 상인'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안트로포 엠포로'는 '도매상을 하는 상인'이라는 말이다. 이 사람은 지금 좋은 진주를 구하기 위해 각처를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찾는'으로 번역된 '제툰티'(zetunti; looking for; seeking)는 '얻으려고 애쓰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제테오'(zeteo)의 현재 분사형으로서, 좋은 진주를 얻으려고 사방 팔방으로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에서 '발견하자'로 번역된 '휴론'(heuron)은 마태오 복음 13장 44절의 '발견한'으로 번역된 단어와 동일한 단어로서, '발견하다'는 뜻의 동사 '휴리스코'(heurisko)의 부정(不定) 과거 분사이며 그 뜻은 '발견했을 때'이다.
애쓰며 돌아다니던 상인은 좋은 진주를 얻고자 노력한 결과 아주 값진 진주를 발견했다는 사실만 다를 뿐, 두 사람의 상황은 동일하다. 그들은 자기들의 기대치 이상으로 훨씬 좋은 것을 발견한 것이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보물을 발견했고, '좋은' ('칼루스'; kalous; fine; goodly) 진주를 찾으로 다니던 상인도 자신의 기대 이상으로 '값진'('플뤼티몬'; polytimon; of great value; of great price) 진주를 발견했던 것이다.
이처럼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발견된 천국의 실체도 자신이 상상조차 못했거나 기대한 것 이상으로 훨씬 영광스럽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차 우리에게 이루어질 천국의 영광이 너무나 큰 것이기에 천국과 관계되어 당하는 현재의 고난은 능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서8,18)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마태 13,44-46).”
이 두 비유는 표현만 조금 다를 뿐이고, 같은 비유입니다.
여기서 ‘숨겨진’이라는 말은, 보물을 발견한 ‘기쁨’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고,
그 자체로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안 믿으려고 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에 관심 없는 사람은,
‘하늘나라’ 라는 보물을 보여주어도, 그것이 보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아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하늘나라가 ‘숨겨진’ 보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보물을 제대로 알아보는 눈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물로 생각하는가?”, 즉 가치관에 관한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라는 말씀을 하시자, 예수님을 비웃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루카 16,14).”
그들은 하늘나라와 그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보물로 생각하지 않고,
세속의 재물을 보물로 생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자들은 하늘나라의 보물을 보여주어도 기뻐하지 않고,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보물의 비유’의 표현만 보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보물을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비유에 들어 있는 가르침을 생각하면,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마찬가지로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을 열심히 찾았고,
많은 노력 끝에 마침내 발견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다시 숨겨 두고서는’이라는 말도 보물을 발견한 ‘기쁨’을 강조하는 표현이고,
또 보물을 확실하게 차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이 가져가지 못하게 숨겨 두는 것은 아니고,
악마가 방해하지 못하게 숨겨 두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것은,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 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비유의 표현만 보면, 비싼 보물을 헐값에 사려고
보물은 숨겨 두고 ‘밭’만 사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이것도 역시 비유의 가르침을 생각하면,
그냥 ‘밭’이 아니라 ‘보물이 있는 밭’을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즉 가진 것을 다 파는 것은, 밭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물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또 여기서 가진 것을 다 파는 것은, 그냥 ‘버리는’ 일이 아니라,
보물을 얻기 위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바치는’ 일입니다.
말하자면, 영적인 ‘투자’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최고로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들을 모두 바치는(투자하는) 것은 대단히 지혜로운 일입니다.
동전 두 닢을 봉헌한 어떤 가난한 과부를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일이 있는데,
우리는 그 가난한 과부를,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가장 귀한 보물을 얻은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 12,43-44).”
우리는 그 가난한 과부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또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사심 없이 기뻐하면서 자신의 생활비를 모두 다 헌금함에 넣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부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라는 귀한 보물을 얻은 것에 기뻐했기 때문에
자기의 생활비를 모두 다 바치면서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물을 얻으려고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는 것과
이미 보물을 얻었기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가진 것을 모두 바치는 것은
사실상 같은 일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박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태 2,10-11).”
우리는 동방박사들이 얼마나 부유한 사람인지는 잘 모릅니다.
또 그들이 바친 황금, 유향, 몰약이 얼마나 비싼 것인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전후 상황을 볼 때, 그들의 여행은 목숨을 건 여행이었을 것입니다.
오직 메시아께 경배를 드리겠다는 희망 하나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진주 상인의 비유’에 나오는 상인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예수님’이라는 보물을 얻었다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성모님이야말로 ‘예수님’이라는 보물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신 분입니다.
그것도 혼자서 차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그 보물을 함께 얻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활동을 도와드렸던 여자들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루카 8,3).”
여기서 그 여자들이 자기들의 재산을 얼마나 바쳤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라는 보물을 얻기 위해서,
또는 얻은 것에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는 점입니다.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는 가장 큰 계명에도 연결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친다는 뜻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우리 모두는 하늘 나라를 향하여 순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향하는 하늘 나라는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습니다. 하늘 나라의 보물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은 횡재한 사람처럼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서 3장 8절에서, 자신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무한한 가치를 지니기에 신앙인은 이 지상의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게 됩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도 신앙의 지식인 ‘서학’을 공부하면서 이 가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재산과 지위,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 신앙의 보물은 후손인 우리에게 상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르칠 때, 우리는 하늘 나라의 보물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영혼은 영광의 빛을 발산합니다. 모세 성인의 살갗이 빛난 것처럼, 믿는 사람의 영혼은 진주의 영롱한 빛을 발산합니다. 성경 공부와 교리 교육은 그 빛을 우리에게 지속시켜 줍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고자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하늘 나라의 여정은 험난한 길이지만 영광의 빛이 우리를 인도해 줍니다. 우리는 신앙의 고귀한 가치를 마음속에서 발견하며 살고 있습니까? 나의 가족과 이웃에게 이 귀중한 보물을 전하고 있습니까? 하늘 나라의 보물을 얻고자 우리가 포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류한영 베드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