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8주간 월요일]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마태 14,13-21)

2017. 8. 6. 오후 5: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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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8주간 월요일]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마태 14,13-21)


만나에 싫증을 낸 이스라엘 백성이 고기를 달라고 하자 모세는, 어찌하여 온 백성을 저에게 짐으로 지우시냐며 주님께 하소연한다. (민수 11,4ㄴ-15)
그 무렵 이스라엘 자손들이 4 말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5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생선이며,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나는구나. 6 이제 우리 기운은 떨어지는데, 보이는 것은 이 만나뿐, 아무것도 없구나.”
7 만나는 고수 씨앗과 비슷하고 그 빛깔은 브델리움 같았다. 8 백성은 돌아다니며 그것을 거두어서,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빻아 냄비에다 구워 과자를 만들었다. 그 맛은 기름과자 맛과 같았다. 9 밤에 이슬이 진영 위로 내리면, 만나도 함께 내리곤 하였다.
10 모세는 백성이 씨족끼리 저마다 제 천막 어귀에 앉아 우는 소리를 들었다. 주님께서 대단히 진노하셨다. 모세에게도 그것이 언짢았다. 11 그래서 모세가 주님께 여쭈었다.
“어찌하여 당신의 이 종을 괴롭히십니까? 어찌하여 제가 당신의 눈 밖에 나서, 이 온 백성을 저에게 짐으로 지우십니까? 12 제가 이 온 백성을 배기라도 하였습니까? 제가 그들을 낳기라도 하였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당신께서는 그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유모가 젖먹이를 안고 가듯, 그들을 제 품에 안고 가라 하십니까?
13 백성은 울면서 ‘먹을 고기를 우리에게 주시오.’ 하지만, 이 온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14 저 혼자서는 이 온 백성을 안고 갈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무겁습니다.
15 저에게 이렇게 하셔야겠다면, 제발 저를 죽여 주십시오. 제가 당신의 눈에 든다면, 제가 이 불행을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다. (마태 14,13-21)
그때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13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16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17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19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20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21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8월 5일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성모 대성전 봉헌 제1독서 (민수11,4ㄴ-15)-임언기신부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3.08.05)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제1독서 (민수11,4ㄴ-15)

 그들 가운데에 섞여 있던 어중이떠중이들이 탐욕을 부리자, 이스라엘 자손들까지 또 다시 울며 말하였다."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4)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생선이며,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나는구나." (5) 

'그들 가운데에 섞여 있던 어중이떠중이들'은 이스라엘과 함께 출애굽한 '섞여 사는 무리'(mixed multitude; rabble), '잡다한 족속들'이 포함될 수도 있고, 모계쪽만 이스라엘 민족(레위24,10)인 혼혈아들이 포함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회의 비주류 계층으로 누구보다도 불만이 많을 수 있고, 신앙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수가 있었다. 

'섞여 있던 어중이떠중이'로 번역된 '아싸프쑤프'(asapsup)탈출기 12장 38절나오는 '이국인' 즉 이스라엘 백성과 혈통이 다른 사람만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기 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함께 모여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시키는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있었던 일부 불만 세력들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탐욕을 부리다'로 번역된 '히트아우우 타아와'(hithauu thaawa)에서, '히트아우우'와 '타아와'동일한 어근을 지닌 단어이다. 

'히트아우우''원하다', '갈망하다'(잠언21,10), '사모하다', '바라다'(미카7,1)라는 뜻을 지닌 '아와'(awa)의 재귀형으로, '탐내다'(신명5,21)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타아와'는 '아와'(awa)동사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욕심', '탐욕'(시편106,14), '정욕', '욕심'(잠언21,25), '소원'(시편21,3)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어서 따라오는 내용으로 보아 이들이 가진 탐욕은 음식에 대한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동일한 어근을 지닌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한 것은 음식에 대한 그들의 탐욕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지나친 육체적 욕망이 결국은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신앙을 자극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까지 또 다시 울며 말하였다' (4) 

원문에 '아싸프쑤프'로 나오는 불만 세력들의 무리들이 이집트에서 먹었던 음식을 갈망하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도 그것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고,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줄까?' 하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주위 환경에 얼마나 쉽게 영향을 받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로 번역된 '와야슈뷰'(wayashubu)는 접속사 '와우'(wau)'돌아가다'란 뜻을 기본적으로 지닌 동사 '슈브'(shub)의 미완료 3인칭 복수형이 결합된 것이다. 

본문에서 이 '슈브' 동사는 '다시'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하느님께로부터 돌이켜 옛 행실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민수기 11장 1절의 말씀은 "백성이 주님의 귀에 거슬리는 불평을 하였다. 주님께서 그것들 들으시고 진노하셨다. 그러자 주님의 불이 그들을 거슬러 타올라 진영 언저리를 삼켜 버렸다." 이다. 

민수기 11장은 지금까지 진술되어 오던 민수기 내용의 전환전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출애굽 제1세대의 운명을 암시하는 복선이 민수기 11장 서두에, 특히 민수기 11장 1절과 4절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 '슈브'동사는 민수기 14장에 서술된 내용과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나서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슈브)이 낫지 않겠느냐고 서로 논의한 다음, 결국 한 우두머리를 세워 이집트로 '돌아가자'(슈브)고 결의한다(민수14,3.4).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그들이 광야에서 모두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고(민수14,35), 모세는 그 말씀을 전하면서 그들이 주님 뒤를 따르지 않고 '돌아선 탓'<배반했기('슈브')때문> 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민수14,43). 

이처럼 민수기 11장 4절의 내용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울며'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원망하고 불신앙하는 옛 행실(탈출15,24; 16,2; 17,3)로 '다시 돌이켜서' 결국은 이집트의 옛 죄의 노예 상태로 '돌아가려는' 주 하느님께 대한 '배반'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축에 둘러싸여 있으면서(탈출12,38; 19,13; 34,3) 고기를 달라고 통곡하였다. 아마도 이 가축들은 하느님을 위한 제사용으로 준비되었기 때문에 먹지 않았던 것 같다 (탈출5,3; 10,24-26). 

그렇다고 이들은 기근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매일 그들이 먹을 수 있을 만큼의 만나가 하느님께로부터 공짜로 제공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불평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식용을 다양한 먹거리로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느님을 향한 우리들의 불평과 원망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느님에 의해 기본적인 필요가 채워짐에도 불구하고, 더 좋고 더 풍요로운 것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하느님께서 이미 1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추라기를 보내어 고기를  먹게 하신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탈출16,1.13). 

이집트에서 나온 지 1개월 후 그리고 홍해를 건너 엘림을 지나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고기를 먹게 해 달라고 원망했고, 하느님께서는 메추라기를 보내어 진을 덮게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하느님을 믿고 간구하기 보다는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줄까?'라고 슬퍼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세 역시 '이 온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민수11,13)라고 말한 것으로 마찬가지였음을 알 수 있다. 백성이나 모세나 모두 1년 전 신 광야에서 메추라기 사건을 별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신 광야에서의 메추라기 사건이 일회적이었다는 점(탈출16,13),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제 그 고기를 한 달 간 구역질이 나도록 먹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점(민수11,20)을 참고하고, 

 둘째로 봄철에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홍해를 건너 이동하는 메추라기가 운좋게 자연적으로 이스라엘 진영에 떨어진 것으로 여겨, 신 광야에서의 메추라기 사건을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안 볼수도 있다는 점

셋째는 시간적인 요인으로, 민수기 11장에 기록된 메추라기 사건의 시기는 시나이산을 떠난 시기가 출애굽한 이듬해 이월 이십일(민수10,11)이므로 그 이후가 분명하다는 참고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니까 신 광야에서의 첫 메추라기 사건(출애굽 일년 둘째 달 보름; 탈출16,1)이 있은지 약 1년이 더 지난 시점에서 그때의 사건을 하느님의 초자연적 역사로 믿는 믿음이 많이 시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공짜로'로 번역된 '힌남'(hinnam; freely; at no cost)'은혜','호의'를 뜻하는 명사 '헨'(hen)에서 유래된 부사로서, '거저', '값없이'(창세29,15)라는 뜻이다. 즉 여기에는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민수기 11장 5절에 기록된 음식들은 노예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고, 파와 마늘은 강제 노역에 동원된 일꾼들에게 식사로 제공된 것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그 음식들을 '공짜로' 먹었다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다. 

왜냐하면 노예 생활의 강제 노역에서 이들은 참으로 힘들게 수고했기 때문에 이 정도의 음식들은 지극히 당연한 대가요, 오히려 부족한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굳이 '공짜로'라는 표현을 써서 말한 것은 모세를 향한, 더 나아가서 하느님을 향한 강한 불만을 표현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집트의 종으로 있었을 때에도 이러한 음식들을 공짜로 먹었는데, 이제 자유로운 계약의 백성이 된 우리에게 겨우 공짜로 주어진 것이 이 만나뿐인가?'하는 한탄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배부른 노예생활, 종살이가 배고픈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유로운 생활보다 더 낫다는 불신앙의 극치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304. 오병이어의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복음(마태14,13~21)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여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14) 

'군중'에 해당하는 '오클로스'(ochlos; multitude; crowd)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많은 사람'의미하는데, 본문은 여기에 양과 정도가 몹시 많음을 나타내는 '폴뤼스'(polys; great; large)형용사까지 사용하여 마태오 복음 14장 13절에 기록되어 있는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예수님께 나아온 무리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매우 많은 사람들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사람들의 수효가 마태오 복음 14장 21절에 의하면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따라서 여자들과 아이들 수까지 모두 포함하면, 그 수가 2만명에 육박하는 상당히 많은 군중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는 14장 14절의 언급에서도 할 수 있지만, '군중'을 가리키는 희랍어 '오클로스'(ochlos)'귀족'과 대조이루는 '천민'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데서도 암시가 된다. 

이들은 이 세상에 의지할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예수님께 큰 희망을 걸고 무리지어 나왔던 것이다. 

한편,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에 해당하는 '에스플랑크니스테'(esplangchniste; was moved with compassion; had compassion)의 원형 '스플랑크니조마이'(splangchnizomai)'창자' 혹은 '내장'을 의미하는 '스플렌'(splen)에서 유래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이 내장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용어는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고, 특히 사랑이 전제되어 있으며 상대방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애끓는 연민의 정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마태9,36). 

이것은 이 용어가 집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목놓아 기다리다가 상당히 거리가 먼데도 아들임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탕자의 아버지가 가졌던 측은한 마음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도 잘 보여진다(루카15,20).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도 바로 이같은 도무지 주체할 수 없는 애끓는 사랑의 마음이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복음 선교와 선행의 밑바닥에는 이처럼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병자들을'에 해당하는 '아르로스투스'(arrostous; sick)의 원형 '아르로스토스'(arrostos)는 부정을 나타내는 불변사 '알파'(a)'올바로 살다', '평안하다'(사도15,29)로 번역되는 '론뉘미'(ronnymi)의 변형이 합하여진 단어로서 '평안함이 없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육체적으로 병든 자를 가리키지만(마르코6,5; 16,18), 마음에 괴로움을 안고 사는 자를 가리킬 수도 있다. 

여기서는 이 단어가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당시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음을 알 수 있고, 14장 15절에 저녁때가 되었다는 표현도 예수님께 나아온 병자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서 그들을 고쳐주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8월 7일 (녹)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성 식스토 2세 교황과 동료 순교자들, 또는 성 가예타노 사제

<오천 명을 먹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마태 14,14-17).”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라는 말은 예수님의 ‘자비심’을 나타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일 자체가 ‘자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을 길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인류를 가엾게 여기셔서

이 세상에 오셨고,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셨고,

그 길을 앞장서 가시면서 사람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이 한 일들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보다 먼저 사람들의 배고픔을 걱정했습니다.

그리고 해결책을 예수님께 건의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사정을 보살피는 곳이 되어야 하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인 개인으로 좁혀서 생각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웃의 사정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건의한 해결책은,

겉으로만 보면 당시 상황에서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예수님의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올바른 해결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뒤의 2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군중을 돌려보내셨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 군중은 예수님께서 주신 빵을 배불리 먹은 사람들,

즉 ‘은총으로 가득 채워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군중을 배고픈 상태로 돌려보내자고 건의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은총과 사람들을 서로 떼어놓는 일이 될 뿐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자는 말은,

제자들 쪽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배고픔을 걱정한 것은 훌륭한 태도이긴 한데,

실제로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 일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라는 말씀은,

뜻을 생각하면 “그들을 보내지 마라.”로 생각할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

(“배고픈 상태로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돈도 없고 빵도 없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교회의 역할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에게서 ‘생명의 빵’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아마도 많이 당황했을 것입니다.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라는 말은,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라는 말씀에 대한 반박, 또는 항의입니다.

이 말의 뜻은, “저희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이고,

그래서 “저희는 저 사람들을 먹일 수 없습니다.”가 됩니다.

(사람들의 수가 오천 명이 넘기 때문에,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사실상 하나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제자들의 말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저희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직접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주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 당시에 제자들에게 주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면,

그렇게 자신들의 무능력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겸손한 태도로 주님께 기적을 청했을 것입니다.

아직 그런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그냥 항의만 했을 것이고...)

 

이 이야기에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기적을 행하시라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드린 작은 정성이 아니라,

‘무(無)’를 상징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행하신 ‘빵의 기적’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신 기적입니다.

원래 하느님의 기적이란 그런 것입니다.

꼭 어떤 재료가 있어야만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 능력은 ‘전능’이 아니고, 그 기적은 하느님의 기적이 아닙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없었다고 해도,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일으키셨을 것입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라고 물을 필요는 없습니다.

한마디 말씀만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마태 14,18-21).”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는 말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빵을 뗀다는 말은 원래 성체성사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빵을 사람들에게 직접 주시지 않고 제자들에게 주신 것도

교회는 사람들에게 은총을 나누어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빵을 받아서 다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명령만 하고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라,

그 명령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는, “예수님은 우리를 먹이시는 분”,

또는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는 분”이라는 계시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하고 참된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연중 제18주간 월요일(2013-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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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8주간 수요일] 가나안 여인의 믿음 (마태 15,21-28)17.08.09조회 95[연중 제18주간 화요일]호수 위를 걸으시다 (마태 14,22-36)17.08.08조회 50[연중 제18주간 월요일]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마태 14,13-21)17.08.06조회 59[연중 제17주간 토요일] 세례자 요한의 목 (마태 14,1-12)17.08.05조회 122[연중 제17주간 금요일] 고향과 집안 (마태 13,54-58)17.08.04조회 48[연중 제17주간 수요일]밭에 숨겨진 보물 (마태 13,44-46)17.08.01조회 50[연중 제17주간 화요일] 가라지의 비유 (마태 13,36-43 )17.07.31조회 67[연중 제17주간 월요일] 겨자씨의 비유 (마태 13,31-35)17.07.30조회 191[성녀 마르타 기념일] 메시아(요한 11,19-27)17.07.28조회 69[연중 제16주간 금요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마태 13,18-23)17.07.28조회 75[연중 제16주간 목요일] 하늘 나라의 신비 (마태 13,10-17)17.07.27조회 100[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마태 13,1-9)17.07.25조회 230[성 대 야고보 사도 축일]첫째가 되려면 (마태 20,20-28)17.07.24조회 227[연중 제16주간 월요일] 요나의 표징 (마태 12,38-42)17.07.24조회 191[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라뿌니!” (요한 20,1-2.11-18)17.07.22조회 50[연중 제15주간 금요일]안식일의 주인 (마태 12,1-8)17.07.21조회 252[연중 제15주간 목요일]내 멍에를 메고 (마태 11,28-30)17.07.20조회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