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의 증거(요한 1,19~28. 마태 3,1~12)
성부 성자 성령으로 하늘에 계실 때는 말씀으로 계셨던 말씀의 하느님이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을 성자라 하고, 요한복음 차원에서는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이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이고, 세례자 요한은 소리라고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이루어지지만, 세례자 요한의 말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도를 하기 때문에 소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세례자 요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예수님의 신원 즉 신성을 물어 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하느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통해서 땅에서 증거하게 하십니다. 하늘에서는 성령께서 증거하십니다.
19 요한의 증거는 이러하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관들과 레위지파 사람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묻게 했을 때
20 그는 부인하지 않고 고백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21 "그러면 누구요? 엘리야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오." 하고 대답했다.
22 그래서 그들이 말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해 주어야 하겠소.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오?"
23 요한이 말했다.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 '나는 주님의 길을 바르게 하라(요한 14,6).' 고 광야에서 부르짖는 이의 소리요(이사야 40,3)."
24 보냄 받아 온 자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다.
25 그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베푸는 거요?"
26 요한이 대답했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고 있소. 그러나 당신들이 모르는 분이 당신들 가운데 계시오.
27 내 뒤에 오신 분인데, 나는 그분 신발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치 못하오."
28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다니아 에서 있었던 일이다.
설명- 엘리야 예언자는 엘리사 예언자의 사역을 예비하신 예언자이며, 신약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는 것이 마치 엘리야가 엘리사를 위하여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구원사업을 하시는데 길을 준비하면서 물로 세례를 주면서, "내가 주는 세례는 죄의 회개를 위하여 주는 세례이지만, 다음에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주신 세례는 성령(불 세례 또는 말씀 세례)으로 원죄를 사해 주실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오신다." 는 것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의 엘리야는 신약에서 세례자 요한의 예표이며, 엘리사는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 11,14 에서 "여러분이 그 예언을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 그 사람이야말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입니다." 고 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소리이고, 세례자 요한은 가장 보잘 것 없고 가장 작은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도 요한복음에서 말씀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이루어져서 말씀을 전하는 성도들은 세례자 요한의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과 루가복음에서는 족보가 나오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으로 이어지는 족보이므로, 요한 1,12 에서 "예수님을 맞아들이고(세례), 이름(말씀)을 믿는 이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능을 주셨다." 고 하십니다.
말씀을 영으로 깨달아서 믿는 성도들이 예수님의 족보인 생명의 책에 올라가며 이런 성도들은 말씀 증거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신부님께서 미사 끝에 "복음을 전합시다." 라고 말했을 때 성도들은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하고 응답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3장의 해설을 참고 하십시요.
나와 우리들 모두에게 세례자 요한에게 물어 봤던 질문인 "당신은 누구요?" 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무어라고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나는 주님의 작은 질그릇이요." "나는 주님의 전기 밥솥이요." "나는 주님의 세탁기요." "나는 주님의 가장 작은 손이요." "주님의 컴퓨터요." "나는 주님의 신발이요." 등등 많은 대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나는 주님의 제일 작은 주사기입니다." "육체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는 치료의 주사기이고, 영적인 환자에게는 말씀을 보급하는 제일 작은 주사기가 되게 해 주십시요." 라고 기도를 합니다. 우리 모두 각자 주님의 작은 도구로 쓰여지기를 기도합시다.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 29~34. 마태 3,13~17)
인류가 죄를 지은 다음 창세기 3장부터는 이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희생 제물을 바쳐서 죄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레위기 4,1~35에 속죄에 관한 규정이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을 때는 소 양 염소 등에 죄 지은 사람이 안수를 한 다음에 그 짐승을 죽여서 피를 제단에 뿌리고 제물은 야훼께 살라 바침으로써 죄 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제사는 완전하지 못하여 죄를 지을 때마다 제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이 때 바치는 제물도 신분에 따라 다릅니다. 제사장의 제물은 소입니다. 족장이나 온 백성들이나 평민이 죄를 범했을 때의 제물은 소 양 염소 등으로 구분을 해서 바쳤던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지냄으로 죄를 사함 받았으나 불완전한 제사였습니다. 신약에서는 히브리서 10,10 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번 봉헌됨으로써 우리는 거룩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큰 뜻이 있습니다. 마태 3,15 에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 "내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선생님께서 제게로 오셔서 세례를 받으시겠습니까?" 하고 질문을 하니까 "이대로 하시오. 그래야 하느님의 의로움을 이루신다." 고 하셨는데, 이 의로움은 헬라말로 '디카이오쉬네'로서 '하느님의 의로움' 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공의의 하느님이시고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인류의 죄를 예수님이 짊어지고 구약에서 어린양이 희생 제물이 되신 것처럼,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심으로써 죄의 문제를 해결해 놓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루가 16,16)로 인류를 대표해서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세례시 예수님께 안수를 함으로써 인류의 죄를 예수님께서 짊어지고 갈바리아산으로 가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가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 고 예언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혈(보혈)로 죄를 해결해 놓으시고 예수님이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되시고 대사제가 되십니다.
요한 12,1~8 에 베다니아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 기름을 발라 드리는 것은,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시켜서 마치 구약에서 제사장이나 예언자나 왕을 기름 발라 축성하시는 것처럼, 예수님도 대사제(대제사장)로 축성하시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 주십니다.
즉 예수님은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되시고, 스스로 대사제가 되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것을 율법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 주십니다. 이 제사는 피 흘리는 제사이나, 오늘날 미사 중에 드리는 신약의 제사는 무혈의 제사입니다.(히브리서 9,1~28. 옛 계약의 제사와 새 계약의 제사)
히브리서는 구약의 모든 제사를 신약의 제사로 풀어 놓았습니다.이 기회에 레위기 4장과 히브리서 9장과 10장을 읽어보시기를 권유합니다.
29 이튿날 요한이 자기 쪽으로 오시는 예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보시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오.
설명- '이튿날'이라는 뜻은 갈라지다, 나누다, 준비하다라는 뜻이 있고 '삼'이라는 뜻은 '만남, 부활'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요한 2,1~12 에서는 삼일 째 되는 날에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12지파, 12사도는 구원받는 숫자를 상징합니다. 요한복음 전체 해설을 참고하십시오.
30 나는 이분을 두고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나보다 앞서게 되셨으니,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오.' 하고 내가 말한 것이오.
31 나도 그분을 몰랐으나 그분이 이스라엘에 드러나 알려지도록 바로 그 때문에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풀었소."
32 요한은 또 이렇게 증언했다. "영이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와 그분 위에 머무시는 것을 나는 보았소.
설명- 영이 비둘기처럼 예수님 머리 위에 내려온다는 것은 이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여기에서 성부 성자 성령 즉 삼위일체 하느님이심을 보여 주십니다. 이는 하늘에서 아버지가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33 나도 그분을 몰랐으나 물로 세례를 베풀라고 나를 보내신 분이 이르시기를 '영이 어떤 분 위에 머무시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니라.'하셨소.
34 과연 나는 보았소. 그래서 '이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오.' 하고 증언했소."
설명- 출애굽기 12,1~14 에서의 과월절(파스카, 유월절)은 어린양은 그림자이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파스카 어린양의 실체입니다.
오늘날 미사 때는 빵과 포도주가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살과 피이며,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말씀이시기 때문에 말씀의 살과 말씀의 피입니다.
말씀 성취이기 때문에 신부님이 미사 때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라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읽으실 때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전례를 보시면 예수님의 성탄주일 다음 축일은 성가정 축일이고, 그 다음 축일은 주님의 공현 대축일이고, 그 다음 축일이 주님의 세례 축일입니다.
주님은 지상에서 성모님과 성 요셉과 예수님이 성가정을 이루시고 동방 세 박사 즉 가스발, 멜키올 발달살 등의 세 박사와 이스라엘의 가난한 목동들과 주님께서 창조하셨던 만물 소 양 말 등에게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시며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세례 축일은 율법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에서는 아버지와 성령께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고, 땅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증언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가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 고 증언했을 때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가는 첫 제자들입니다.
우리들도 우리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말씀으로 살고, 말씀의 열매인 사랑으로 살아가면서 말씀을 증거함으로 세례자 요한의 사역을 우리들도 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모르는 분에게는 '주님의 기도'를, '성모송'과 '영광송'을, 가장 간단한 기도를 가르쳐 주는 것, 또 식사를 할 때 성호를 긋는 것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증거하는 것임을 알고 쉬운 것부터 실천합시다.
헬라말로 '뒤시아'라는 뜻은 제사라는 말인데 이 제사라는 말은 '뒤오오'라는 말에서 오는데 이 '뒤오오'라는 말은 '죽이다'라는 뜻입니다. 제사와 제물이라는 말은 나를 죽이는 것 즉 나의 심령을 죽이는 것, 즉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나의 육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으로 부활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나의 육적인 생각 시기 질투 미움 등(갈라디아서 5,19)을 버리고 예수님의 속성(성품)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등으로 변화된 것이 세례이고 첫째 부활입니다.
우리들도 평신도 사제직과, 평신도 예언직, 평신도 왕직을 수행하기 위해서, 내가 희생 제물이 되기 위해서 화가 날 때 화를 죽이고 미움이 생길 때 미움을 죽이고, 무엇인가 삶에서 하나씩 희생 제물을 가지고 미사에 참례하였을 때 내가 희생 제물이 되고 내가 사제직에 참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언직은 복음 말씀을 선포했을 때 예언직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왕직은 왕으로서가 아니라 봉사로서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 왕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산 제물(로마서 12,1)이 되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우리들의 마음을 죽이고 비워야 하겠습니다. 미사 때 산 제물로 봉헌합시다. 우리들의 심령이 죽는 것이 은혜인데 말씀을 읽고 묵상을 할 때 우리들이 죽고 변화가 됩니다. 이 때는 미움 자체가 없고 화 자체가 없어집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나도 나의 가족을 위하여 나의 이웃을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됩시다, 말로만 희생하는 것은 연습이고, 삶으로 희생하는 것이 녹색 순교이며 진짜로 희생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오." 라고 증언하자 세례자 요한의 제자인 안드레아가 예수님을 따랐고, 안드레아의 증언을 듣고 안드레아의 형인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는 첫 제자 즉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믿고 증언해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게하는 처음 형제자매들이얼마나 있는지 묵상해 보시고, 믿는 형제 자매들에게 믿음을 한차원 높게 주님의 말씀을 전했는지도 함께 묵상해 봅시다.
오늘이 중요합니다. 오늘은 복음 선포의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