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7주간 목요일] 작은이 (마르 9,41-50)

2016. 5. 19. 오전 7:4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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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7주간 목요일]  작은이 (마르 9,41-50)
 



야고보 사도는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는 부자들에게, 일꾼들에게서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그 아우성이 주님 귀에 들어갔다며 경고한다. (야고보 5,1-6)
1 자 이제, 부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닥쳐오는 재난을 생각하며 소리 높여 우십시오. 2 그대들의 재물은 썩었고 그대들의 옷은 좀먹었습니다. 3 그대들의 금과 은은 녹슬었으며, 그 녹이 그대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고 불처럼 그대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대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였습니다.
4 보십시오, 그대들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곡식을 거두어들인 일꾼들의 아우성이 만군의 주님 귀에 들어갔습니다. 5 그대들은 이 세상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렸고, 살육의 날에도 마음을 기름지게 하였습니다. 6 그대들은 의인을 단죄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대들에게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시편 49(48),14-15ㄱㄴ.15ㄷㄹㅁ-16.17-18.19-20(◎ 마태 5,3)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이것이 자신을 믿는 어리석은 자들과, 그 말을 좋아하며 따르는 자들의 운명이다. 그들은 양들처럼 저승에 버려져, 죽음이 그들의 목자 되리라. ◎
○ 아침에는 올곧은 이들에게 짓밟히고, 저마다 그 모습이 썩어, 머나먼 저승으로 사라지리라. 하느님은 내 영혼을 구원하시고, 저승의 손아귀에서 기어이 빼내시리라. ◎
○ 누군가 부자가 된다 하여도, 제집의 영광을 드높인다 하여도 부러워하지 마라.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으며, 영광도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 ◎
○ “네가 잘한다고 사람들이 칭찬한다.” 사는 동안 스스로에게 말할지라도, 조상들이 모인 데로 내려가,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하리라. ◎


예수님께서는 남을 죄짓게 하거나 손과 발로 죄를 짓기보다는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고 하신다. (마르코 9,41-5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42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4)
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6)
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49 모두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연중 제7주간 목요일 제1독서 (야고5,1-6)


"그대들의 재물은 썩었고 그대들의 옷은 좀먹었습니다. 그대들의 금과 은은 녹슬었으며, 그 녹이 그대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고 불처럼 그대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대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였습니다." (2-3) 

야고보서 수신자들이 살던 지역의 당시 부자들이 축적한 부의 대상물은 곡식, 호화스러운 옷, 값비싼 금과 은들이었다. 여기서 '재물'로 번역된 '플루토스'(pllutos; richedl wealth)당시 부의 척도가 되었던 '곡식'을 의미한다. 

그런데 야고보는 이것들 모두가 '썩었고'('세세펜'; sesepen; are corruptes; has rotted), '좀 먹었으며'('세토브로타 게고넨'; setobrota gegopen; are moth-eaten; moths have eaten), '녹이 슬어버렸다'('카티오타이'; katiotai; is corroded; is cankered)고 말한다. 

여기서 그들이 축적한 부의 쓸모없음을 표현한 '썩었고'로 번역한 '세세펜'(sesepen)'좀 먹었으며'로 번역한 '세로브로타 게고넨'(setobrota gegonen), 3절에서 '녹슬었으며'로 번역된 '카티오타이'(katiotai)  동사 모두가 완료시제이다. 희랍어 문법에서 완료시제는 말하는 시점에서 이미 완료된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재물은 썩었고'라는 것은 불의한 부자들이 자신의 곡식을 가난한 자들과 나누지 않고 그것들을 창고에 쌓아 놓기만 해서 쓸모없이 이미 썩어버렸음을 말한다. 그들에게는 썩어서 버릴 만큼 많은 재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옷은 좀먹었습니다'라는 것은 입지 않고 옷장에 보관해 둔 옷이 너무 많아 좀 먹을 정도였다는 다소 과장된 표현이다.  당시 의복은 재산 중 큰 가치를 차지했는데(마태5,40; 사도20,33) 좀이 먹어 입지 못할 정도로 옷이 많았으며, 자신에게 필요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은 그들의 공동체 내의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던 것이다(야고2,2). 

그들이 소유한 것들은 모두 영원한 것이 아니고 그저 이 세상에 살 동안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지게 될 아주 일시적인 것들에 불과함에도, 그들은 그것들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을 것처럼 아끼고 또 아꼈다.  

그래서 야고보는 '썩었고', '좀먹었으며', '녹슬었으며'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바로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부가 궁극적으로는 전혀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강조하고 있다(루카12,16-21; 사도20,35; 마태6,19-21참조).  

'그대들의 금과 은은 녹슬었으며'

부자들은 금과 은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야고보는 그것들이 모두  녹슬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금은 녹이 슬지 않는 물질이다. 여기서 '카티오타이'(katiotai)라는 동사는 분명히 금속이 녹이 스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따라서 3절의 이 표현은 상징적 표시로서, 불의한 부자들이 다량 소유하고 있는 금과 은이 가난한 자들 및 필요한 자들, 그리고 그들이 고용하여 일한 자들에게 나누어지지 않음으로 해서 쓸모없게 되어버렸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좋다.

불의한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금과 은이 그것을 주신 하느님의 본래 의도에 맞게 쓰여지지 않았으며, 그런 자들은 하느님 대전에 그들이 인정받는데 어떠한 효용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녹이 그대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고  불처럼 그대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 녹이'에 해당하는 '호 이오스 아우톤'(ho ios auton)'그것들의 녹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사용된 복수 인칭 대명사는 그들이 활용하지 않은 재물들이 많았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되고'에 해당하는 '에스타이'(estai)직설법 미래 시제 동사로서 확실하게 발생하게될 미래의 사실을 지칭한다.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금과 은의 녹이 그들에게 증거가 될 것이라는 표현은 후에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실 때에 바로 그것들이 부자들을 고발하고 단죄하는 결정적 증거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그것들이 불처럼 그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이라는 직유법의 표현은 최후의 심판 때에 그것들로 인해 부자들이 철저하게 파멸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특히 여기서 '불'로 번역된 '퓌르'(pyr; fire) 하느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상징이며 형벌의 도구로서 지옥불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결국 불의한 부자들은 부정하게 축적한 부 때문에, 약자들을 착취하고 남을 짓밟으면서  쌓은 재물 때문에, 또한 주위에 그들의 도움을 호소하는 자들을 외면해 버리고  자신들의 배만을 채우는 데 소비한 물질 때문에 스스로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그들의 재물은 그들을 파멸에 빠지도록 재촉할 뿐, 결코 그들을 구원할 수단이 못된다는 말이다. 

'그대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였습니다' 

이 구절의 시제는 부정 과거 시제이므로, 미래에 있을 어떤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야고보가 이미 목격한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마지막 때'에 해당하는 '에스카타이스 헤메라이스'(eschatais hemerais; the last days)야고보 사도가 살고 있던 초대 교회 당시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 때' 앞에 붙어 있는 전치사 '엔'(en)'~을 위해' 보다는 '~안에'로 번역해야 하고, 신약 성경 여러 곳에도 종말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진술이 있기 때문에 (사도2,17; 2티모3,1; 히브1,2; 2베드3,3), 야고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종말이라고 칭했으며, 바로 그런 때에 불의한 부자들이 재물을 쌓았음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종말은 실로 주님을 찾아야 할 때이며, 그 때 이 세상의 형상과 발자취는 지나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1코린7,25-31참조). 종말은 하느님의 심판이 찾아오는 때이며 불시에 닥치는 성질의 것이다.

               

5월 22일 연중 제7주간 목요일 ( 사랑하라 )

<물 한 잔>  송영진 모세 신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르 9,41)."


이 말씀은, 바로 앞에 있는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마르 9,40)."
라는 말씀에 대한 보충 설명과 같은 말씀인데, "신앙인이 아닌 사람이라도 신앙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은 하느님의 상을 받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물 한 잔'은 사소한 도움을 뜻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그것이 선행이고 자비라면 하느님께서 상을 주실 것입니다.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지금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표현입니다. 상을 받는 때는 최후의 심판 때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상을 주신다면 어떤 상을 주실까?
이 상은 '구원'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상을 주시고 나서, 안 믿었다는 이유로 심판하고 처벌하신다면, 그것은 모순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은, 안 믿었던 사람이라도 신앙인에게 선행과 자비를 베푼다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로 보여도 그 일을 보시고 그를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은, 아버지의 뜻을 실행해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과 대조를 이룹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이 말씀은,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아버지의 뜻'을, 즉 '사랑과 자비'를 실천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들이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처럼 말씀하시고,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주 쉬운 일처럼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아니면, "그렇다면 신앙생활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냥 착하게 살면서 선행과 사랑을 실천하기만 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않겠는가?"
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예수님께서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넓은 문을 주시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좁은 문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들은, 하느님은 사람의 겉이 아니라 속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에 심판 때에는 겉모습이 아니라 '삶'을 보신다는 가르침입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사실상 같은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신앙인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주는 것은 예수님께 사랑을 드리는 것과 같고, 공적으로 신앙고백을 하지 않았어도 예수님을 믿는 것과 같은 일이 됩니다.

(믿는 사람이든지 안 믿는 사람이든지 간에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은 천국에 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자기 스스로 지옥으로 가겠다고 하지 않는 한...
살면서 한 번이라도 선행을 했다면, 그 한 번의 선행 때문에 지옥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마르 9,42)." 라는 말씀은, 앞의 '물 한 잔'에 관한 말씀과 대칭을 이루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을 유혹해서 죄를 짓게 만드는 일은, 그 사람이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막고 그를 지옥으로 데리고 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스스로 지옥으로 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 벌이 더욱 엄할 수밖에 없습니다.


"네 손(발,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마르 9,43-47)." 라는 말씀은, 죄를 짓지 않도록 철저하게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손과 발을 잘라 버리고 눈을 빼 던져 버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죄는 손, 발, 눈 때문에 짓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으려고 했기 때문에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뿌리는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 7,20-23)."


마음이 죄를 짓게 한다면, 그 '마음'이라는 것을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을 잘라 버릴 수는 없으니, 그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즉 자기 안에서 생기는 욕망들을 다스려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원인은(뿌리는) 그들의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창세 3,6)."
사탄의 말에 귀를 기울인 하와의 귀가 죄를 짓게 만든 것도 아니고, 선악과를 쳐다본 하와의 눈이 죄를 짓게 만든 것도 아니고, 그 열매를 딴 하와의 손이 죄를 짓게 만든 것도 아닙니다.
선악과를 따서 먹고 싶다는 하와 자신의 욕망이 죄의 원인입니다.


사탄의 유혹은 그 욕망을 다스리는 힘을 약화시킨 일입니다.
아담은 하와 때문에 그랬다고 변명했고, 하와는 사탄 때문에 그랬다고 변명했지만(창세 3,12-13),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변명을 인정하시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이 죄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에는,
죄와 욕망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키는 일이 유혹입니다.
그 일이 죄인지 아닌지 잘 모르고 있는 경우에는, 그 일을 해도 죄가 안 된다는 확신을 심어서 죄를 짓게 만드는 일이 유혹입니다.)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마르 9,41-50/전원 신부 강론


야고보 사도는 탐욕스러운 부자들에게 회개하고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하라고 훈계합니다. 하느님의 정의가 가져올 재난에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전의 삶과 단절하고 하느님께 돌아오도록 강한 어조로 설파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과 약한 이들을 돌보고 맞아들이라는 하느님의 가르침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의 종말에 대해 성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돌아서는 회개는 거창한 일을 실천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작은 일에서 시작됩니다. 한 잔의 물을 주는 것에서, 작은 사랑을 이웃에게 베푸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것은 진정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잘것없는 이에게 베풀어 하느님을 현존시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착한 사마리아인’의 사랑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짠맛을 잃지 않는 소금은 사랑의 행위를 뜻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여야 짠맛을 잃지 않는 소금이 됩니다. 그 사랑을 실천하지 못할 때, 우리는 아무 쓸모가 없는 가라지가 되어 지옥의 불구덩이에 던져질 것이며 불 소금에 절여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두렵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성령께서는 당신 자녀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먼저 받은 주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이 ‘참소금 되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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