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간 월요일] 목자의 비유 (요한 10,1-10)

2016. 4. 18. 오전 5: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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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간 월요일] 목자의 비유 (요한 10,1-10)


할례 받은 신자들이 베드로에게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과 음식을 먹었다고 따진다.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은 속된 것이 없다는 것과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똑같은 선물을 주시는 환시를 보았다고 설명한다.(사도행전 11,1-18)
그 무렵 1 사도들과 유다 지방에 있는 형제들이 다른 민족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 받은 신자들이 그에게 따지며, 3 “당신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니요?” 하고 말하였다. 4 그러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5 “내가 야포 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아경 속에서 환시를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내려앉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이었습니다. 6 내가 그 안을 유심히 바라보며 살피니, 이 세상의 네발 달린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7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8 나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9 그러자 하늘에서 두 번째로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10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것들은 모두 하늘로 다시 끌려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그때에 세 사람이 우리가 있는 집에 다가와 섰습니다. 카이사리아에서 나에게 심부름 온 이들이었습니다. 12 성령께서는 나에게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갔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집에 들어가자, 13 그는 천사가 자기 집 안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 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5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6 그때에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7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18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시편 42(41),2-3; 43(42),3.4(◎ 42〔41〕,3ㄱㄴ 참조)
◎ 제 영혼이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또는 ◎ 알렐루야.)
○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 가서 뵈오리이까? ◎
○ 당신의 빛과 진리를 보내시어, 저를 인도하게 하소서. 당신의 거룩한 산, 당신의 거처로 데려가게 하소서. ◎
○ 저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나아가오리다. 제 기쁨과 즐거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오리다. 하느님, 저의 하느님, 비파 타며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


수님께서는 목자와 양의 비유를 드시며, 나는 양들이 드나드는 문이고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고 하신다.(요한 10,1-1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사도11,1-18)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4~15)

 

사도행전 11장 1절부터 18절까지는, 할례받은 신자가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 코르넬리우스 가문과 함께 식사했다는 데 대한,

할례받은 신자들의 비판 베드로의 변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할례받은 신자들의 비판의 계기가 된 사도행전 10장의 내용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로마까지 복음이 증거되며 교회가 확장되는

역동적인 역사가 기록된 사도행전 안에서도, 이방인 선교의 하나의 큰

전환점을 이루는 이방인 코르넬리우스의 회심 사건과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에게 세례를 준 사건이다.

 

사실 이 사건은 자신들만이 하느님의 선민이라고 생각하는 폐쇄적인

유대적인 전통을 깨뜨릴 뿐 아니라 이방안의 선교의 물꼬를 터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사도행전 저자는 사도행전 10장 전체를 코르넬리우스의 회심의 사건을

기록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사도행전 11장 전반부의 지면을 할애하면서까지

다시 한번 베드로의 변론을 통해 이 사건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교회에 의해서도 이방인의 선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됨으로써, 이방인의 선교의 길이 더 환하게 열렸음을 보여 주려는, 

역사가인 동시에 그 자신이 선교사이기도 한 사도행전 저자의 의도적인 기술이다.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4)

 

본절은 병행 구절인 사도행전 10장 30~33절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이 코르넬리우스가 베드로에게 전한 말이었음은 분명하다.

코르넬리우스가 천사로부터 받은 말을 베드로에게 그대로 전한 말인 것이다.

 

여기서 '너의 온 집안이'에 해당하는 ('파스 호 오이코스 수'; pas ho oikos su)

'집의 거주자들', '한 집안 식구'라는 뜻이다. 


구원의 범위가 코르넬리우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집에 살고 있는 가족 모두에게 미칠 것이라는 의미이다.

 

본문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처럼, 베드로와 코르넬리우스를 만나게 하신 

하느님의 목적은, 베드로로 하여금 이방인인 코르넬리우스의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함으로써, 그 온 집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본절의 코르넬리우스의 이 진술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당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은, 이방인이라면 누구나 

할례를 받은 후에야 구원에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방인 코르넬리우스는 유대인들이 생각한 것처럼 그러한 절차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따라서, 본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어떠한 차별도 없이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듣고 믿는 자라면, 누구나 다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

보여 주고 있다.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15)

 

본문을 직역하면, '성령이 떨어졌다'(epepesen to pneuma to hagion;

에페페센 프뉴마 토 하기온; the Holy Spirit fell)이다.


이것은 마치 어떤 무거운 물체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거나 덮치는 모습

연상하게 한다.


사도행전 10장 45절에서는 이것을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표현했는데, 본문의 '에페페센'(epepesen)성령의 주도적 역사를

더 강하고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본문에서 베드로는 성령께서 임하신 시기를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라고

언급했는데, 사도행전 10장 44절을 보면, 성령께서는 베드로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 임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다르게 언급하고 있을까?

 

성령께서는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의 집에서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사도10,34) 임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성령 강림의 결과는 신령한 언어(방언)와 하느님을 찬송하는 행위로 나타났는데,

이 표징은 베드로가 설교를 다 마치는 때에 맞추어 일어났을 것이다(사도10,46).

 

그러니까 본절인 사도행전 11장 15절은, 성령께서 베드로의 설교가 시작될 때부터

각 사람에게 임하여 그들의 심령과 영혼을 감동시켰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으며,

사도행전 10장 44절은 베드로의 설교 말미에 신령한 언어와 하느님을 찬송하는

행위로써 성령받은 사실이 외적 표징으로 나타났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가리킨다.

 

이것은 코르넬리우스의 가정에 성령이 임한 것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말해서 성령께서 유대인들 중의 믿는 자들에게 부어진 것처럼,

이제 이방인들 중의 믿는 자들에게도 부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즉 예루살렘에 있었던 오순절 성령 강림이 유대인을 위한 것이었다면,

카이사리아에서 있었던(사도10,1) 코르넬리우스 가정의 성령 강림은 

이방인을 위한 것이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이란 표현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을

성령께서 동등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예루살렘의 믿는 자들에게 말함으로써,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행위가 전혀 비난받을 것이 아님을 힘있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복음 (요한10,1-10)

 

"나는 양들의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7ㄷ~8ㄱ)


요한 복음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예수님의 '나는~이다'에 해당하는

'에고 에이미'(ego eimi) 양식의 독특한 진술이 여기에서도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양들의 문'으로 나타내신다.

양들이 안심하고 출입할 수 있는 양들을 위한 유일한 문이라는 것이다.


'문'으로 번역된 '튀라'(thyra; door)'문'(door), 혹은 '입구'(entrance)라는

뜻인데, 비유적으로 '하늘 나라의 문'(루카13,24)이나 무엇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뜻을 나타내어 쓰이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가리켜서 '양들의 문'이라고 하신 것은 하느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구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요한14,6).


모든 사람은 이 문을 통해서만 거룩하신 아버지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누구든지 이 문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영원히 하느님의 약속들에서 제외되고 만다.


이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만이 착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 아래

있게 되며, 이 문을 통과하는 유일한 방법은 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인 것이다(요한1,12.13).


한편, 여기에 나오는 '문'에 해당하는 '헤 튀라'(he thyra; the door)

어떤 사본에서는 '목자'에 해당하는 '호 포이멘'(ho poimen)으로 나온다.


이것은 번역가들이 '양들의 문''양들의 목자'를 동일하게 생각했음을 암시한다.

 

실제 고대 근동의 규모가 작은 양들의 우리에 있어서는 목자가 문 입구에

누워 밤을 지새웠으므로, 양의 문과 목자를 동일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요한10,7.9.11.14).


요한 복음 10장 1절에서 문을 통하지 않고 우리로 들어가는 자들은 도둑이며

강도로 규정하신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나보다 먼저 온 자들'도둑이며

강도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나보다 먼저'에 해당하는 '프로 에무'(pro emou; before me)

'내 앞에'라는 뜻이다.


이것은 당시 진리를 거부하였던 유대 종교 지도자 무리들을 지칭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이 사람들은 백성들 앞에서 하늘 문을 닫아 걸고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훼방하였고(마태23,13), 유대교 신자 하나를 얻기 위해 육지와 바다를 다니지만,

한 신자가 생기면 자신들보다 배나 더 나쁜 지옥의 자식이 되게 만들었다

(마태23,15).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향해 악마에게서 난 자라고 까지 하셨다(요한8,41).


이들은 하느님의 뜻이나 백성들의 영적 상태 등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으며,

그들이 중시한 것은 조상들이 물려준 전통과 본질없이 형식만 남은 율법의

자구적 해석뿐이었다.


이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도외시하고, 자신들 스스로 굴레를 씌운

사소한 문제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잃고 멸망으로 가도록 만들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가리켜

도둑이며 강도라고 질책하셨던 것이다.


[♣요한복음 성서쓰기] 10장 /목자의 비유

<목자의 비유>송영진 모세 신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요한 10,1-2)."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려고 당신의 목숨을 바치신 분입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
라는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신 분입니다.


도둑이나 강도는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목자인 척 하는 자들입니다.
대사제 카야파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최고의회 의원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요한 11,49-50)."
이 말은,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예수를 죽여야 한다." 라는 뜻입니다.


만일에 카야파가 "온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죽겠다." 라고 말했다면,
그를 착한 목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희생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말했고, 결국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도둑이며 강도입니다.
희생이란 자기가 하는 것입니다. 남을 희생시키는 것은 살인입니다.


카야파의 말을 겉으로만 보면 민족을 걱정하는 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를 보면, 당시의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거의 대부분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일만 신경 썼고, 민족을 걱정한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카야파의 말에서 "여러분에게 더 낫다." 라는 말은
"그것이 우리에게 더 이익이다." 라는 뜻입니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요한 10,3-5)."


이 말씀에서 목자가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는 말은
앞에서 인용한 카야파의 말과 반대되는 말입니다.
카야파는 전체를 위해서 하나를 희생시키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그래서 전체를 위해서 개인을 희생시키는 일은,
또는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키는 일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입니다.
(자기가 희생하지 않고 남을 희생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파시즘이나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가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초래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강조하는 공동체는 전체주의 사상과 정반대 쪽에 있습니다.
'공동체'는 하나하나를 똑같이 섬기고 사랑하지만,
전체주의는 개인을 존중하기는커녕 아예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전체주의를 배격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라는 말씀은,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만 들어야 한다."로,
"양들은 목자를 따른다." 라는 말씀은,
"양들은 목자만 따라야 한다."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또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라는 말씀은,
"목자가 아닌 자들을 따르면 안 된다."로,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은,
"목자가 아닌 자들과 관계를 맺으면 안 된다."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여기서 '알다.' 라는 말은, '관계, 일치' 등을 뜻하는 말로 해석됩니다.
(단순히 지식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너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으면 죽는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 2,16-17).
그런데 사탄이 다가와서 "그 열매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 라고 말합니다(창세 3,4).
(창세기에는 여자에게만 말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상 아담에게도 말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입장에서는
하느님의 말씀과 사탄의 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들은 사탄의 말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서 사탄이 한 말을 보면,
사탄은 "따 먹어라." 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먹어도 안 죽는다." 라고 말했을 뿐이고,
열매를 따 먹겠다고 결정하고 실행한 것은 아담과 하와입니다.
따라서 일이 잘못되기 시작한 것은
사탄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때부터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사탄과 이야기도 나누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사이비 종교나 미신 등에 빠지는 것도 이야기를 듣기 시작할 때부터입니다.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고 하더라도, 듣기 시작하면서 빠져들게 됩니다.
"듣는다고 설마 무슨 일이 있겠나?" 라고 생각하면서 방심하면
누구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자기는 그런 것에는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는 자만심도 위험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누구의 허황한 말에도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러한 것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립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과 상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에페 5,6-8)."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려면
하느님에게서 우리를 떼어 놓으려는 자들과는 상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 복음서 10 장  오늘의 묵상

베드로 사도가 본격적으로 선교 활동을 하면서,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이에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유다인들이 반발하자, 베드로가 자신이 본 환시에 대해 말합니다. 곧 하늘에서 여러 짐승과 새들이 내려오며 그것들을 잡아먹으라는 말씀에, 자신은 속된 것은 먹지 않았다고 말하자, 이러한 응답이 들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오늘 제1독서 내용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본 환시는 신앙인이건 아니건, 죄인이건 의인이건 모두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란 뜻입니다. 그만큼 다 귀한 존재이며 함께 구원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웃들에게 더욱 마음을 열며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착한 목자와 양들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당시 거친 유다 고원 지대에 사는 유다인들은 농사보다는 목축업에 종사하였기에, 양과 목자의 관계는 그들의 생활에서 매우 긴밀하였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착한 목자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현명한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라가는 양을 말하지요. 만일 양이 목자의 말을 듣지 않고, 그저 길가에 조금 돋아난 풀이나 뜯겠다고 무리에서 벗어나면 결국 맹수의 먹이가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도록, 기도, 성경 묵상, 양심 성찰 등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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