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심판하지 말라 (마태 7,1-5)

2017. 6. 26. 오전 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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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심판하지 말라 (마태 7,1-5)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하시자, 그는 길을 떠난다. (창세 12,1-9)
그 무렵 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2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3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4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다섯 살이었다.
5 아브람은 아내 사라이와 조카 롯과, 자기가 모은 재물과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길을 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6 아브람은 그 땅을 가로질러 스켐의 성소 곧 모레의 참나무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때 그 땅에는 가나안족이 살고 있었다.
7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주겠다.”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님을 위하여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
8 그는 그곳을 떠나 베텔 동쪽의 산악 지방으로 가서, 서쪽으로는 베텔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아이가 보이는 곳에 천막을 쳤다. 그는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다.
9 아브람은 다시 길을 떠나 차츰차츰 네겝 쪽으로 옮겨 갔다.


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하시며,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고 하시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하신다. (마태 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2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3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5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제1독서(창세12,1~9)

 그 무렵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1) 

'주님께서~말씀하셨다'에 해당하는 '와요메르 예흐와'(wayomer yehwa)시작하는 본문은 아브람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부르심을 받고 역사(歷史)의 전면에 등장하는 장면을 보도한다. 

이것은 역사의 전면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인간 아브람이지만, 그 배후에는 주님의 역사(役事)하심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본문이 '그 무렵(그러자;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로 번역되는 '와요메르'(wayomer)로 시작되는 것은 하느님의 역사하심이 주로 말씀으로 이루어짐을 보여 준다. 

'(너는)~가거라'에 해당하는 '레크 레카'(lek leka)에서 '레크'(lek; go)'걷다'라는 뜻이 있는 '할라크'(hallak)의 2인칭 단수 명령형이다. 그리고 '레카'(leka)는 전치사 '레'(le)와 2인칭 단수 어미가 붙은 형태로서 '너에 대해서는'(as for you) 또는 '너에 관한 한'(as far as you are concerned) 으로 번역될 수 있다. 

여기서 '레크'(lek)라는 2인칭 단수 명령형 그 자체가 '너는 가거라'라는 의미가 있는데, 다시 '너에 대해서는(관해서는)'이라는 뜻이 있는 '레카'(leka)를 덧붙인 것은 '가거라'는 하느님의 명령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아브람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아브람을 대신하여 그 명령을 수행할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아브람이 버리고 떠나야 할 것으로 명시된 세 개의 단어'메아르체카'(meartseka), '밈몰라드테카'(mimmolladtheka), '밉베트아비카' (mibbethabika) 앞에는 모두 철저한 분리를 나타내는 전치사 '민'(min)이 붙어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당신 자신에게서 스스로 나오는 반면에, 인간의 거룩함은 하느님을 향한 지향으로 세속과 이기와의 철저한 구분에서 시작됨을 알려준다. 

이것은 또한 거룩한 당신의 백성을 구별하여 세우시려는 하느님의 의지가 이미 아브람이라는 칼데아 사람을 세상에서 철저히 분리시키는 일에 예표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브람이 떠날 대상고향, 친족, 아버지의 집 삼중으로 표기된 것은 결국 과거의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아브람이 이러한 것들을 과감히 버리도록 하느님께서 강력하게 요구하셨음을 의미한다. 

루카 복음 14장 33절에서 예수님께서도 '이와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한편, '네 고향'으로 번역된 '메아르체카'(meartseka)'너의 땅으로부터'라는 뜻이다. 이 말이 다른 두 가지, 즉 친족과 아버지의 집보다 앞에 나온 것은 하느님께서 아브람을 궁극적으로 인도해 가실 곳이 바로 약속의 '땅' 가나안이었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최초의 요구로 '땅'을 떠날 것을 명령하신 것이다. 이것은 옛 삶과 새로운 삶의 구별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새 출발과 더불어 가나안의 약속이 지배하는 삶의 영역으로 향하는 실질적인 삶을 강하게 명령하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이 있을 거처를 미리 마련해 놓으시고, 기존의 것에 안주하지 말고 떠날 것을 요구하신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6절'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친족'으로 번역된 '몰레데트'(molledeth)'낳다'(창세4,18), '태어나다'(고헬렛7,1)로 번역되는 '얄라드'(yalld)에서 유래하여 '한 조상으로부터 태어난 자' 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느님께서 이러한 '친족'이라는 말을 명시적으로 사용하신 것은 당시 하란에는 아브람의 형제 나호르의 가족들이 살았기 때문이다(창세24,10; 28,10). 아마도 나호르 가족은 테라 일행이 칼데아 우르를 떠난 후(창세11,31) 바로 뒤이어 하란으로 이주하여 계속 그곳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치안 유지가 잘 되지 않았던 고대 사회는 오늘날보다 친족의 중요성이 더 컸다. 따라서 친족이 많은 자는 유력한 자로 여겨졌으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친족은 모여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친척 뿐만 아니라 보다 가까운 혈족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의 집조차 떠나라고 명령하신다. 이것은 하느님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도무지 순종할 수 없는 큰 희생의 요구이다. 

이제 하느님꼐서는 '고향'이라는 넓은 영역에서 '친족'이라는 중간 영역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고 너의 아버지의 집으로부터'에 해당하는 '우밉베트 아비카'(umibbeth abika) 가장 작은 영역으로, 아브람이 떠나야 할 곳을 점점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아브람은 그의 '고향', 즉 메소포타미아의 하란을 떠나는 '지역적 이동'을 해야 하는 뿐만 아니라 '친족'을 떠나는 '공동체로부터의 이동'을 해야만 하고,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마저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아브람에게 주어진 부르심의 내용은 당시 친지와 깊은 유대 관계를 가지고 살고 있었던 고대 유목민에게 있어서는 결코 따르기에 쉬운 것이 아니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사실에 대해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히브11,8)라고 계시하고 있다.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여기서 '너에게 보여줄'로 번역된 '아르에카'(areka)'라아'(raah; '보다') 동사의 사역형 미완료형에 2인칭 어미가 붙은 형태로서 '내가 너로 하여금 보게 할' 혹은 '내가 너에게 보여줄'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아직 아브람에게는 구체적인 목적지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본문에서 아브람이 가야할 곳의 지명이 막연하게 하느님께서 보여주실 '그 땅'해당하는 '하아레츠'(haarets)으로만 표기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셨지만, 실상 그가 가야할 곳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분명한 목적지가 이미 선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하아레츠'(haarets)라는 '그 땅'에 붙은 정관사 '하'(ha; '그')에 의해서 확인된다. 

'어떤 땅'이 아니라 바로 '그 땅' 가나안을 하느님께서는 생각하시고 아브람에게 명령하시고 계신 것이다. 아브람이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하느님의 확신에 찬 명령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7,1-5)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가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1~3)

마태오 복음 6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자들이 일상 생활 가운데서 추구해야 하는 자신 스스로의 경건과 의로움과 관련된 규정을 다루었다면, 마태오 복음 7장 1~6절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지켜야 하는 대인 관계의 규정을 다루고 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에 해당하는 '메 크리네테'(me krinete; do not judge)단도직입적인 매우 강력한 의미를 지니는 명령문이다. 여기서 '심판하지'로 번역된 '크리네테'(krinete)는 복수 2인칭 현재 명령형이다. 

희랍어에서 현재 명령형은 생활 습관이나 기준을 새롭게 제시할 때 사용되는데,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계속해 왔던 심판하는 일을 그만두고, 심판을 금하는 새로운 생활 기준을 가지라는 말이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는 율법이나 자신들이 만든 계율로 이웃을 단죄하는 풍조가 만연했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심판 혹은 비판은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정당한 판단을 가리키지 않는다.

여기서 금하는 심판(비판)은 유익하고 지혜로운 선악의 구별이 아니라 이해심이나 동정심없이 상대방을 근거없이 헐뜯는 것을 말하며, 절대 공의(義)로 심판권을 행사하시는 하느님과 같은 위치에서 다른 사람을 단죄하는 교만한 태도를 말한다(로마2,1~3; 야고4,11.12).

그리고 이렇게 무책임하게 형제를 심판하는 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 사실은 마태오 복음 7장 1절의 '심판을 받다'에 해당하는 '크리테테'(krithete; you are judged)수동형이라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이 단어에서 동작을 받는 대상은 복수 2인칭 으로서 지금 이 말을 듣고 있는 자들이지만, 비판을 하는 주체는 나타나지 않는다. 여기서 불공정하게 심판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단죄하시는 분이 바로 공의로우신 하느님이시라는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7장 2절은 마태오 복음 7장 1절의 보충설명이며 재강조의 성격을 가진다.

여기서 '심판받고'에 해당하는 '크리테세스테'(krithesesthe;  yo u will be judged)의 원형 '크리노'(krino)사사로운 단죄나 헐뜯는 것을 가리키지만, 판결하고 언도하는 사법적 의미로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또한  '그 되로 받을 것이다'에 해당하는 '메트레테세타이'(metrethesetai; it will be measured)의 원형 '메트레오'(metreo)양이나 길이를 재는 것가리키는 '메트론'(metron)에서 유래하여 물건 거래와 관련하여 사용되는 경제적 용어이다.

이처럼 마태오 복음 7장 2절사법적 용어와 경제적 용어를 사용하여 이웃에게 가혹하게 대하는 자는 동일한 처우를 받게 될 것을 강조한다.

두 단어가 모두 수동태로 사용되어 상대방을 향한 심판과 되질함이 하느님에 의해 자신에게 되돌려질 것을 보여 준다.

한편 마태오 복음 7장 3절은 '형제의 눈 속'과  '네 눈 속',  '티와 들보',  그리고 '보면서'와  '깨닫지 못하느냐'가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는 기교적인 문장이다.

'티'에 해당하는 '카르포스'(karphos; mote; speck)'시들다'는 뜻을 가진 '카르포'(karpho)에서 유래하여 지푸라기나 왕겨 등을 뜻한다.

그리고 '들보'에 해당하는 '도코스'(dokos; the beam; the plank)'받치다',  '지탱하다'는 뜻이 있는 '데코마이'(dechomai)에서 유래하여 건물을 받치는 기둥, 재목 또는 서까래를 뜻한다.

타인의 조그마한 결점을 상징하는 '티'와  자신의 큰 허물을 상징하는  '들보'라는 서로 대조되는 단어를 대구시키는 과장법을 통해 교훈이 전달된다.

예수님께서는 타인의 작은 도덕적 잘못이나 교리적 오류에 대해서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 예리하게 지적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갖고 있는 더 큰 잘못, 즉 마치 들보와 같은 결함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는 자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시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대표적인 들보와 같은 결함은 자신이 가진 죄악을 보지 못하는 영적 무지와 형제에 대하여 사랑이 없는 가혹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 7장 1절과 2절에서는 동사가 복수 2인칭으로 사용된 것과는 달리 마태오 복음 7장 3절에서는 동사가 단수 2인칭으로 사용된 것이 대조를 이룬다.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복음 7장 3절에서 지금 말씀을 듣고 있는 자들 개개인이 바로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을 지적하는 심정으로 단수 2인칭을 사용하신 것이다.



2016년 6월 20일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우리는 끊임없이 경쟁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편안해져야 할 텐데, 오히려 더 팍팍해져 갑니다. 그것은 자꾸 우리의 시선이 주변 사람들에게 가기 때문입니다. 나의 삶을 이웃과 비교하고, 내 삶 안에서의 옳고 그름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참된 판단과 참된 성장은 하느님의 음성을 올바로 듣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려면 주변을 기웃거려 내 시선을 방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하느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아브람은 고향과 친족을 버리고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여행을 떠납니다. 그의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러 가기 위한 것이 아니고, 무언가를 잊어버리려고 떠나는 것도 아닙니다. 나에게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참된 음성을 들으려고 떠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그 안에서 내 삶의 방향을 제대로 확립할 때, 비로소 경쟁도 건강해집니다. 내 안에 좀 더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좀 더 최선을 다하도록 나를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상대방의 성장도 축하해 줍니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경쟁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나의 성장을 멈추게 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비하나 비난으로 이어집니다. 하느님 앞에 올바로 서면, 내 눈 속의 들보는 저절로 보이고, 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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