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간 금요일] 오병이어 (요한 6,1-15)

2016. 4. 8. 오전 4: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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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간 금요일] 오병이어  (요한 6,1-15)

오병이어의 기적이 지금도


가말리엘은 최고 의회에서, 사도들의 계획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이라며 내버려 두자는 의견을 낸다. 사도들은 매질을 당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의회에서 물러 나왔지만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날마다 선포한다.(사도행전 5,34-42)
그 무렵 34 최고 의회에서 어떤 사람이 일어났다.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 교사로서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사이였다. 그는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라고 명령한 뒤, 35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저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잘 생각하십시오. 36 얼마 전에 테우다스가 나서서, 자기가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였을 때에 사백 명가량이나 되는 사람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가 살해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끝장이 났습니다. 37 그 뒤 호적 등록을 할 때에 갈릴래아 사람 유다가 나서서 백성을 선동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게 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모두 흩어져 버렸습니다.
38 그래서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39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가말리엘의 말에 수긍하고, 40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42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또 이 집 저 집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선포하였다.


시편 27(26),1.4.13-14(◎ 4ㄱㄹ)
◎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라네. (또는 ◎ 알렐루야.)
○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
○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라네. ◎
○ 저는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 주님께 바라라.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져라. 주님께 바라라. ◎

26. 제목 : 나눔의 실천 (오병이어의 기적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표징을 보고 군중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든다. (요한 6,1-15)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부활 제2주간 금요일 제1독서 (사도5,34-42)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38~39)

사도행전 5장 33절에서 42절까지는, 사도행전 5장 29~32절에 나오는 베드로와 사도들의 증언을 들은 최고 의회 의원들이 몹시 분노하여 사도들을 죽이려 하였으나, 율법교사 가말리엘의 중재석방되는 내용과 사도들의 계속적인 복음 전파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율법 교사' 번역된 '노모디다스칼로스' '율법' 뜻하는 '노모스'(nomos)'선생', '교사'를 뜻하는 '디다스칼로스'(didaskalos)의 합성어이다.

실제 이 용어는 하느님의 뜻이 들어 있는 율법에 관해 권위있게 해석하고 가르치는 매우 탁월한 율법 박사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하느님의 상급'이란 이름의 뜻을 지니고 있는 '가말리엘'은 유명한 랍비였던 '힐렐'(Hillel)의 손자로서 당시 샴마이(shammai) 학파 더불어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힐렐 학파의 수장이었다. 또한 그는 사도 바오로의 스승으로 언급되고 있다(사도22,3).

사도행전 5장 34~39절에 나오는 대로 그의 중재는 사도들의 목숨을 건져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가말리엘이 원래 사도들이나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 대하여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중재안을 낸 것은 두 가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첫번째는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고자 하는 그의 성품에서 말미암은 것인데, 그는 사도들에게서 특별히 그들을 죽일만큼 율법을 거스른 행위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번째 교리적인 측면인데, 부활을 인정하는 바리사이파인 가말리엘은 당시 최고 의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사두가이파가 부활을 부인하고 있었기에 사도들의 편에 선 것이었다.

사두가이파 역시 법적 근거없이 사도들을 사형에 처할 경우, 백성들의 반발이 우려되고 가말리엘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어서 사도들은 사형이 결정되지 않았다. 결국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느님께서 복음과 전혀 상관없는 바리사이파 사람인 가말리엘을 사용하여 사도들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출해 내신 것이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38)

이 구절에서 '관여하지 말고'라는 뜻의 '아포스테테'(apostete)'내버려 두십시오'라는 뜻의 '아페테'(apete)라는 표현을 통해 사도들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말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아포스테테''떠나다'는 뜻의 동사 '아피스테미'(apistemi)부정(不定) 과거 명령형이며, '아페테''버려두다'는 뜻의 동사 '아피에미'(apiemi)의 부정 과거 명령형이다.

본문의 이러한 표현상의 강조는 사도행전 5장 39절의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와 연관이 된다. 

사도행전 5장 38절의 두 개의 명령은 사도행전 5장 39절의 '~하지 않도록' 이라는 뜻으로서 강한 염려를 가리키는 '메포테'(mepote)로 시작되는 구절에 연결되고 있다. 이처럼 가말리엘이 사도들을 내버려 둘 것을 강조한 이유는 설사 그들을  벌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며, 오히려 일이 잘못되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가말리엘은 사도들의 주장에 비록 동조는 하지않지만, 하느님의 역사(役事)하심에 대하여는 분명한 신뢰를 가진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歷史)의 주관자는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의 역사(役事)에 대하여 인간은 철저히 순응해야 한다는 신관(神觀)과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39)

'메포테' '~하지 않도록'이라는 뜻으로서 사도들을 그냥 보내 주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단어이다. 그것은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테오마코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테오마코이' '하느님'을 가리키는 '테오스'(theos)'싸우다'뜻의 '마코마이'(machomai)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하느님을 대항하여 싸우는 자'를 가리킨다. 즉 하느님으로부터 난 일을 가로막는 것은 곧 하느님을 대항해 싸우는 일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메포테''심지어 ~라도'(even)라는 뜻의 부사 '카이'(kai)수식을 받는 구조로 사용되어 강조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결국 가말리엘이 최고 의회 의원들에게 말한 내용의 강조점은 혹시라도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그들 스스로 경계하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섭리와 역사의 엄정성을 신뢰하는 가말리엘의 현명한 제안이라고 할 수 있다.



부활 제2주간 금요일 복음 (요한6,1-15)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1)

군중들이 식사를 할 준비가 끝내자, 이제 음식을 제공하실 예수님께서 준비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간단히 언급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한 아이로부터 가지고 온 그 빵을 손에 드셨다.

'손에 들고'에 해당하는 '엘라벤'(elaben)'람바노'(lambano)의 부정(不定) 과거 시제로서 예수님께서 거리낌없이 즉시 취하신 행동을 나타낸다.

여기서 '빵을'에 해당하는 '투스 아르투스'(tous artous; the loaves)는 복수형으로서 안드레아가 가져온 보리 빵 다섯 개를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손에 들고 나서 감사를 드리셨다.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로 번역된 '유카리스테사스'(eucharisteras; when he had given thanks)'유카리스테오'(eucharisteo)의 부정(不定) 과거 분사로서 기본적인 뜻은 '감사한 마음을 가진 것' 혹은 '감사를 돌린 것'이다. 이것은 식사 전에 행하던 통상적인 감사 기도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내용으로 감사 기도를 바쳤는지 알 수 없지만, 유다인의 모든 가정에서 사용되는 내용의 것이었다고 보면 된다.

예수님께서는 한 가정의 가장이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 앉아 감사 기도를 바치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수많은 군중 앞에서 행동하셨는데, 눈으로 보이게 차려진 음식은 다섯 개의 빵이었고, 식사를 기다리는 이들은 오천명의 몇 배가 되는 군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충분한 식사가 준비되고 있는 것처럼, 통상적인 감사 기도를 바쳤다. 그 결과 그 날에 빵과 물고기가 부족하게 되기는 커녕, 도리어 남아서 열두 광주리나

되는 조각들을 거두기에 이르렀다.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은 원하는 대로 배불리 음식을 먹었으며, 그 맛 역시 원래의 오병이어보다 훨씬 더 나았으리라는 것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있었던 경험으로 봐서 (요한2,10) 추측해본다.

특히 다른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 '원하는 대로 주셨다'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는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을 풍성하게 주시어 결코 주리지 않게 하실 것을 예시하는 것이다(요한6,35).




<오천 명을 먹이시다.>송영진 모세 신부


요한복음서 저자는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기 위한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당신을 '생명의 빵'으로 계시하기 위해서 행하신 기적으로
해석하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요한 6,5-6)."


요한복음에는 사람들이 배가 고팠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마르 6,34).
'빵의 기적'은 그런 그들에게 당신이 '참 목자' 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일입니다.
또 요한복음에는 식사 시간이 지났다는 말도 없습니다.
은총이 필요한 '때'는 예수님께서 정하십니다.
주시는 때가 받아야 하는 때입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라는 말씀에서
중요한 말은 '어디에서'입니다.
이 질문을 "사람들이 먹어야 할 '생명의 빵'은 어디에서 오느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답은 "하느님(예수님)"입니다.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라는 말은,
"이는 필립보를 가르치려고 하신 말씀이다.",
또는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다." 라는 뜻입니다.
왜 필립보에게 물으셨는지는 모릅니다.
아마도 필리보의 고향과 가까운 곳이어서
그가 어떤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입니다.
어떻든 예수님의 질문은 필립보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에게,
또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하신 질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라는 말은,
제자들의 답변과 상관없이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시려고 이미 계획하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요한 6,7)"
아마도 필립보는 사람들의 수를 헤아려 보고, 필요한 빵의 양을 계산했을 것입니다.
필립보의 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에는 '기적이 아니면' 사람들을 먹이는 일은 어렵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기적을 청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요한 6,8-9)"
아마도 어떤 아이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빵과 물고기를 기꺼이 내놓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드레아가 보기에는 그것은 무의미한 일로 보였습니다.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라는 말에도
기적이 아니면 어렵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어떤 아이가 자기의 빵과 물고기를 내놓은 일은
분명히 훌륭한 일이긴 하지만, 기적의 필수 요소는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빵과 물고기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적이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만일에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없었다면,
예수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기적을 행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가 빵과 물고기를 내놓은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아이가 한 일을,
예수님의 기적에 대한 응답을 '미리' 실천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또 우리를 위해서 '사랑의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도 우리가 가진 것을 내놓음으로써 그 사랑과 그 기적에 응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뒤의 내용을 보면,
공관복음에는 없는 이야기가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요한 6,14-15)."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는 신명기에서 모세가 예언했던 예언자입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신명 18,15)."
유대인들은 그 예언자를 메시아로 생각했습니다.
빵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신명기의 예언을 기억해냈고,
예수님이 '그 예언자' 라고, 즉 메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한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줄 임금이었고,
현세적인 복을 가져다 줄 정치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으로 물러가신 것은 사람들을 피해서 가신 일이고,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 세상의 굶주림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빵의 기적'을 행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 기적 한 번으로 세상의 굶주림이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굶주림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 사랑 실천으로써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빵만 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우리가 성당에 다니는 것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요한복음6:1-15)오늘의 묵상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 필립보는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이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태도이지요.
그렇지만 안드레아는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소년을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소년이 가진 보리 빵은 당시 가난한 이들이 먹는 음식입니다. 만일 그 소년이 자신의 것이 보잘것없다고 예수님께 드리기를 부끄러워하며 숨겼다면, 그 결과는 어떠하였겠습니까? 수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었던 그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그 많은 사람에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이지요. 그렇지만 그것이 일단 예수님의 손에 쥐어지자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남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작은 것이라도 기꺼이 받으시고, 오히려 그것을 유용하게 쓰신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 각자의 능력이나 재능은 따지고 보면 보잘것없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작은 정성과 희생이라도 이를 주님께 바치면, 엄청난 열매가 맺어지지 않습니까?
어쩌면 우리가 가진 것과 우리의 있는 그대로를 주님께 드리려 하지 않기에, 우리 주위에 이런 나눔의 기적이 연달아 일어나지 않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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