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7주간 수요일]지지하는 사람 (마르 9,38-40)
야고보 사도는 우리의 생명은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연기일 따름이라며, 허세를 부리지 말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좋은 일을 하라고 가르친다. (야고보 4,13-17)
사랑하는 여러분, 13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14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15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16 그런데도 여러분은 허세를 부리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 17 그러므로 좋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곧 죄가 됩니다.
시편 49(48),2-3.6-7.8-10.11(◎ 마태 5,3)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모든 백성들아, 잘 들어라. 세상 모든 사람들아, 귀를 기울여라. 천한 사람 귀한 사람, 부유한 자 가난한 자 다 함께 들어라. ◎
○ 뒤쫓는 자들이 악행으로 나를 에워쌀 때, 그 불행한 날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랴? 그들은 자기 재산만 믿고, 재물이 많다고 자랑한다. ◎
○ 사람이 사람을 어찌 구원하랴? 하느님께 제 몸값을 치를 수도 없거늘. 그 영혼의 값 너무 비싸, 언제나 모자란다, 그가 영원히 살기에는, 구렁을 아니 보기에는. ◎
○ 정녕 그는 보리라, 지혜로운 이도 죽고, 어리석은 자도 미욱한 자도 사라진다. 재산을 남들에게 남겨 둔 채 모두 사라지리라. ◎
예수님께서는 당신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을 막지 말라며 반대하지 않는 이는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하신다. (마르코 9,38-40)
그때에 38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연중 제7주간 수요일 제1독서 (야고4,13-17)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15)
앞의 야고보서 4장 13절, 14절에서 자신의 뜻대로만 사는 인생의 어리석음에 대해 경계한 야고보는 4장 15-17절에서는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할 성도의 인생 자세에 대하여 피력하고 있다.
야고보서 4장 15절에서 야고보는 계획을 세우려고 할 때 하느님의 뜻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도리어'로 번역된 '안티'(anti)는 '~에 대항하여', '~에 반대하여'라는 뜻으로 하느님을 고려하지 않고 인생의 계획을 세우는 자들의 교만한 태도(13절)에 반대하여 참되고 겸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를 대조적으로 나타내는 기능을 한다.
즉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때 반드시 '주님의 뜻 안에서' 세워야 함을 암시하는 것이다.
한글 새 성경에서 번역하지 않은 단어 '에안'(ean)은 '만일'(만약)이라는 의미의 조건 접속사로서 성도는 항상 '주님께서 만약 원하신다면'이라는 전제 조건을 가지고 인생 계획을 세워야 함을 강조한다. 이것은 반대로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으신다면 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서간 왕래를 할 때 그들은 편지에 'D.V'라는 문자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을 나타내는 라틴어 'Deo Volente'의 약자이다.
다시 말해서 초대 교회의 신심있고 경건한 성도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이 구현될 수밖에 없음과 또한 구현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사도 바오로 역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미래의 계획이라도 하느님의 뜻에 종속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신념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에페소의 성도들에게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여러분에게 다시 오겠습니다"(사도18,21) 고 말했고, 또한 코린토의 성도들에게는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여러분과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1코린16,7)라고 말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삶의 절대 주권이 하느님께 있다는 사실을 삶 속에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어떤 계획을 세우고자 한다면 먼저 하느님의 뜻을 고려하는 것을 전제하고 선행해야 할 것이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주님의 뜻 안에서 적극적으로 이것저것을 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또한 그것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뜻을 배제한 채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채우고자 계획하는 자들과 달리 자신이 얼마나 덧없고 허무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하느님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의탁하는 겸손함으로 살아야 한다.
<반대하지 않는 이는
지지하는 사람이다.>송영진 모세 신부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마르 9,38)."
이 말에서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는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한 사람이 아니므로"로 해석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 적 없는 사람이, 즉 신자가
아닌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사도들이 보았고, 사도들은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들은 그가
예수님의 권위와 권한을 침해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실제 속마음으로는 사도들 자신들의 권위와 권한을 침해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는 "막았습니다."로 바꿔야 합니다.)
그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도
그렇고, 요즘의 법률 상식으로도 그렇고,
요한 사도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은 것은 정당하다고,
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허락도 안 받고 예수님의 이름을 마음대로 사용한 죄,
또는 신앙인이라고 사칭한 죄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일반적인
사고방식과는 반대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마르 9,39-40)."
예수님께서는 왜 막지 말라고
하셨을까?
허락도 안 받고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한 사람이 한 일은
'마귀를 쫓아내는 일'이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적'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에서 마귀를 쫓아내는 일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적'의 '적'은 친구와 같습니다.
또
마귀가 쫓겨난 것은 예수님의 이름에 복종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을 누가 사용했든지 간에...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 사람이 한
일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도와드린 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기적'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기적'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선'이고, 마귀가 하는 일은
'악'입니다.
그래서 마귀를 쫓아낸 것은 하느님의 일을 한 것이고, 선을 행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막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가 한 일이 선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을 하지는 않았어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냈다는 것은
적어도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또 그는 자기가 한 일을 통해서 예수님을 제대로 믿게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공적으로 고백을 하기 전이라도 믿는 것은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쁘게 말한다는
말은, 예수님의 권위와 권한을 부정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예수님의 권위와 권한을
부정한다면,
자기가 한 일을 부정하는 것도 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부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인정한다는 뜻이 되고,
그것은 자기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세상에 오신 분이다." 라는
우리의 믿음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할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이고, 목자가 찾고 있는 '잃은 양'입니다.
자기 스스로 구원받기를 거부하지 않는
한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귀는 '적'이지만, 사람은 '적'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다.)
(마귀 들린 사람은 마귀가
아닙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일은 마귀 들린 사람을 쫓아내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을 구하는 일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악에
맞서서 싸우는 일은 악인을 제거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을 악에서 구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루카 11,23)."
라는 말씀과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두 말씀은 사실상 같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은 예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그 일을 못하게 막는 것은,
(본의는 그게 아니었더라도) 예수님을 반대하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마귀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
또는 악을 물리치기 위한 싸움에서
중립을 취하거나 방관한다면, 그것도 역시 예수님을 반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자기
편을 들지 않더라도
최소한 예수님 편을 들지 않기를 바라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중립이나 방관은 마귀가 바라는 대로 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지금, 같은 하느님과
같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수많은 종파로 분열되어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서로 박해하기도 했고, 전쟁도 많이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적대시하고, 증오하는 일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일까?
안 믿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자들끼리 서로 싸우는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주님을 위한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결코 주님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신이 다르다고 해서 미워하고 적대시할 이유가 없습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라는
말은
다른 종교 사람들도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지금은 구약시대가 아닙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어떤 사람이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감히 예수님의 제자 행세를 하면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니!”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예수님께 일러바쳤더니 예수님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막지 마라.”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에게도 많은 사색을 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구마’를 함부로 하다가 예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을까? 그 사람이 예수님을 사기꾼으로 만들지 않을까? 그 사람이 허락도 없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자리를 차지했는데 진짜 제자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이러한 상념은 ‘우리가 모르는 하느님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합니다.
마르코 복음사가가 이러한 일화를 전하고 있다는 것은, 그 사건이 요한 사도에게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듣고, 길을 가면서도 자리다툼을 하였습니다. 요한 사도는, 성령의 바람이 불고 싶은 데로 부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요한 3,8 참조). 하느님의 영은 인간이 생각하는 대로, 인간이 욕심부리는 대로 불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기적을 하는 사람은 당신을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요한 사도는 이 사실을 잘 알고 마음에 새겼던 ‘예수님의 애제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