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8주간 금요일] 무화가 나무 저주 (마르 11,11-25)

2016. 5. 27. 오전 5: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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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8주간 금요일]  무화가 나무저주 (마르 11,11-25)


 

베드로 사도는 저마다 받은 은사에 따라 하느님 은총의 훌륭한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라고 권고한다.(베드로 1 4,7-13)
사랑하는 여러분, 7 만물의 종말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기도하십시오. 8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많은 죄를 덮어 줍니다. 9 불평하지 말고 서로 잘 대접하십시오. 10 저마다 받은 은사에 따라,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의 훌륭한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십시오. 11 말하는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봉사하는 이는 하느님께서 주신 힘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느님께서 무슨 일에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영광과 권능을 누리십니다. 아멘.
12 사랑하는 여러분,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에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13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도 여러분은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96(95),10.11-12.13(◎ 13ㄴ 참조)
◎ 세상을 다스리러 주님이 오신다.
○ 겨레들에게 말하여라. “주님은 임금이시다. 누리는 정녕 굳게 세워져 흔들리지 않고, 그분은 민족들을 올바르게 심판하신다.” ◎
○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여라. 바다와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은 소리쳐라. 들과 그 안에 있는 것도 모두 기뻐 뛰고, 숲 속의 나무들도 모두 환호하여라. ◎
○ 그분이 오신다.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 세상을 다스리러 그분이 오신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민족들을 진리로 다스리신다. ◎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시어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라고 하신다. ( 마르코 11,11-25)
예수님께서 군중의 환호를 받으시면서 11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곳의 모든 것을 둘러보신 다음,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열두 제자와 함께 베타니아로 나가셨다.
12 이튿날 그들이 베타니아에서 나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시장하셨다. 13 마침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멀리서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무엇이 달렸을까 하여 가까이 가 보셨지만,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4 예수님께서는 그 나무를 향하여 이르셨다. “이제부터 영원히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다.
15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그곳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셨다.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도 둘러엎으셨다. 16 또한 아무도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지 못하게 하셨다. 17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18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분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군중이 모두 그분의 가르침에 감탄하는 것을 보고 그분을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19 날이 저물자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 밖으로 나갔다. 20 이른 아침에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다. 21 베드로가 문득 생각이 나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보십시오. 스승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22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을 믿어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


연중 제8주간 금요일 제1독서 (1베드4,7-13)


"저마다 받은 은사에 따라,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의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십시오. 말하는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봉사하는 이는 하느님께서 주신 힘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느님께서 무슨 일에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10-11) 

8절과 9절에 이어, 베드로는 본절에서도 재림을 기다리는 신도들이 상호간에 취해야 할 바람직한 생활 자세에 대하여 권면한다. 그것은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느님의 다양한 은사를  맡은 선한 관리자 같이 서로 봉사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관리자'로 번역된 '오이코노모이'(oikonomoi)의 원형 '오이코노모스'(oikonimos)'집'을 의미하는 '오이코스'(oikos)와 '관리'를 의미하는 '노모스'(nomos)의 합성어로서 본래는 '집안 관리'라는 의미이다. 

이 단어의 용례를 보면, 맡겨진 일과 연관된 집안 관리인의 활동이나 직위를 의미하는 것(루카12,42;16,1-9) 에서부터, 은유적으로 교회의 일이나 기능에 관계되는 용어(1코린4,1;9,17; 콜로1,25)에 이르기까지 '관리' 혹은 '봉사'라는  두 가지 의미를 포괄적으로 가진다. 본문에서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쓰였다. 본절에서는 이 관리인(청지기 혹은 집사)들이 하느님께로부터 은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은사' 즉, '카리스마'(charisma)는 하느님의 은총에 기초해서 그 백성에게 무상으로 주어진 영적 선물(특은)을 말하는데, 코린토 전서 12장 8절 이하에 나오는 특별한 은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 가르치는 것, 자선을 베푸는 것, 자비를 베푸는 것들 처럼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섬기는 데 유익한 모든 것을 포괄한다.(로마12,6-8) 

그런데 이 은사를 받은 관리인들은 특별한 사람 몇 명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라는 표현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관리인들은 소수가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본절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각각 은사가 주어졌으며, 그 은사를 맡은 관리인으로서  받은 바 은사를 가지고 서로의 유익을 위해서 봉사하고 섬겨야 한다고 권면하는 것이다. 

은사를 교회 봉사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은사를 맡기신 목적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익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봉사하는 이는 하느님께서 주신 힘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11) 

본절은 10절에 이어, 신도들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아 사용하는 은사의 범주 두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말하는 것에 관계되는 것이고, 둘째는 봉사하는 것과 관계되는 것이다. 

원문은 '만일 누가 말을 한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라' 이다. 본절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가리킬 때는, 흔히 '말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랄레이'(lallei)가 쓰였지만, 하느님이 말씀 가리킬 때는 특별히 '신탁'(oracles)을 의미하는 '로기아'(logia)가 쓰였다. 

이런 점으로 보아, 하느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말을 하라고 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말할 때, 특히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할 때에 '하느님의 신탁'을 전하는 것처럼, 신중하고 또한 그 신탁을 주신 자의 존귀함과 영광이 잘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모습은 오직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말씀을 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모범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베드로는 신도들이 봉사를 하려면, 하느님께서 주신 힘으로 봉사하는 것같이 하라고 권한다. 여기서 '주신'으로 번역된 '코레게이'(choregei)의 원형 '코레게오'(choregeo)는 본래 고전 희랍어에서는 '합창단의 연습 비용을 지불하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신약성경에서는 '충분히 공급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2코린9,10)

본문에서는 현재 시제로 쓰여, 하느님께서 봉사에 필요한 능력을 한 번만 주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충분하게 공급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신도들은 봉사할 때에 자신들의 특출한  능력 때문에 하는 것으로 착각하거나 그로인해 자신을 드러내는 교만한 태도를 버리고, 그 모든 것을 주시는 하느님께 모든 영광이 돌아가도록 해야한다. 

이것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의 생애동안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말하고 행동했던 것처럼, 신도들도 예수님의 본을 따라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면 하느님께서 무슨 일에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11) 

본문에서 베드로는 하느님의 영광(doxa; 독사)을 위하여 은사를 사용할 것을 권면하는 동시에 감격에 넘친 찬양을 드리고 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분은 '성부 하느님' 이시다.

               



 연중 제8주간 금요일 복음 (마르11,11-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4)

여기서 '기도하며 청하는'에 해당하는 '프로슈케스테 카이 아이테이스테'(proseucheste kai aiteisthe)의 두 동사는 모두 현재 시제이고, 기본형은 '프로슈코마이'(proseuchomai)'아이테오'(aiteo)이다.

희랍어의 현재 시제계속이나 반복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기도하고 계속 청하는'으로 번역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고 (루카18,1~8), 온갖 기도와 간구를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것을 위해 깨어 간구하기를 항상 힘쓸 것을(에페6,18), 즉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1테살5,17).

그런데 '프로슈코마이'(proseuchomai)는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을 나타내는 기도에 대한 일반적인 용어이고, '아이테오'(aiteo)는 주로 어떤 구체적인 것을 요구하거나 간청하는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여기서 이러한 구분으로 쓰였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기도로 청하는' 중언법적인 강조로 보아야 한다.

한편, '믿어라'에 해당하는 '피스튜에테'(pisteuete)'피스튜오'(pisteuo)의 명령법 현재'계속해서 믿어라'를 뜻한다. 그리고 '받은'에 해당하는 '엘라베테'(elabete; have received)'취하다', '가지다' 등의 뜻을 지니고 있는 '람바노'(lambano)직설법 부정(不定) 과거형이다. 

이것은 '이미 받았음'을 뜻한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이 '이미 받았음'을 계속해서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권능과 신실하심을 믿고, 아무 근심 걱정없이 오로지 감사함으로 계속 기도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필리4,6).

이같은 사실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에 해당하는 '에스타이'(estai; will be)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에스타이'(estai)'되다', '~이다'라는 뜻의 '에이미'(eimi) 동사의 미래형으로 '될 것이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미래 어느 시점에서 이루어질 것을 말하고 있다. 

기도하며 청하는 것은 현재 시점이다. 그리고 그 간구가 이루어지는 것은 미래 시점이다. 그러나 받은 것은 확실함을 나타내는 부정(不定) 과거 시점이다. 

이것은 기도하며 청한 것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인데, 그것은 하느님의 권능 안에서 이미 받은 것으로 믿는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루카18,1~8; 야고1,6; 마태7,11참조).


[매일미사(다해) 16-05-27] - 연중 제8주간 금요일귀농교육에서 만난 무화과! 고품질로 탄생시켰다!

베타니아에서 예수님께서는 배가 고프셔서 무엇인가를 드시고 싶었습니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고 싶으셨으나 열매가 달리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나무는 메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의 탐욕 속에 빠져 멸망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신앙인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상인들과 환전상들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장사를 하여 많은 이익을 남겼습니다.

성전이 돈벌이 장소로 변질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전 정화는 외면적으로 상인들과 대사제들의 죄악을 드러내는 행위였지만, 메시아의 도래를 알려 주는 예언이었습니다.

이 행위로 예수님께서는 죽어야 할 표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방식을 알려 주셨습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살되 세상의 가치관에 따라 살지 않는 구원의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크고 화려한 교회, 세상의 부와 명예를 지닌 교회를 지향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발걸음은 먼저 어둡고 그늘진 사람들의 구원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미움과 증오가 있는 곳에 용서와 사랑이 있게’ 하는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다.> 송영진 모세 신부


“이튿날 그들이 베타니아에서 나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시장하셨다.
마침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멀리서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무엇이 달렸을까 하여 가까이 가 보셨지만,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나무를 향하여 이르셨다.
‘이제부터 영원히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다(마르 11,12-14).”


“예수님께서는 시장하셨다.” 라는 말은,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인간들에 대한
예수님의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말로 해석됩니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위선자들’로 해석됩니다.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말입니다.
제 철이 아니어서 열매가 없는 것은 무화과나무의 잘못이 아닙니다.
따라서 열매가 없다는 이유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잘못한 일이 되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고,
뭔가 상징적인(또는 비유적인) 뜻이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위선자들’로 해석한다면,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위선자들의 변명으로 해석됩니다.
“우리는 안식일에는(주일에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
또는 “우리는 성전에서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 라는 변명.
그러나 신앙인은 언제나 어디서나 신앙인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는 그 순간, 존재 자체가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으로서 살지 않아도 되는 때는 단 한 순간도 없습니다.
또 신앙인으로서 살지 않아도 되는 장소도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주일만, 또 성전에서만 신앙인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고3 수험생이라고 해서 신앙인이 아닌 것도 아니고,
신앙생활을 중단해도 되는 특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부득이하게 기본적인 일들을 못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다릅니다.


어른들 경우, 유흥업소에 가서 신자가 아닌 척 한다면,
그것은 큰 죄를 짓는 일이 됩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을 배반하는 죄.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집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때라도,
우리는 자기가 신앙인이라는 사실을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소한 말과 행동도 조심해야 합니다.


‘무화과 철’을 ‘부르심’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우리는 언제든지 즉시 응답해야 합니다.
(바로 응답할 수 있도록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대로 그 때를 정할 수 없습니다.
‘부르심’에는 교회의 어떤 직책을 맡으라는 ‘부르심’도 있고,
이제 그만 지상 생활을 마치고 하느님 나라로 들어오라는 ‘부르심’도 있습니다.
누가 감히 “지금은 때가 아니니 나중에 가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무화과 철’을 ‘종말과 심판’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종말의 때를 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권한입니다(마르 13,32).
인간은 아무도 그 날과 그 시간을 계산할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회개는 지금 해야 합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지금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르 13,33).”


“이제부터 영원히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너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 라는 뜻입니다.
표현만 보면 최종 선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경고’입니다.
회개하면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늦기 전에, 바로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이 경고 말씀은 소금에 관한 말씀과 비슷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


신앙인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이고, 쓸모 있는 일꾼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떠나면 그 사랑과 그 ‘쓸모’를 잃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빼앗으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야기 다음에
성전을 정화하시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성전 정화’는 열매를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를 베어버리신 일과 같습니다.


사실 당시에 성전에서의 장사는 예배를 돕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외국 돈을 헌금용 돈으로 바꿔주기 위해서 환전상들이 필요했고,
하느님께 바칠 제물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비둘기나 짐승들을 파는 장사꾼들도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이 많은 것은
하느님께 헌금과 제물을 바치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되고,
그런 일로 성전이 북적거릴수록 성전 예배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즉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을 뿐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식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성전에서 장사하는 일은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전락시키는 일이었습니다(마르 11,17).
하느님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겉으로만 내세운 명분이었고,
사실은 자기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이 바로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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