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간 월요일]5. 2.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요한 15,26-16,4ㄱ.)
아타나시오 성인은 295년 무렵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알렉산데르 대주교를 수행하여 니케아 공의회(325년)에 참석하였다. 328년 알렉산데르 대주교의 후계자가 된 아타나시오 주교는 아리우스 이단과 투쟁하는 가운데 여러 차례 유배를 당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성인은 특히 정통 신앙을 옹호하는 책을 많이 남겼으며, 수도 생활의 창시자인 안토니오 성인의 전기를 써서 서방 교회에 수도 생활을 알리기도 하였다.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와 함께 마케도니아 지역의 첫째 도시인 필리피로 가서 자색 옷감 장수인 리디아라는 여자와 그 집안에 세례를 준다.(사도행전 16,11-15)
11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 12 거기에서 또 필리피로 갔는데, 그곳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로 로마 식민시였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13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14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15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박해를 받을 때가 올 것이라며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과 너희가 나를 증언할 것이라고 하신다.(요한 15,26─16,4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16,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3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4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필리피의 성녀 리디아 경당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사도16,11-15)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14-15)
사도행전 16장 11절부터 마지막 절인 40절까지는 바오로 일행의 유럽 선교의 시발지인 리피에서의 활동을 기록한다. 필리피에서의 선교 활동을 이렇게 길게 기록하는 것은 이곳이 유럽 선교의 시발지일 뿐 아니라 이곳에서의 선교 성공으로 인해 유럽 선교의 기틀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필리피 교회는 바오로의 선교 활동에 큰 힘이 되었다. 이것은 바오로가 다른 교회에서는 거부하였던 재정 지원을 필리피 교회에서는 받은 것으로 보아서(1코린9,3-14) 그들에 대한 바오로의 신뢰를 알 수 있다(필리1,3-5; 4,18).
필리피에서의 활동과 관련된 기사는 바오로 일행의 필리피 도착, 자색 옷감 장수 리디아의 회심(사도16,11-15), 점 귀신들린 하녀에 대한 구마 행위로 인한 바오로와 실라의 투옥 및 필리피 감옥 기적 사건(사도16,16-34), 필리피 관리들의 공식 사과와 바오로와 실라의 명예로운 석방(사도16,35-40)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사도행전 16장 14절에서는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인 리디아가 새롭게 등장한다. '티아티라'는 고대 리디아(Lydia) 지역에 속한 한 성읍으로서 '티아의 성읍' 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헬무스 계곡과 카이쿠스 계곡을 연결하는 소아시아의 국경의 요새이기도 했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염색, 의복등의 제조업의 중심지였고, 특히 자색 염료로 유명했다.
바오로 일행은 그들이 찾아간 필리피의 기도처에서 옛날 로마 시민의 겉옷이나 왕족의 겉옷으로 사용되던 자색 옷감 장수를 하던 리디아라는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원래 티아티라 성읍 출신이었으나, 더 큰 도시인 필리피에 와서 거주하면서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그녀는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자로 소개되고 있다. 여기서 '섬기는'으로 번역된 '세보메네'(sebomene)는 현재분사인데, 이 단어의 원형 '세보마이'(sebomai)는 단순히 아랫 사람이 윗 사람을 공경하는 인륜적 차원의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가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이나 신적 존재를 예배하며 숭배하는 종교적 차원의 의미를 나타낸다. 리디아는 하느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사도행전 13잘 43절에는 유다교로 개종된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을 지칭할 때 이 단어를 사용했지만, 본문의 리디아는 유다교에 깊은 관심이 있고 율법을 따라 하느님을 섬기기는 하나, 완전히 개종하지 않은 자로서 코르넬리우스와 티리우스 유스투스와 유사한 신앙(사도10,1.2; 18,17)을 가지고 있던 여인으로 보인다.
그녀는 티아티라 성읍에 살던 때에 하느님을 공경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티아티라 성읍에는 유다인 정착지가 있었고, 그 유다인들을 통해 리디아는 하느님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이 본문은 신앙을 가지게 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예이다. 사람이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가지게 되려면, 첫째로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로마10,17), 둘째로 들은 그 말씀을 깨닫고 받아들어야 한다. 그런데 들은 말씀을 깨닫고 수용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하느님께서 말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열어 주시는 것이다(루카24,45).
여기서 '열어 주셨다'로 번역된 '디에노익센'(dienoiksen ;opened)은 단순히 '열다'는 의미보다 더 강한 의미가 있는 단어이다. 원형 '디아노이고'(dianoigo)는 '철저히' 라는 의미가 있는 '디아'(dia)와 '열다', '열어 젖히다'라는 의미가 있는 '아노이고'(anoigo)의 합성어로서 '철저히 열어 젖히다', '(닫혀 있는 것을)확짝 열어 젖히다'라는 의미이다.
사도행전 17장 3절에는 '설명하고'로 번역되었으며, 루카 복음 24장 32절에서는 '성경을 풀이해 주다'로, 그리고 루카 복음 24장 31절에는 '눈이 열려'로 번역되었다.
한편 사도행전 16장 15절에는 리디아가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은 것으로 나오는데, '호 모이코스 아우테스'(ho oikos autes; the members of her household)로 번역된 '온 집안'은 단순히 건물(house)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가정(home)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에서 가정은 그녀의 혈육만을 한정하는게 아니고 사업가로서 많은 직원들과 인들을 거느리고 있던 리디아에게 속한 모든 자손들을 다 지칭하고 있다는 것이 다수 학자들의 견해이다.
리디아 세례터

‘예수님께서는 어떤 분이실까?’ 우리 모두 한 번씩 스스로 묻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고 대답하십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1요한 5,12).
예수님의 모든 삶은 바로 이 진리를 설파하는 것이어서 ‘반대받는 표적’이 되셨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박해자가 되었습니다.
종이 주인보다 나을 수는 없습니다. 사도들의 공동체는 유다인들의 박해를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다인들은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율법 준수를 요구하며 자신들의 전통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유다인들은 그리스도 신자들을 박해하면서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아버지와 아드님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들이 올바른 일을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위로자’ 성령께서는 제자들이 세상의 증오심에 의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때, 그들의 신앙을 지켜 주십니다. 진리의 성령께서는 그들의 절망과 회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증언하도록 격려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나서며 십자가의 수치를 받아들이는 제자들을 결코 내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순교자들은 예수님의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권력자들 앞에서 증언하며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하느님께 바칠 수 있었습니다.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복음 (요한15,26-16,4ㄱ)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26)
여기서 '성령'을 지칭하는 '보호자'로 번역된 '파라클레토스'(parakletos; comforter)는 '옆에', '곁에'라는 뜻의 '파라'(para; by, at, beside)와 '부름을 받은 자'라는 뜻의 '클레토스'(kletos; invited, called)의 합성어로서, 원래는 '돕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자'라는 수동적인 의미를 가졌었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가리켜서 쓰이며, '남을 위해서 나타난 자', '돕는 자', '상담자', '위로자', '중재자' 등을 뜻한다. 그리고 '진리의 영'에 해당하는 '토 프뉴마 테스 알레테이아스'(to pneuma tes aletheias; the Spirit of truth)는 성령의 본질 및 대표적인 일을 나타내는 명칭이다.
그분은 진실하신 하느님이신 주님(시편31,6)에게서 나오셨으며(요한15,26), 믿는 이들을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시므로(요한16,13), 진리는 성령을 특징짓는 가장 적절한 용어이다. 또한 '진리의 영'이라는 말은 '속이는 영'(1요한4,6)과 대립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진리의 영'의 특징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요한15,26),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시며(요한14,28),믿는 이들을 모든 진리 안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진리'로 번역된 '알레테이아스'(aletheias)는 '알레테이아'(aletheia)의 단수 소유격이며, 70인역(LXX)에서는 히브리어 '에메트'(emeth)의 역어로 흔히 나온다. 성령께서는 사건들을 밝히 드러내시며, 어떤 사건을 참된 모습으로 제시하는 분이다.
그러기에 '진리의 영'이라는 말은 제자들에게 감추어진 부분을 확실하게 보여 주시는 이해의 빛이라는 말이다(요한14,16.17,26).
요한 복음에 나오는 '보호자', '진리의 영'에 대한 구절들에는 성부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님의 요청을 받아들여, '보호자'이시며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실 것과 성령의 하시는 일이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요한 복음 15장 26절에는 이러한 구절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내용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직접 성령을 보내신다는 것이다.
1인칭 단수 동사 '보낼'에 해당하는 '펨프소'(pempso; I will send) 앞에 1인칭 단수 대명사 '내가'에 해당하는 '에고'(ego; I)가 단독으로 쓰인 사실이 이것을 더욱 강조한다.
물론 요한 복음 15장 26절에서도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라는 표현으로서 성부 하느님께서 보내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지만, 동시에 성자께서도 성령을 보내시는 주체로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이러한 사실이 특별히 언급되는 것은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와 동일한 신성(神性)을 지니셨으며, 본질적으로 하나이심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니체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나오는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라는 교리의 성경적 근거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으로부터 발출한다는 이 교리를 동방 교회에서는 거부하였다.
동방 교회에서는 성령을 오직 성부 하느님에게서만 발한다고 주장하며, '아버지에게서'에 해당하는 '파라 투 파트로스'(para tou patros; from the Father)을 성령 발출의 근원으로 보고, '보낼'에 해당하는 '펨프소'(pempso; I will send)는 이것에 종속된 것으로만 보았던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석 차이는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분열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구절의 표현에서 성령을 보내시는 주체가 성부 하느님만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으로서 성자 하느님 역시 성령을 발출함을 볼 수 있다.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에 해당하는 '마르튀레세이 페리 에무'(martyresei peri emou; he will testify about me)는 '나에 관하여' 혹은 '나를 위해서 계속해서 증인이 될 것이다'는 뜻이다. 전치사 '페리'(peri)는 '관하여'(of)라는 뜻 뿐 아니라 '위하여'(for) 라는 뜻도 가지고 있어서 성령께서 증거하는 이중적인 내용을 나타낸다. 즉 성령께서는 예수님에 관하여 증거할 뿐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서 증거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증언하실 것이다'에 해당하는 '마르튀레세이'(martyresei)는 '마르튀레오'(martyreo)의 미래 시제로 '계속해서 증언하실 것이다', '계속해서 증인이 되실 것이다'라는 뜻으로서, 성령께서 오실 때에 계속 진행될 일이 예수님께 관한 증거임을 알게 된다.
이것은 모든 믿는 이들의 활동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데에 맞추어져야 함을 일깨우시는 말씀이다.
그리고 성령의 현존과 역사를 가시적인 특수한 은사와만 관련지어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진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사용되어지지 않는 은사는 모두 잘못된 것이다 (사도1,8 참조).
<나를 증언하여라.>송영진 모세 신부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15,26-27)."
이 말씀 바로
앞에는
제자들이 세상의 미움과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예고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세상의 미움과 박해를 받더라도
굴하지 말고 신앙을 증언하여라."
라는 격려 말씀입니다.
'보호자, 진리의 영'은
'성령'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보호자'이고,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에 '진리의 영'입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이라는 말은,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라는 말씀은,
제자들이 증언할 때 도와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19-20)."
그러나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능동적으로 증언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성령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라는 명령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들었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보고 들은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야
하고,
증언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하는 증언과
제자들 자신들이 하는 증언은 사실상 하나입니다.
제자들이 능동적으로 증언하려고 노력할 때 성령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또는 성령의 도움을 믿고
능동적으로 증언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증언'은 오늘날의
신앙인들도 해야 하는 일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마태 10,27)."
신앙생활은 일차적으로는 자기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생활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생활이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 일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특히 '삶'으로
믿음을 증언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말씀과
마태오복음 28장 20절의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말씀은 모순이 아닌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신앙인들과 언제나 항상 함께 계신다면
성령을 안 보내셔도 되는 것 아닌가? 왜 꼭 성령을 보내셔야
하는가?")
"왜?" 라고 묻는다면, 그 답은 "모른다."이지만,
예수님께서 '성령의 활동 안에서 현존하신다.' 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을 보는 것은 곧 아버지를 뵙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요한 14,9) 적용하면,
"우리가 성령의 활동을
체험하는 것은 곧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이다."
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6,1-4ㄱ)."
이 말씀도 박해 예고
말씀인데,
박해를 받더라도 믿음을 잃지 말라는 격려 말씀이기도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이라는 말씀에서 '이
말'은,
제자들이 세상의 미움과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요한 15,18-25) 가리킵니다.
'떨어져 나가다.' 라는 말은
'신앙을 버리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내가 박해를 예고한 것은
너희가 신앙을 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박해를 미리
예고하신 것은
겁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기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은 박해를 받게 되면
예수님께서 그것을 이미
예고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게 될 것이고(4절),
그 기억은 모든 일이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라는 말은, 박해가 하느님의 계획이라는 뜻도 아니고,
하느님께서 박해를 허락하신다는 뜻도 아닙니다.
이것을 "모든 일은
하느님의 손바닥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받게 될 박해를 알고 계시니,
그
박해에 대한 대비도 미리 하셨을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우리는 육신의 목숨을 빼앗기더라도 영원한 생명을 잃는 일은
없도록
끝까지(죽을 때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라는 말씀은
유대교 박해의 성격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을 위해서' 라는
신념으로 그리스도교를 박해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느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한 일입니다(3절).
박해자들이 자기들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신념으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일은
오늘날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선과 악을 자기들 마음대로 정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박해도 죄가 되지만, 선악을 마음대로 정하는 것도 죄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