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회의 심문 마태26,57~

2011. 9. 1. 오후 4:02:21

글자
 
  예수님께서 천국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심문 중에 고통을 받게 되십니다. 수난받고 죽고 부활하시는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들의 마음과 영혼 즉 심령을 죽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난이 따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가정마다 십자가의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분은 자녀들 때문에, 또는 부부간 때문에, 사업 때문에, 또는 봉사활 때도 박해하고 고통이 옵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의 고통을 없이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참고 견딜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최고의회의 심문(마태  26,57)

 

 57  그들은 예수를 붙잡아 가야파 대제관에게 끌고 갔는데,  거기에는  율사들과 원로들이 모여 있었다.

 58  베드로는 멀찍이서 뒤따라와 대제관 저택 안뜰까지 이르자 안으로  들어가서 결말을 보려고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59  대제관들과 온 의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분께 불리한 거짓 증언을 찾았는데

 60  많은 거짓 증언이 나섰지만 찾아내지 못했다.  마침내 두 사람이 나서서  

 61   "이자가 하느님의 성전을 헐어 버리고 사흘 만에 세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 하자,

 62  제관이 일어서서 예수께  "아무 대답도 하지 않소?   이 사람들이 불리한 증언을 하고 있는데 어찌된 일이오?"  했으나

 설명- 결말을 보려고 할 때 보는 것도  육의 눈으로 볼 때는 기적으로 사는 것이 은혜로 보시지만,  영의 눈으로 볼 때는 고통받고 죽고 부활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영광 바치고, 예수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우리들의 심령을 죽이고 사는 것이 예수님께 영광을 바치는 것이고, 우리들이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성전도 구약차원에서는 하느님이 계시는 건물이 성전입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즉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몸 안에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몸이 성전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차원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 안에  인격체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말씀이 성전인 것입니다. 계시차원인 요한 묵시록에서는 하느님이  교회 안에 계시기 때문에 교회가 성전이며 오늘날에는 성도들이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말씀화가 되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는 사람은,  우리들의 몸과 심령이 하느님이 계시는 성전이고 감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야외에 나가서 모이면  이동 성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머니며, 부인이 집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어머니시다." 하셨기 때문에  교회의 어머니로 모셨던 것입니다(요한 19,26~27).  사흘 만이라는 말은 숫자적인 뜻도 있으나 , 삼일이라는 말에는 부활이라는 뜻이 있으며 예수님을 만나는 날이고, 또 오늘날이라는 뜻과도 같으며,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것도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내가 예수님 만나 부활하는 날이 살일째이고 오늘날이 됩니다.

63  예수께서는 잠자코 계셨다. 대제관이 말했다. "살아계신 하느님을 두고 맹세하시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시오."

64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설명 - 오른편 왼편하면 오른편은 예수님을 영접해서 복음차원에 있는 사람을 오른편이라 합니다.   왼편은,  구약이나 율법에 있는 사람들을 말하며 또는 육차원에 있는 사람이라 합니다. 세상에서 보는 오른쪽 왼쪽 방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구름은 이사야서 19,1을 보면  야훼 하느님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오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구름이란 구약에서 하느님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 계셨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육체 안에 계셨기 때문에 구름은 예수님의 육체를  상징하며 영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바다와 땅은 육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메시아는 다윗왕처럼 구름을 타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오실 것으로  잘못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오늘날에는 육신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성령으로 재림하시기 때문에,  "진리 성령의 시대" 라고도 말합니다. 말씀을 읽고 살아갈 때,  말씀의 열매인 성령의 열매가 우리 안에 맺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하느님을 사랑의 하느님이라 합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각 성당의 독서대가 오른편에 있는 것은 예수님이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예수님의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65  그러자 대제관이 겉옷을 찢으며 말했습니다. "이자가 신성 모독을 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증인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보시다시피 지금 여러분은 저 신성 모독을 들었습니다.

 설명: 대제관이 겉옷을 찢은 것은 구약의 대사제의 임무가 끝났고  신약의 예수님께서 오셔서 새로운 대사제의 임무가 시작됨을 말합니다.

 

신성 모독이란 뜻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했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에만 눈이 가려져 있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알아볼 수가 없었으며 오늘날 우리들도 율법에 있으면(즉 육차원에 있으면)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속성인 사랑, 기쁨, 평화 등의 열매로 계신 것을 깨닫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66  어떻게들 생각합니까?"  그들이 대답했다. "그자는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67  이어서 그들은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고 때렸다. 더러는 손찌검을 하며

 설명: 손찌검을 한 뜻은 마태오 5,39에  "오른 뺨을 때리거든 왼 뺨을 대주어라." 는 구약의 말씀, 즉 메시아는 뺨을 맞고 매를 맞는 것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68     "알아 맞추어 봐라, 그리스도야!  너를 친 사람이 누구냐?" 하였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은 즉 베드로 사도는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육에 있을 때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다음에는 맹세하고 맨 나중에는 저주까지 하는 것은 우리들도 육에 있을 때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말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잘 하면서 육으로 살아 가는 사람이기에 오늘날에도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할 것입니다.

 거듭나는 생활로 기쁨으로, 사랑으로, 살아 가지 못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아 가는 사람은 영적으로 살아 가지 못하므로 예수님을 매일매일 부인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생명의 말씀,  즉 '레마'이므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베드로가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때 예수님께서 '닭이 운다'고 하셨던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닭이 기다리고 있다가 세 번,부인 할 때 울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오늘날에도 이루어집니다.오늘날에도 성경을 읽을 때 그 말씀이 우리들 안에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부인(마태 26,69-75)

 69  베드로는 안뜰 바깥 쪽에 앉아 있었는데 하녀 하나가 다가와서  "당신도 갈릴레아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하였다.

 70  그는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71 그리고 대문을 향해 나가는데 다른 하녀가 보고는 거기 있던 이들에게    "저 사람은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  하고 말하자, 

설명: 베드로가 대문을 향해 나간 것은 예수님과 멀어지는 것을 말하며  우리들도 말씀이신 예수님을 멀리 하면 말씀의 문인 대문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과 멀리 떨어지면 죄를 짓게 됩니다.

 72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모르오."  하고 다시 부인했다.

설명:  예수님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부인하는 정도가 강해집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부인하고 맹세하고 맨 나중에는 저주까지 하게 되는 것은  우리들이 예수님과 거리가 멀어지면 더욱 더 큰 죄를 짓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요한 17,3).예수님을 모르는 것이 죽음이고  죄가 되는 것입니다.      

73   잠시 뒤, 서 있던 이들이 다가와서  "정말 한패로구려. 말씨로 보아 분명히 드러나니까요."  하였다.

 74  그 때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모르오."  하였다.  바로 그 때 닭이 울었다.

 설명: 닭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페리칸새도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75  베드로는 예수께서  "닭이 울기 전에 그대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하신 말씀(레마)이 떠올라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설명: 슬피 우는 것은 마태 5,4의 해설을 참조하십시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신약성경해설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