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토요일]증언 (마태 10,24-33)

야곱은 아들들에게 조상들과 함께 묻어 달라며 숨을 거둔다. 요셉도 그 아버지 집안과 이집트에 자리 잡고 살다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자신의 유골을 가지고 가 달라며 죽는다. (창세 49,29-31.33; 50,15-26ㄱ)
그 무렵 29 야곱이 아들들에게 분부하였다.
“나는 이제 선조들 곁으로 간다. 나를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의 밭에 있는 동굴에 조상들과 함께 묻어 다오. 30 그 동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맞은쪽 막펠라 밭에 있는 것으로, 아브라함께서 그 밭을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에게서 묘지로 사 두셨다. 31 그곳에 아브라함과 그분의 아내 사라께서 묻히셨고, 그곳에 이사악과 그분의 아내 레베카께서 묻히셨다. 나도 레아를 그곳에 묻었다.”
33 야곱은 자기 아들들에게 분부하고 나서, 다리를 다시 침상 위로 올린 뒤, 숨을 거두고 선조들 곁으로 갔다.
50,15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보고, “요셉이 우리에게 적개심을 품고, 우리가 그에게 저지른 모든 악을 되갚을지도 모르지.” 하면서,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게 하였다. “아우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분부하셨네. 17 ‘너희는 요셉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의 형들이 네게 악을 저질렀지만, 제발 형들의 잘못과 죄악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니 아우님은 그대 아버지의 하느님의 이 종들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주게.”
요셉은 그들이 자기에게 이렇게 말한 것을 듣고 울었다. 18 이어 요셉의 형제들도 직접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아우님의 종들일세.”
19 그러자 요셉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20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1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을 부양하겠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그들을 위로하며 다정하게 이야기하였다.
22 이렇게 해서 요셉과 그 아버지의 집안이 이집트에 자리 잡고 살게 되었다. 요셉은 백십 년을 살았다. 23 그러면서 요셉은 에프라임에게서 삼 대를 보았다. 므나쎄의 아들 마키르의 아들들도 태어나 요셉 무릎에 안겼다.
24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시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25 요셉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맹세하게 하면서 일렀다.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때 여기서 내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십시오.” 그러고 나서 26 요셉은 죽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마태 10,24-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26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제1독서 (창세49,29-31.33 ;52,15-26ㄱ)
그러자 요셉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50,19-20)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이 문장에서 '내가'(아니' ;ani)라는 인칭 대명사가 독립적으로 사용되어 요셉 자신의 의지를 강조한다. '~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로 번역된 '하타하트'(hathahath; in the place of)는 '대신 하리이까?' 라는 뜻이다. '하타하트'의 기본형 '타하트'(thahath)는 다른 사람의 지위를 계승할 때도 사용된다.
따라서 본문은 '심판은 하느님께 속한 것인데, 어찌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 앉아서 대신 형들을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 라는 반어적인 뜻으로, 이것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강한 부정이다. 이러한 요셉의 모습에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는 참된 신앙이 드러난다.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로 번역된 '하샤바흐 레토바'(hashabah letoba)에서 '레토바'라는 단어의 후미에 '아'(a)가 붙으면 어떤 '방향'이나, '장소'를 향한 움직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레토바'는 '선으로', '선한 방향으로'의 의미이다.
또한 '바꾸셨습니다'로 번역된 '하샤바흐'의 기본형 '하샤브'(hashab)는 '만들다', '고안하다'(탈출28,6)로도 번역된다.
따라서 요셉의 형들은 악을 도모했지만,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그대로 두면서도 새로운 방향으로 바꾸어서 가장 선한 결과를 주셨다는 뜻이다. 이것을 보면, 믿는 이들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하느님께서 협력하여 선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믿어야 하며, 그 어떤 고난 가운데서라도 꿋꿋이 신앙을 지켜야 한다.
"임금님, 저희가 섬기는 하느님께서 저희를 구해 내실 수 있다면, 그분께서는 타오르는 불가마와 임금님의 손에서 저희를 구해 내실 것입니다. 임금님,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저희는 임금님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고, 임금님께서 세우신 금 상에 절하지도 않을터이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다니3,17-1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로마8,28)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로 번역된 '레마안 아소 ~ 레하하요트 암 라브' (lemaan aso ~ lehahayoth am rab)에서 '큰 백성'에 해당하는 '암 라브'는 '많은 사람들'을 의미하며, '살리'에 해당하는 '레하하요트'는 전치사와 부정사 연계형이 결합된 전치사구로서 '살게 하는 것을 위하여'라는 뜻으로 신앙적 구원이 아니라 기근에서 살아남아 육체적 모습을 이어간다는 의미로 쓰였다.
그리고 '시려는'에 해당하는 '레마안'은 '~할 목적으로'(2열왕8,19)라는 뜻이 있는 '마안'(maan)과 여기에 목적을 나타내는 전치사 '레'(le)가 덧붙여져 목적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직역하면 '구원하실 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게 하기 위해서' 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악을 행했지만(창세37,12-28),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그대로 사용하시면서 요셉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실 목적을 가지고 계셨음을 회고하는 것으로서 요셉의 성숙한 신앙 고백을 드러내고 있다. 즉 요셉은 하느님의 선하심과 함께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철저히 신뢰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복음 (마태10,24-33)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는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28~30)
마태오 복음 10장 28절은 하느님과 사탄의 능력의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사탄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만 자신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사탄의 한계점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지도 파멸시키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또한 욥기 1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육신 역시 하느님의 허락없이는 손을 대지 못한다는 것이 사탄의 한계인 것이다.
오늘 말씀이 박해와 그로 말미암은 고통을 다루는 문맥에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즉 사탄이 주는 고통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육신'에 해당하는 '소마'(soma)에까지 밖에 미치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 주시는 고통은 '영혼'에 해당하는 '프쉬케'(psche)에까지 미친다는 사실이다.
오늘 말씀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고통을 주시는 분이 아니며, 참 두려움의 대상은 사탄이 아니고 바로 주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이다.
또한 복음 전파자들이 사탄의 사주를 받은 자들에 의해 박해를 받을지라도, 그러한 적대자들이 주는 고통과 박해는 그들의 육신에 까지밖에 미치지 못하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킬 수 있는'이라는 표현에서 '멸망시키다'는 뜻으로 사용된 '아폴뤼미'(apollymi; kill)라는 단어는 '없어지다', '사라지다'는 뜻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이것을 굳이 하느님께서 영혼을 멸망시키신다는 뜻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 단어가 사물에 대하여 사용될 경우에 '없어지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인격적 존재에 대해서는 존재 자체를 없앤다는 뜻보다는 존재의 가치를 없앤다는 뜻이 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지옥의 형벌에 대한 과장법적 서술로 보아야 한다.
복음 전파자가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생명을 잃어도 그의 영혼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므로, 그의 영혼은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암시되고 있다.
하지만 사탄을 두려워하며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거나 그분께 불순종하며 사는 사람은 이 땅에서는 평안하게 살지 모르지만, 종국에는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참새'는 예수님 당시 팔레스티나에서 가장 흔하고 값이 나가지 않는 날짐승이었다.
여기서 참새 두 마리 값으로 제시된 '한 닢'에 해당하는 '앗사리온'(assarion; a penny)은 당시 가장 가난한 계층이었던 일일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한 데나리온'의 16분의 1에 불과한 돈이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가장 하찮은 날짐승조차도 당신의 섭리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고 돌보시는 세심하고도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다.
마태오 복음 10장 30절에서 '세어 두셨다'에 해당하는 '에리트 메메나이 에이신' (erith memenai eisin; are numbered)에 있어서 '에리트메메나이'(erithmemenai)는 수동형 완료 분사이므로, 이미 세신 행동이 완료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머리카락'(머리털; the hairs of head)이 상징하는 것은 앞절의 '참새'처럼 사람의 신체 일부분 중에서 '가장 흔하고 값어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우리 신체 가운데 가장 가치없게 여겨지는 부분인 머리카락 까지도 이미 모두 세신 분이시다.
하느님께서는 무수히 많은 뿐 아니라 날마다 빠지고 새로 생겨나 수효가 변하는 우리의 머리카락을 다 세실 만큼 전능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이 아니고, 그만큼 당신 자신이 지으신 인간을 세심하게 보살피며 사랑하신다는 뜻이다.
이렇게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배후에 계시므로, 제자들은 그들이 비록 육신이 찢기고 상하는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하여라.>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마태 10,24-25)”
신앙생활의 목표는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뒤따라가는 생활이 신앙생활인데,
그 길을 가다보면 십자가를 만날 때도 있겠지만,
끝까지 잘 가면 예수님께서 누리신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시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마태 9,34).
이 말은 “예수는 마귀들의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하수인이다.” 라고
중상(中傷)하는 말과 같습니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런 말을 들으셨으니,
예수님의 제자들은(신자들은) 더 심한 말도 들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마태 10,26).”
이 말씀을 앞의 25절에 연결해서 읽으면,
“하느님의 진리는 반드시 온 세상에 드러날 것이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가 되는데, 이 말의 뜻은,
“언젠가는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어서 예수님께서 심판관으로 재림하실 것이고,
예수님을 중상했던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입니다.
이 말씀을 뒤의 27절에 연결해서 읽으면,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여라.”가 됩니다.
(“신앙을 숨기지 말고 드러내라. 복음을 감추지 말고 알려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마태 10,27).”
이 말씀은, 지금은 박해 때문에 남몰래 복음을 선포하지만,
앞으로는 자유롭게 선포할 때가 올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활동과 제자들의 활동을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표현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어두운 데에서, 귓속말로” 라는 말은,
주로 갈릴래아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예수님의 활동을 가리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라는 작은 지역에서
유대인들만을 상대로 복음을 선포하신 일이
어두운 데에서 귓속말로 복음을 전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라는 말씀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라는 지시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요한 14,12).”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가신 뒤에
제자들이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더 큰 일’도 하게 된다는 말은, ‘더 위대한 일’을 하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더 멀리 가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
이 말씀은, “육신의 목숨을 빼앗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은 너무 멀고 막연하게 느껴지고,
육신의 죽음은 바로 눈앞에 있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보다 육신의 목숨을 잃는 것을
더 무서워하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게 가져야 합니다.
(현세적인 복을 받기만을 바라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박해와 고난이 닥치면 아주 쉽게 신앙을 포기합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도 부족하고, 그 생명을 추구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태 10,29-31).”
박해자들은 자기들이 신앙인의 목숨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모든 피조물의 목숨에 대한 생살여탈권은 하느님만의 권한입니다.
(하느님은 박해자들의 목숨에 대해서도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여기서 “두려워하지 마라.”는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입니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라는 말씀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라는 말씀은,
“끝까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마태 10,32-33).”
여기서 ‘누구든지’ 라는 말은, 지금 하시는 말씀에 예외가 없다는 뜻입니다.
‘증언’은 말로만 하는 증언이 아니라 ‘온 삶으로’ 하는 증언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삶으로’ 신앙을 증언하면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한
신앙인을 위해서 보증인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틀림없이 구원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배척한 사람은,
심판 때에 멸망을 선고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앙갚음을 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앙갚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나중에 심판 때에 받게 될 자비와 사랑도 함께 거부하는 것입니다.
(멸망을 선고받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회개해야 하고,
지금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동안 오해도 많이 받으셨지요. 질시와 모략 역시 많이 받으시지 않았습니까?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진리의 빛은 반드시 어두움을 걷어 낼 것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용기를 내라고 격려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지금은 핍박을 받기 때문에 남몰래 기쁜 소식을 전하곤 하지만, 곧 주님의 말씀을 자유롭게 선포할 때가 오리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교회는 박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박해를 받으면 받을수록 교회는 강해졌고, 복음은 더 널리 전파되었음을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복음은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입니다. 우리를 늘 지켜보시는 하느님,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코 두려움의 대상만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끝없이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처럼 참새 한 마리까지도 잊지 않으시는데, 당신 모습대로 창조하신 인간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세상에 몸담고 있기에 겪어야 하는 오해와 불신도 많습니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이 내가 한 것처럼 떠다니기도 합니다. 나의 의도와는 달리 내가 한 말이 왜곡되어 퍼져 나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 밝혀지리라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분명히 계시기 때문입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