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열두 제자 파견 (마태10,1-7)

2017. 7. 12. 오후 6: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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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열두 제자 파견 (마태10,1-7)

요셉이 이집트의 통치자였을 때 세상에 기근이 심해 가나안에서 형들이 양식을 사러 오자 짐짓 모르는 체하며 매몰차게 대한다. (창세 41,55-57; 42,5-7ㄴ.17-24ㄱ)
그 무렵 55 이집트 온 땅에 기근이 들자, 백성이 파라오에게 빵을 달라고 부르짖었다. 그러자 파라오는 모든 이집트인에게 말하였다. “요셉에게 가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56 기근이 온 땅에 퍼지자, 요셉은 곡식 창고를 모두 열고 이집트인들에게 곡식을 팔았다. 이집트 땅에 기근이 심하였지만, 57 온 세상은 요셉에게 곡식을 사려고 이집트로 몰려들었다. 온 세상에 기근이 심하였기 때문이다.
42,5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들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이집트로 곡식을 사러 가는 다른 사람들 틈에 끼어 그곳으로 들어갔다. 6 그때 요셉은 그 나라의 통치자였다. 그 나라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파는 이도 그였다.
그래서 요셉의 형들은 들어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그에게 절하였다. 7 요셉은 형들을 보자 곧 알아보았지만, 짐짓 모르는 체하며 그들에게 매몰차게 말하면서 물었다. “너희는 어디서 왔느냐?”
17 그러고 나서 그들을 사흘 동안 감옥에 가두었다.
18 사흘째 되던 날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살려거든 이렇게 하여라. 나도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19 너희가 정직한 사람들이라면, 너희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만 감옥에 남아 있고, 나머지는 굶고 있는 너희 집 식구들을 위하여 곡식을 가져가거라. 20 그리고 너희 막내아우를 나에게 데려오너라. 그러면 너희 말이 참되다는 것이 밝혀지고, 너희는 죽음을 면할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21 그들이 서로 말하였다. “그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죗값을 받는 것이 틀림없어. 그 애가 우리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할 때, 우리는 그 고통을 보면서도 들어 주지 않았지. 그래서 이제 이런 괴로움이 우리에게 닥친 거야.”
22 그러자 르우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기에 내가 ‘그 아이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마라.’ 하고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더냐? 그런데도 너희는 말을 듣지 않더니, 이제 우리가 그 아이의 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23 그들은 자기들과 요셉 사이에 통역이 서 있었기 때문에, 요셉이 알아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다. 24 요셉은 그들 앞에서 물러 나와 울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권한을 주시어,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 주며,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게 하신다. (마태 10,1-7)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제1독서(창세41,55~57; 42,5~7ㄴ.17~24ㄱ)

요셉은 형들을 금방 알아 보았지만, 모르는 체하고 매몰차게 말한다. '너희는 어디서 왔느냐?' 그러고는 사흘동안 감옥에 가둔다.(42,6ㄷ~7.17) 사흘째 되던 날 요셉은 그들에게 말한다. '너희가 살려거든 이렇게 하여라. 나도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너희가 정직한 사람들이라면, 너희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만 감옥에 남아 있고, 나머지는 굶고 있는 너희 집 식구들을 위하여 곡식을 가져 가거라. 그리고 너희 막내 아우를 나에게 데려오너라. 그러면, 너희 말이 참되다는 것이 밝혀지고, 너희는 죽음을 면할 것이다.'(42,18~20) 

꿈의 사람, 믿음의 사람 요셉은 17세때, 형들의 미움을 받아 몇번씩 죽음을 경험한다.깊은 구덩이에 던져지고 이집트에 팔려 간다. 

아버지 야곱의 집에서 가장 사랑받던 아들이 하루 아침에 노예가 되고, 완전히 낯선 이방인들 속에서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하루 아침에 고아처럼 버려진 요셉은 파라오의 내신이며 경호대장인 포티파르의 종이 되었다가 포티파르의 아내의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감옥에서 20대를 보내야 했다. 

이러한 최악의 상황속에서 요셉이 30세에 어떻게 이집트의 재상(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을까?

요셉은 어떤 처지에서도 한번도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자신을 억울하게 감옥에 집어넣은 사람도 원망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요셉에게 하느님은 특별한 은총과 복을 주셨는데, 현명과 지혜가 바로 그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영이 맑고 깨끗한 요셉에게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지혜를 주셨다. 

요셉의 지혜가 헌작 시종장(술맡은 관원장)의 꿈과 제빵 시종장(떡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는 기초가 되었고(창세 40장), 파라오의 꿈(창세41장)을 아주 명쾌하게 해석하는 능력의 원천이 되었다. 

요셉이 재상이 된 후, 파라오의 꿈이 계시된 대로 7년 대풍년이 왔다. 요셉은 창고를 짓고, 바다의 모래알처럼 셀 수 없이 많은 곡식을 창고에 저장해 둔다(창세41,47~49). 꿈의 예언대로 7년 풍년뒤에 7년 흉년이 왔다. 흉년이 오자마자 요셉은 창고를 열어, 이집트 사람들에게 준비한 양식을 공급하기 시작했다(창세41,56).

그런데 이 기근은 이집트 땅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나라에도 동일하게 일어났다 (창세41,57).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들었기 때문에, 야곱의 아들들은 이집트로 곡식을 사러가는 다른 사람들 틈에 끼어 그곳으로 들어 갔다(창세42,5). 

요셉의 형들은 이집트의 통치자요 그 나라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파는 자인 요셉에게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였다(창세37,7; 요셉의 곡식단 꿈이 이루어짐). 

요셉은 형들을 금방 알아 보았지만, 모르는 체하고 매몰차게 말한다. '너희는 어디서 왔느냐?' 그러고는 사흘동안 감옥에 가둔다. 

사흘째 되던 날 요셉은 그들에게 말한다. '너희가 살려거든 이렇게 하여라. 나도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너희가 정직한 사람들이라면, 너희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만 감옥에 남아 있고, 나머지는 굶고 있는 너희 집 식구들을 위하여 곡식을 가져 가거라. 그리고 너희 막내 아우를 나에게 데려오너라. 그러면, 너희 말이 참되다는 것이 밝혀지고, 너희는 죽음을 면할 것이다.'(창세42,18~20) 

요셉의 생애에는 두 가지 숙제가 있었다.  하나는 어떻게 억울한 누명과 고난에서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을 어떻게 용서하느냐? 하는 것이다.

첫째 숙제는, 하느님께서 요셉을 이집트의 재상이 되게 하셔서 누명을 다 벗기시고, 영광 가운데서 그에게 모든 것을 다 회복시켜 주심으로 해결되었다.

그러나 둘째 숙제는, 재상이 되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방법은 하나, 형들을 만나는 것이고, 그래서 가슴을 열고 서로 용서를 주고 받아야 한다. 요셉에게 남은 화해의 문제와  형들에게 있는 죄책감은 둘이 만나야 해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기근을 통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인간의 지성과 상식과 머리로는 예측할 수 없는 놀라운 하느님의 초자연적 간섭이다. '하느님은 이렇게 자연 현상을 이용해서 당신의 구원역사를 만들기도 하신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았지만, 형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창세42,8) 여기서 요셉이 왜 형들을 모르는체 했을까? 이 부분이 중요하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형님!'하고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요셉은 오히려 형들을 정탐꾼(스파이)으로 몰기 시작한다. 여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다. 형들로 하여금 과거를 깊이 참회하는 축복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 요셉이 형들을 아는 체하지 않았기 때문에 형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마음 깊은 곳에서 회개와 참회를 할 수 있었다. 

오늘 독서의 창세기 42장 21~22절을 보라. "그들이 서로 말하였다.  '그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죗값을 받는 것이 틀림없어. 그 애가 우리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할 때,  우리는 그 고통을 보면서도 들어 주지 않았지. 그래서 이제 이런 괴로움이 닥친거야.' 

 그러자 르우벤이~~ '그러기에 내가 '그 아이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마라'하고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더냐?  그런데도 너희는 말을 듣지 않더니,   이제 우리가 그 아이의 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용서하신다. 그리고 동시에 고난을 통해 우리가 깊이 회개하고 우리 인생에 대해 반성하면서 하느님의 은혜에 대해 감동하고 감격하는 과정을 만드신다. 

재상이라는 사람이 자기들을 스파이로 의심하기 때문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비밀을 들춰낼 수 밖에 없는 기막힌 상황이 된 것이다. 숨겨놓은 죄악들을 하나 하나 들추어 내야 했다. 

우리의 기억이란 축적된 경험의 창고요, 그안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들어 있는데, 좋은 것은 끌어내어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되고, 나쁜 것은 드러내어 하느님 앞에 보여 드려 용서받을 때 내적 치유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복음(마태10,1-7)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5ㄴ~6)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의 두번째 가르침(마태10,1~42) 가운데 서론적 내용인 열두 사도의 부르심에 대한 내용(마태10,1~4)을 마치신 후, 이제 마태오 복음 10장 5절에서 부터 본격적인 가르침에 들어간다.

그중에 마태오 복음 10장 5절에서 15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에게 주신 선교 활동의 대상과 내용, 선교사로서의 자세에 관한 교훈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마태오 복음 10장 5절(ㄴ)은 예수님께서 복음 전파를 위해 열두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그들이 이방인이나 사마리아 사람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교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당부하고 계신다.

이렇게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메시야로서의 예수님과 유다인과의 관계성을 강조하는 것은 마태오 복음사가가 기록한 복음서의 특징인 것이다.

이것은 병행 구절인 마르코 복음 6장 8~10절이나 루카 복음 9장 2~4절에는 기록되지 않고, 오로지 마태오 복음에만 나온다.

사마리아인들은 과거 북부 이스라엘이 이방인 아시리아인들과 혼인하여 순수한 이스라엘의 혈통을 더렵혔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로 매도당하였으며,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개처럼 취급받았다.

더군다나 이방인들(다른 민족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었다.

그러니까 마태오 복음 10장 5절(ㄴ)은 이러한 사마리아인들과 이방인들을 열두 사도의 선교 대상에서 일단 유보시킴으로써, 예수님의 선교 활동의 일차적인 대상이 마태오 복음 9장 36절에 나온 것과 같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한편, 새성경 한글 번역에는 생략되었지만, 원문인 마태오 복음 10장 6절에는 '~대신에'(instead of), '반드시'(surely), '분명히'라는 뜻을 가진 '말론'(mallon; rather)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것은 마치 복음을 이방인들이나 사마리아인들에게 전할 바에는 대신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이 낫다는 뉘앙스를 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 마태오 복음사가의 강조점은 당시의 시점에서도 반드시 이스라엘에 대한 복음 전파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을 '반드시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라고 번역해야 한다. 

여기서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이라는 구절은 마태오 복음 9장 36절'목자 없는 양들'의 이미지와 같은 은유를 사용한 수사적 표현이다.

이것은 마태오 복음에서 여러 번 반복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시려 오신 예수님의 강생(육화)의 목적을 강조하기 위해 수록한 내용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8장 19절과 20절에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삼으라고 명령하신 내용을 보도하고 있으므로, 마태오 복음 10장 6절에서 복음전파의 대상으로서 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한 이방인들을 일단 유보하고, 그 일차적인 대상으로 유다가 지목되고 있는 사실은, 결국 유다인들의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에 대한 거부로 인해 필연적으로 선교의 대상이 모든 민족들로 확장되어 가는 논리적인 연결선상에서 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마태오 복음 10장 6절에서 강조하는 것은, 복음서 전체에서 볼 때 예수님의 이방인들에 대한 배척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민이요 소유가 되었던 이스라엘에 대한 애착과 우선적 선택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열두 사도를 뽑으시다.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좇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마태 10,1).”

 

여기서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은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입니다.

그런데 이 권한에는 마귀들을 쫓아내지 않아도 되는 권한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은 사실상 ‘마귀들을 쫓아내는 임무’입니다.

(마귀들 쪽에서는 복종할 수밖에 없는 권한이지만,

사도들 쪽에서는 수행해야 할 임무라는 것입니다.)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라는 말은,

가난하고 힘없고 병들고 소외되어 있는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관심과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임무를 맡기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 활동을 시작하실 때,

마귀를 쫓아내는 일과 병자들을 고쳐 주는 일부터 하셨는데,

사도들도, 또 교회도 당신이 하시던 일을 이어받아서 계속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병자와 허약한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는 일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복음 선포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병자와 허약한 이들은 교회가 베푸는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이고, 하느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양 노래를 부르십시오.

여러분 가운데에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십시오.

그러면 믿음의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냅니다(야고 5,13-16).”

이 말을 간단하게 줄이면, “서로 사랑하고, 서로 기도해 주어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치는 ‘기도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마태 10,5-7)”

 

여기서 ‘다른 민족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하느님을 믿기는 하였지만, 유대인들과 적대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대방의 종교와 신앙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다른 민족들과 사마리아인들에게는 가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 ‘때’는 ‘승천과 성령 강림 후’입니다(마태 28,19-20).

이 말씀에서 다음 말씀이 연상됩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태 7,6).”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때에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먼저 전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뜻일 수도 있고,

제자들 쪽에서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성령 강림’은 이방인들과 사마리아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제자들을 준비시킨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집안 가운데에서 길 잃은 양들”로

좁혀서 생각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에서 ‘길 잃은 양들’은 ‘참 목자를 찾고 있는 양들’이 됩니다.

(사실은 이스라엘 전체가 ‘길 잃은 양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길을 잃지 않았다고 우기거나,

목자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복음을 전해 주어도 듣지 않고 믿지 않았습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는 선포는 복음 선포이면서 동시에 심판 선포입니다.

(이 선포는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여라.” 라는 선포이면서

동시에 “심판을 받지 않도록 준비하여라.” 라는 선포입니다.)

심판의 날이 되면 구원과 멸망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준비를 잘한 사람은 그날 구원을 받을 것이고,

불충실한 사람들과 불신자들은 그날 멸망을 선고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요한 3,17-18).”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6,15-16).”

복음을 전해 들었을 때, 그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구원을 선택하는 것이고,

안 믿고 배척하는 것은 심판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시는데,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심판을 선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합니다.

믿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7).”

죽은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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