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8주간 목요일]예리코 눈먼 이 (마르 10,46ㄴ-52)
베드로 사도는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 쓰이도록 하라며,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예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라고 권고한다.(베드로 1서 2,2-5.9-12)
사랑하는 여러분, 2 갓난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으로 자라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3 주님께서 얼마나 인자하신지 여러분은 이미 맛보았습니다.
4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이십니다. 5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9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10 여러분은 한때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분의 백성입니다. 여러분은 자비를 입지 못한 자들이었지만, 이제는 자비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이방인과 나그네로 사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는 육적인 욕망들을 멀리하십시오. 12 이교인들 가운데에 살면서 바르게 처신하십시오. 그래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여러분을 중상하는 그들도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지켜보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눈먼 바르티매오가 자비를 호소하자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치유해 주신다.(마르코 10,46ㄴ-52)
그 무렵 46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9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다. 50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51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52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목요일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복음 (마르10,46ㄴ-52)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50)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소경을 불러오라고 명하시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소경을 부르고 있는 장면을 생생하게 기록하였으며, 또한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해 소경 바르티매오가 어떻게 반응하였는지를 현장감있게 생생하게 기록하여 역동감을 더해 준다.
여기서 '겉옷'에 해당하는'히마티온'(himation; garment; cloak)은 70인역(LXX)에서 '겉옷'과 '의복'의 두 가지 뜻을 모두 나타내는 히브리어 '베게드'(beged)에 대한 역어로 나온다. 이 겉옷은 일교차가 큰 팔레스티나에서는 밤에 이불의 역할을 했다.
따라서 이것은 생활 필수품이었으며, 특히 거지 바르티매오에게는 낮에는 거지 행세를 할수 있는 유니폼이었다.
낮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지 노릇을 할 수 있는 유니폼이요, 밤에는 이부자리가 되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 갔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요 용기였다.
만일에 그가 예수님께 갔다가 치유받지 못한다면,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경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의 소리가 들리는 그 방향으로 재빨리 나아가는데 있어서 그 겉옷이 방해물이 되자 그토록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었지만, 미련없이 가차없이 내어 버렸다.
참으로, 단 한번만이라도 예수님을 가까이 대면하고 싶었던 그의 간절하고 뜨거운 마음과, 예수님을 만난다면 자신이 반드시 치유받을 수 있으리라는 내적 확신(믿음)과 희망이 이런 행동을 가능케 했다고 본다.
<예리코에서 눈먼 이를 고치시다.>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최후의 만찬 때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4).”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리코의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는
예수님께 청해서 얻은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마르 10,47).”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소문만 들었지만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은,
그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청하면’ 이루어
주겠다는 예수님의 약속들은
아무거나 다 청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느님 뜻에 합당한 것, 또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청해야
합니다.
바르티매오는 무엇을 청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고,
바로 그것을 청해서 얻은 사람입니다.
그가 청한 자비는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것인데(마르 10,51)
이것은 새 인생을 살게 해 달라는 간청입니다.
거지들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하는 것은
보통 몇 푼의 돈을 달라는 뜻이지만,
바르티매오는 몇 푼의 돈이 아니라 새 인생을 원했습니다.
‘외치기
시작하였다.’ 라는 말은 그의 간절함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습니다(마르 10,48).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꾸짖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
경우에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경우에는
공공연하게 그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호칭을 사용하지 말라고 바르티매오를 꾸짖은 것입니다.
(당시에 ‘메시아’를 뜻하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정치적인 뜻이 들어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호칭을 사용했다가는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안수해 달라고 청했을 때,
제자들이 그것을 막은 일이 있었습니다(마르 10,13).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시면서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르
10,1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
또는 예수님께서 만나고 싶어 하시는 어린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바르티매오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불러오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마르 10,49).
(복음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꾸짖으셨다는 말이 없지만,
사람들을 꾸짖으셨거나 언짢아하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다는 말을
듣자,
바르티매오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갑니다(마르 10,50).
겉옷을 벗어 던졌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옛 삶’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새 삶’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옛 삶’은 스스로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또는
‘새 삶’을 청하려면 ‘옛 삶’을 버려야 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 삶’을 주셔도 자기 스스로 ‘옛 삶’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시는 것을 제대로 받지 않는 일이 됩니다.
바르티매오가 벌떡 일어났다는
것은 그의 간절한 심정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가실 수도 있었고,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눈먼 그가 스스로 일어나서, 당신을 향해서 올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기다리셨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가 ‘능동적으로’ 새 인생을 향해서 나아가게 만들기 위해서
그에게 주신 ‘작은 시련’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마르
10,52).”
“가거라.” 라는 말씀은,
“새 인생을 향해서 나아가라.” 라는 뜻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는 말씀은,
“내가 너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겠다.” 라는 뜻이기도 하고,
“이제부터는 믿음으로써 구원을 향해서 나아가라.”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시 볼 수 있게 된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가시는 중입니다.
그래서 바르티매오가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는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동참했다는 뜻이 됩니다.
다시 볼 수 있게 된
바르티매오가
새 직업을 구해서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인생을 향해서 가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동참했다는 것은,
그가
바란 ‘새 삶’은 지상에서의 새 인생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의 새 인생, 즉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었음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단순한
치유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간절하게 예수님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께 무엇을 청해야 하는가?
신앙인으로서
정말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등을 생각하게 하고,
그 답을 깨닫고 실천하도록 인도해 주는 중요한
가르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