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간 수요일] 영원한 생명 (요한 3,16-21)

2016. 4. 6. 오전 4: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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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간 수요일] 영원한 생명  (요한 3,16-21)


대사제의 시기로 감옥에 갇힌 사도들을 천사가 풀어 준다. 사도들이 성전에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자 성전 경비대장은 백성이 두려워 폭력은 쓰지 않고 사도들을 데려 온다.(사도행전 5,17-26)
그 무렵 17 대사제가 자기의 모든 동조자 곧 사두가이파와 함께 나섰다. 그들은 시기심에 가득 차 18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다.
1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20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21 그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가르쳤다.
한편 대사제와 그의 동조자들은 모여 와서 최고 의회 곧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원로단을 소집하고, 감옥으로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22 경비병들이 감옥에 이르러 보니 사도들이 없으므로 되돌아가 보고하였다. 23 “저희가 보니 감옥 문은 굳게 잠겨 있고 문마다 간수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어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4 성전 경비대장과 수석 사제들은 이 말을 듣고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사도들 때문에 몹시 당황해하였다. 25 그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에게 보고하였다. “여러분께서 감옥에 가두신 그 사람들이 지금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6 그러자 성전 경비대장이 경비병들과 함께 가서 사도들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백성에게 돌을 맞을까 두려워 폭력을 쓰지는 않았다.


시편 34(33),2-3.4-5.6-7.8-9(◎ 7ㄱ)
◎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어 주셨네. (또는 ◎ 알렐루야.)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 나와 함께 주님을 칭송하여라. 우리 모두 그 이름 높이 기리자. 주님을 찾았더니 응답하시고, 온갖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셨네. ◎
○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
○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고, 그를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고, 심판을 받지 않게 하신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요한 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부활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도5,17-26)


그 무렵 대사제가 자기의 모든 동조자 곧 사두가이파와 함께 나섰다.그들은 시기심에 가득 차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다.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그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가 가르쳤다." (17~21)


본절부터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사도들에 대한 핍박과 투옥 및 천사들에 의한 구출, 사도들에 대한 대사제의 직접적인 문책, 그리고 율법교사 가말리엘의 중재로 인한 석방 등과 같은 매우 긴박하고도 역동적인 이야기가 5장 끝절까지 소개되고 있다.

이것은 복음의 전파가 결코 십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동시에 핍박이 복음 전파를 절대 방해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사도들을 적대시한 자가 바로 대사제이며, 사도들이 당하는 박해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조직적인 박해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음으로 사두가이파들을 대사제와 함께 있는 동조자로 소개한다.

이것은 이들이 율법을 해석함에 있어서 대사제의 역할을 가장 중시하였고, 대사제 측근에 있었던 귀족들이 특히 사두가이파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대 최고 권력 기관인 산헤드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당시의 정치 집단인 헤롯왕이나 로마인들과 연합하여 온갖 기득권을 누리고 있었다. 

사두가이파들이 대사제를 도와 사도들을 잡아들이는 데 앞장선 것은 사도들로 말미암아 일어난 역동적인 복음의 역사가 많은 민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아감으로써 그들 특권층이 누리고 있던 기득권이 위협을 받았고, 높아만 가는 인기에 시기가 났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이 앞장서서 죽인 예수님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부활을 부인하는 그들의 교리와 상충되었을 뿐 아니라 과거 그들이 범한 죄악상이 드러나며, 더 나아가 민중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반기를 드는 민란까지 일어나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사두가이파들은 누구보다 앞서 사도들을 잡아들이고자 했던 것이다. 

'시기심('젤루'; zelu)이 가득 차(epllesthesan; 에플레스테산)'는  진실에 입각하거나 바른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시기에 의하여 박해가 발생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득차'에 해당하는 '에플레스테산' 원형 '플레도'(pledo)'충만하다'(사도4,8.31), '채우다'(루카5,7)로도 번역되는 단어로써 빈틈을 찾아볼 수 없으며 넘칠 정도로 가득 채우는 상태 말한다.

당시 이들은 끓어오르는 시기심으로 인하여 다른 상황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오직 사도들을 박해할 생각으로만 가득했음을 알 수 있다. 유대 종교를 대표하는 이들이 이성을 잃고 이기심에 따라 분별없이 행동하는  이러한 행동을 통하여 그 당시 유대교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알 수 있다.

'공영 감옥'(teresei demosia; 테레세이 데모시아)에서 '데모시오스'(demosios; 공적인)라는 형용사를 첨가하여 굳이 공영 감옥이라고 표현한 것은 사도들이 비록 단단히 잠긴 옥에 갇혀 공적 기관의 삼엄한 감시와 경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크신 하느님의 역사로 나오게 된 것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19)

'데리고 나와' 번역된 '엑사가곤'(eksagagon)의 기본형 '엑사고'(eksago)는  '밖으로'라는 뜻의 전치사 '에크'(ek)'인도하다'는 뜻의 '아고'(ago)가 합성된 형태로서 '(밖으로)인도하여 내다'(요한10,3),'끌어내다', '데리고 나가다'(마르8,23)는 뜻이다. 

단어의 의미에는 두 가지 함축적인 사실 들어있다. 

첫째로 이 단어는 속박과 고통에서의 '구원'을 가리킨다(요한10,3; 사도7,36).본문에서는 사도들이 감옥의 속박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된 것을 가리킨다. 

둘째로 이 단어의 의미속에는 '강제성'의 개념이 들어 있다(마르15,20).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끌어냄을 당하는 것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이 동사가 이러한 두가지 개념을 모두 포함하여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사도들의 구출의 목적 다음 절에 나오듯이  백성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시급한 사명이  사도들에게 있음을 드러내 주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옥에 갇혀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던 사도들을 주님의 천사가 어떻게 쉽게 빼낼 수가 있었을까? 본절에서는 필리피 감옥의 경우처럼 감옥터가 움직이고 지진이 나는 기적 (사도16,26)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주님의 천사는 초자연적인 영적 능력으로 경비병들을 깊이  잠들게 한 후에 사도들을 이끌고 나왔을 것이다.  

하느님은 때로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워 어둡게 하기도 하신다는 사실이 (2열왕 6,18) 이를 뒷받침한다.

사도들을 옥에서 이끌어 낸 주님의 천사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사명을 부여한다.

본문에서 말하는 '생명'(zoe; 조에)이란, 이 세상에 속한 생명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영적 생명 가리킨다(마태18,19; 마르10,30; 요한3,15). 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 구원의 생명 말한다. 

본문의 '이 생명'에서 '이것'을 가리키는 '타우테스'(tautes)는 지금까지 사도들이 계속해서 전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되는 생명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말씀' '타 레마타'(ta remata)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은 '말씀'가리키는 '토 레마'(to rema)의 복수형으로서 '설교','연설' 의미가 있다.

이것은 조용히 사적으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말씀을 선포하는 행위 '케뤼그마'(kerygma)를 가리킨다. 이것은 그들이 말씀을 전하되 대담하게 모든 사람들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또한 이 말씀 앞에 '모두'로 번역된 '판타'(panta)라는 말을 첨가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가 하나도 빠짐없이 전파되어야함을 분명히 해주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혹시라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핍박을 두려워하여 구원의 말씀들을 단 하나라도 생략하거나 약화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났던 일들과 구원의 말씀들이 모든 사람에게 들려져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 제2주간 수요일 복음 (요한3,16-21)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19)


요한 복음 3장 19절은 요한 복음 3장 18절 후반부에서 나온데로,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는 자가 심판을 받는 이유를 다시 한번 더 밝혀 강조한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에서 '심판'에 해당하는 '크리시스'(krisis; condemnation;verdict)는 실질적 의미에 있어서 18절에 나오는 '심판하다'에 해당하는 '크리노'(krino)거의 동일하다.

불신자들이 심판받는 보다 구체적인 이유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자신의 행위가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에서 동사 '엔'(en; were)미완료형 이므로, 이 사람들의 과거 전력을 드러낸다.

희랍어에서 미완료형과거에 계속 혹은 반복되는 동작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행위가 변함없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고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한 형용사 '악한'에 해당하는 '포네라'(ponera; evil)가 서술적인 위치에 있어서 이 사람들의 행위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 단어가 마귀의 속성과 관계가 있다. 이 형용사는 '악한'뿐만 아니라 '못쓰게 된', '나쁜', '가치없는', '타락한' 전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나타내는 복합적 의미로 쓰였다.

즉 이 단어는 그들이 마귀의 속성과 관련된 악행을 계속하여 저질러 왔으므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에서 '빛'에 해당하는 '포스'(phos; light)태양과 같은 발광체를 나타내며, '어둠'에 해당하는 '스코토스'(skotos; darkness)는 이 빛이 차단된 상태를 나타낸다.

그러나 여기서는 상징적인 의미로 쓰였는데, 성경은 메시야에 의해 선포된 복음이나 구원을 '빛'으로 표현하고(마태4,16; 사도26,18; 에페5,13), 죄와 불신앙의 상태를 '어둠'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마태4,19; 로마2,19; 1티모5,4; 1베드5,13).

요한 복음 3장 19절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원조 아담이 범죄한 이후 타락한 본성의 소유자인 인간이 죄와 불신앙을 더 사랑함을 보여 주기 위해 이러한 표현을 사용했다.

그리고 '더'로 번역된 '말론'(mallon; rather)'더'라는 뜻의 비교급 부사로도 쓰이지만(필리1,12; 마태10,48; 루카18,39), '~대신에 도리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마태10,6; 마르5,26; 로마14,13).

그렇다면 요한 복음 3장 19절 인간이 마땅히  빛을 사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대신에 도리어 어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이것은 인간이 그 행위가 악하므로 빛에 대해서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 어둠만을 수용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시 유대인들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한 근본 이유이다.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살아계신 주)/ Because He Lives (영어가사)

<구원과 심판>송영진 모세 신부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이 말씀은 요한복음 전체 내용을 요약한 말씀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주신 이유는 인간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죽음, 부활은 모두 다 '사랑'이 이유입니다.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라는 말씀은, 그 사랑이 극진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당신의 외아드님을 인간들의 구원을 위한 속죄 제물로 삼을 정도로 큰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결실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인간들이 모두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멸망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만일에 누군가가 "하느님께서는 왜 사람들을 사랑하시는가?" 라고 묻는다면, "사랑에는 사랑 말고는 이유가 없다." 라는 말 외에는 따로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사랑하니까 사랑한다."는 말이 말장난 같지만, 진리입니다.
특히 하느님의 사랑은...


여기서 "믿는 사람은 누구나" 라는 말씀은,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 생명을 얻으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는다면 그 믿음을 행동으로(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마태 7,21).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라는 말은, 제대로 믿고, 믿음을 충실하게 실천하면서 살았다면, 아무도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7)."
이 말씀은, 심판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해 주시는 말씀인데,우리 쪽에서 다시 표현하면, "신앙생활은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 하는 생활이 아니라,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하는 생활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심판 받는 것이 무서워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하느님의 사랑과 구원과 생명을 받기를 원해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그 말 아니냐고 말할 사람이 있겠지만,무서워서 하는 신앙생활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신앙생활은 완전히 다릅니다.
(억지로 하는 일과 기쁨으로 하는 일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요한 3,18)."
"심판을 받지 않는다." 라는 말씀은 '멸망'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는 뜻인데, 이 말의 뜻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스스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라는 뜻입니다.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거부했기 때문에 못 받는 것입니다.
"이미 심판을 받았다." 라는 말씀은,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지금 멸망을 향해서 가는 것과 같고, 그래서 지금의 삶 자체가 이미 심판을 받은 것과 같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아들을 믿는 사람'이라는 말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믿음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일부 종파나 일부 신학자들은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앞에서 말한 대로 실천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로마 3,28)."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인간이 자기의 힘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셔야 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지 '믿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은, 자력구원 사상을 부정하기 위해서 한 말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행실을 강조하는 말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실 것입니다(로마 2,6)."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9-20)."
자기의 '삶'이 죄 속에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면,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심판을 두려워한다면, 언젠가는 회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삶'이 어떤지 관심이 없고,그냥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또 내세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고,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그래서 구원의 복음을 듣기 싫어한다면,그런 사람은 구원받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천국은 싫고 지옥이 더 좋다고 하면서 그쪽으로 가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바로 그런 상태 속에 있는 것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스스로 빛을 차단하고 어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도 모르고 이웃 사랑도 모르는 채로 살고 있는 사람의 인생은 누가 보아도 불쌍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요한 3,21)."
구원받기를 희망하고, 구원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이미 구원이 시작된 것과 같습니다.
그 구원이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신앙인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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