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목요일] 평화를 빈다 (마태 10,7-15)

2017. 7. 13. 오전 4: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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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간 목요일] 평화를 빈다 (마태 10,7-15)


요셉은 양식을 사러 온 형제들에게,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라고 밝히고는,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 앞서 보내셨다고 한다. (창세 44,18-21.23ㄴ-29; 45,1-5)
그 무렵 18 유다가 요셉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나리, 이 종이 감히 나리께 한 말씀 아뢰겠습니다. 나리께서는 파라오와 같으신 분이시니, 이 종에게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19 나리께서 이 종들에게 ‘아버지나 아우가 있느냐?’ 물으시기에, 20 저희가 나리께 대답하였습니다. ‘저희에게 늙은 아버지가 있고, 그가 늘그막에 얻은 막내가 있습니다. 그 애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 아들로는 그 애밖에 남지 않아, 아버지가 그 애를 사랑합니다.’
21 그러자 나리께서는 ‘그 아이를 나에게 데리고 내려오너라. 내 눈으로 그를 보아야겠다. 23 너희 막내아우가 함께 내려오지 않으면, 너희는 다시 내 얼굴을 볼 수 없다.’ 하고 이 종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4 그래서 저희가 나리의 종인 저희 아버지에게 올라갔을 때, 나리의 말씀을 아버지에게 전하였습니다.
25 그 뒤에 저희 아버지가 ‘다시 가서 양식을 좀 사 오너라.’ 하였지만, 26 저희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희는 내려갈 수 없습니다. 막내아우가 함께 가야 저희가 내려갈 수 있습니다. 막내아우가 저희와 함께 가지 않으면, 저희는 그 어른의 얼굴을 뵐 수 없습니다.’
27 그랬더니 나리의 종인 저희 아버지가 저희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 아내가 나에게 아들 둘을 낳아 주었다는 것을 너희도 알지 않느냐? 28 그런데 한 아이는 나를 떠났다. 나는 그 애가 찢겨 죽은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였고, 사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아이를 다시 보지 못하였다. 29 그런데 너희가 이 아이마저 나에게서 데려갔다가 무슨 변이라도 당하게 되면, 너희는 이렇게 백발이 성성한 나를, 비통해하며 저승으로 내려가게 하고야 말 것이다.’”
45,1 요셉은 자기 곁에 서 있는 모든 이들 앞에서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모두들 물러가게 하여라.” 하고 외쳤다. 그래서 요셉이 형제들에게 자신을 밝힐 때, 그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2 요셉이 목 놓아 울자, 그 소리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들리고 파라오의 궁궐에도 들렸다.
3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아직 살아 계십니까?” 그러나 형제들은 요셉 앞에서 너무나 놀라, 그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4 그래서 요셉은 형제들에게 “나에게 가까이 오십시오.” 하고서는, 그들이 가까이 오자 다시 말하였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5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파견하시며,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고, 전대도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말라고 하신다. (마태 10,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제1독서(창세44,18~21.23ㄴ~29; 45,1~5)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 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창세45,5)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라고 번역된 '웨알 이하르 뻬에네켐' (weal yhar beenekem)에서 '웨알'(weal)'~마십시오'(do not)이고, '이하르'(yhar)는  '화내다'(be angry)이며, '뻬에네켐'(beenekem)부사구로서 '너희 스스로에게'(with yourselves)이다.  한마디로 '그러므로 당신은 스스로에게 화내지 마십시오' (And do not be angry with yourselves)이다.

요셉의 이 말 형 자신들이 팔았던 동생 요셉이 이집트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재상이 되었으니 죽을 죄를 지은 것이라고 스스로 비관하지 말라는 권면이다.  본문에서 사용된 부정어 '알'(al)은 '일시적인 금지'를 나타낸다.

요셉은 그의 형들에게 일단 마음을 진정하고 자신의 설명을 들으라는 의미로서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라고 말하였고, 그 다음 문장의 '왜냐하면'이라는 뜻을 가진 접속사 '키'(ki; because)를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여기서 '보내신 것입니다'에 해당하는 '셸라하니'(shellahani; sent me)기본형 '샬라흐'(shallah)'보내다'라는 뜻을 지닌 단어이다. 그런데 성경의 많은 경우에 하느님의 말씀,  즉 '구원', '도움'(시편20,3)이나 '재앙'에 관한 소식을(여호24,12) 전하기 위해 사자를 보낼 때도 이 단어가 사용되므로, 구세사안에서 약속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

가지고 있다.

구약 성경의 그리스 번역본인 70인역(LXX)'샬라흐'(shallah)'아포스텔로'(apostello)라고 번역했는데, 이 말이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 전파를 위해 보내신 '사도'를 의미하는 '아포스톨로스'(apostollos), '보냄을 받은 자', '파견된 자'어원이 되었다(마태10,2; 루카17,5; 로마1,1).

따라서 요셉이 '여러분 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라고 한 말의 의미에는 하느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먼저 이집트로 '보냄을 받은 자'가 되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사실은 실제로 요셉을 이집트로 판 자들은 형들이었으나 본문의 주어가 '하느님'(엘로힘)으로 나오는 데서도 확인된다.

요셉의 형제들이 시기심 때문에 요셉을 미디안 사람들에게 팔았던 사건을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될 야곱 일가의 생명을 보존시키기 위해 먼저 요셉을 이집트에서 준비시키는 과정으로 사용하셨음을 보여 주고 있다.

결국 요셉의 이야기는 한 인간의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가 승리한 사실을 전해주는 의미 뿐만 아니라 당신의 선택하신 백성을 보존하고 계약을 계승시키려는 창조주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가 주제인 것이다.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10,7-15)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9~10)

마태오 복음 10장 9절은 앞선 마태오 복음 10장 8절과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복음을 전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받아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자칫 잘못하면, 한글 새성경 번역은 복음 선포자가 아무것도 미리 준비해서는 안된다는 명령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병행구절인 마르코 복음 6장 8절에는 '전대에 돈도'라고 되어 있고, 루카 복음 9장 3절에는 '돈도'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마태오 복음에는 '금'에 해당하는 '크리소스'(chrysos)'은'에 해당하는 '아르귀로스'(argyros), '구리'(동)에 해당하는 '칼코스'(chalkos)로 세분하여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서 마태오가 복음 선포자가 가져야 할 청렴성과 신앙의 강직성에 대해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전직 세리로서 금전 계산에 빨랐던 마태오 복음사가가 돈의 종류를 일일히 나열한 것으로도 보인다.

한편, 마태오 복음 10장 10절에서 '여행 보따리'에 해당하는 '페라'(pera; scrip;bag)는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넣는 도구이며, '옷'에 해당하는 '키톤'(chiton; coat; tunic)은 일교차가 심해 특히 밤에 급격히 기온이 내려가는 광야의 추운 밤에 이불 역할을 하는 필수품이고, '신발'에 해당하는 '휘포데마'(hypodema; shoes; sandal) 역시 먼 거리를 걸어서 여행하는 자가 반드시 준비해야 할 필수품이며, '지팡이'에 해당하는 '라브도스'(rabdos; staff)는 광야에서 짐승들을 만났을 경우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다.

이 모든 것들이 유다인들이 여행할 때 가지고 다니던 여행 필수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님께서 선교 활동의 임무를 부여받고 파견되어지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이런 기본적인 필수품조차 가지고 다니지 못하게 하셨을까?

이것은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할 자들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그 복음의 내용을 실천하지 않으면 전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고, 오로지 이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하느님만을 의지하여 살아야 함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일꾼이 자기가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은 복음 선포자가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으므로 일정한 수업이 없으니 다른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고, 복음 선포자에게 생계 걱정을 하지 말라는 뜻과 더불어 신도들에게는 복음 선포자의 생계를 책임지라는 뜻지니고 있다.

여기서 '받는 것은 당연하다'에 해당하는 '악시오스'(aksios; is worthy of)'합당한 가치를 지닌'이라는 뜻을 지닌다.


마태 10,7-15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마태 10,7-13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마태 10,7-11).”

 

이 말씀은 선교활동을 할 때 지켜야 할 지침이기도 하고,

교회 운영과 활동에 관한 지침이기도 하고, 신앙생활에 관한 지침이기도 합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고 선포하고, 그 나라를 증언하는 일은,

교회의 임무이기도 하고, 모든 신앙인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가까이 왔다.’ 라는 말은, 근처 어딘가에 가까이 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늘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은 나라입니다.)

신앙인은 ‘하늘나라의 삶’을 미리 사는 사람이고,

그 삶의 완성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말이 아니라 삶으로 증언해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언은 ‘사랑’입니다.

신앙인의 사랑 실천은 그 자체로 하늘나라를 증언하는 일이 됩니다.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라는 말씀은,

“사랑 실천을 통해서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증언하여라.” 라는 지시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신 분이니 하느님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신앙인들이 사랑을 실천하면, 사랑을 받는 쪽에서는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게 되고,

그 체험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은혜를 너희가 무상으로 받았으니

너희도 사람들에게 그 은혜를 무상으로 나누어 주어라.” 라는 지시입니다.

선교활동은 영리사업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혜와 사랑을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는 일이기 때문에

장사를 하듯이 선교활동을 하면 안 됩니다.

또 교회는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기 때문에(마르 11,17)

마치 회사를 운영하는 것처럼 교회를 운영하면 안 됩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라는 말씀은,

“돈의 힘으로 선교활동을 하면 안 된다.

오직 믿음의 힘으로만 선교활동을 하여라.” 라는 지시입니다.

사도들의 가난은 ‘스스로 선택한 가난’입니다.

(원래 가진 것이 없어서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그런 가난이 아니라.)

스스로 비우고 버림으로써 자기 안의 공간을 충분히 넓히고,

그 공간에 하느님의 힘을 가득 채우는, 그런 가난입니다.

(마음속에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욕심이 가득 차 있다면,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들어갈 자리가 없게 됩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신앙인은 하느님만을 섬겨야 하고,

자기 삶의 공간을 하느님만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은 당신의 일꾼들을 먹이시는 분이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먹을 것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1-33).”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는 것은 다른 민족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즉 믿음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만일에 신앙인이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있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수도 없겠지만,

전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는 모습을 비웃으면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안에 믿음이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믿으라는 권고를 할 수 있습니다.

또 자기 안에 기쁨이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줄 수 있습니다.

 

(이 말에 대해서 혹시라도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라고 반박하거나,

“돈 없이 어떻게 선교활동을 하는가? 돈 없이 어떻게 교회 운영을 하는가?” 라고

항의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가난했을 때도 있었고, 부유했을 때도 있었는데,

가난했을 때에 더 선교활동이 잘 되었고,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부유했을 때에는 많은 위기를 겪었습니다.

선교활동은 돈의 힘이 아니라 믿음의 힘으로 한다는 것은,

이미 교회 역사에서 증명된 진리입니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꾼들을 먹이기 위해서

마땅한(착한) 사람을 보내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후원자를 찾아내라는 뜻도 아니고, 양성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갔을 때,

누군가가 친절과 호의를 베푼다면,

그것을 하느님의 도움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앞에서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라는 말씀을,

“하느님은 당신의 일꾼들을 먹이시는 분이다.” 라고 해석했는데,

여기서 ‘마땅한 사람’을 보내주신다는 말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꾼들을 먹이시는 방법을 뜻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거기에 머물러라.”는 “더 좋은 대접을 받을 욕심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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