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베드로는 믿는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베드로 사도도 아직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육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입으로 하는 말은 다 지키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들 안에 아니 계시면 말은 잘하나 하나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들 안에 오셔서 일을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예고하시다(마태 26,31~35)
31 그 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모두 이 밤에 나에게 걸려넘어질 것입니다. 성서에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떼는 흩어지리다(즈가 13.7).'라고 씌어 있기 때문이다.
설명- 밤은 어둠을 말하며 죄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한밤 중 즉 죄가 많을 때 밤 12시에 빛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걸려넘어지다- 우리들이 육에 있을 때에 걸려넘어지며, 육이 죽고 또한 영이신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게 되는 것이 육의속성입니다.
32 그러나 나는 부활한 다음 그대들에 앞서 갈릴래아로 갈 것입니다."
설명- 성서는 4차원으로 보아야 합니다. 밤은 구약차원에 있는 사람을 말하며, 아침은 공관복음 차원에 있는 사람을 상징하며,낮은 요한복음 차원에 있는 사람을 상징하며, 저녁은 계시차원에 있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한밤 중에 예수님이 나셨다는 것은 구약인 율법의 시대에 복음으로, 세상의 빛으로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거의 다 이곳(갈릴레아)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며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부활을 했으며, 평화와 안식을 누리는 곳입니다. 오늘날에는 우리들이 갈릴래아로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성서의 말씀 안에서 기도와 성사 생활 안에서 주님을 만나 뵙고, 평화와 안식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33 베드로가 대꾸했다."모두 걸려넘어질지라도 저는 절대로 걸려넘어지지 않겠습니다."
34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그대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
설명- 심판자는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진리 말씀이시지만 구약의 하느님께서는 심판의 도구로서 홍수(노아), 지진, 질병, 전쟁, 폭풍, 독수리, 닭 등을 사용하셨습니다.
이사 46,11에서는 독수리를 보낸다고 했는데, 이 독수리는 고레스 황제를 상징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 죄를 지으니까 외국의 왕들을 보내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바빌론왕까지 심판을 내리십니다.
이 독수리는 마태 24,28에서 율법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율법에 매어 있으므로 심판 받고 독수리가 있는 곳에 죽음이 있는 것입니다.묵시 4,7에서 이 독수리는 요한복음 말씀을 상징하며 묵시 12,14에서도 독수리가 나옵니다. 이 독수리는 성령을 상징합니다.그러나 심판의 도구인 독수리도 시대에 따라 상징에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심판 도구로 부드로운 닭으로 상징되기도 합니다. 이 닭이라는 말은 '알레크세테르'란 헬라말로 보호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마태 23,37. 마태 26,34에서, 예수님 자신이 닭으로 상징되며 "닭이 날개 아래 병아리를 모으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려고 몇 번이나 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래서 유럽에 있는 교회들에서 성전의 꼭대기에 닭이 장식되어 있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2,48에서는 말씀으로 심판을 하신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말씀으로 심판을 하시기 때문에 우리들이 말씀화가 아니 된 영혼은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말씀에 의해서 심판 받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성체기도에서는 페리칸이란 새가 나오는데 이 새는 자기의 살을 떼어 내어 새끼에게 먹이고 어미 새는 죽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 자신을 주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이 페리칸 새도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지금도 우리들이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고 말씀을 증거하지 않으면 닭이 울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목숨을 내 놓는 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35 베드로가 다시 말했다."함께 죽어야 하더라도 결코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했다.
기도는 4 단계로 설명을 할 수 있습니다.1 단계는 청원기도입니다.2 단계는 대화기도입니다.3 단계는 묵상기도입니다. 이 묵상기도는 자기가 죽는 기도입니다. 이 때 주님의 소리를 들으며 말이 없어지고 내가 죽는 기도입니다.
4 단계는 관상기도이며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과 일치를 이루며 사랑으로 하나되어 나의 삶에서 미움의 사람이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된 삶으로 살아 가는 것이 현재 부활의 삶입니다.
말로 하는 기도는 기도의 준비단계이며, 삶으로 살아 가는 것이 차원 높은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로 살아 가는 것이 참 기도입니다. 우리들도 아가페 사랑으로, 기쁨으로, 평화로 살아 가는 것이 즉 성령의 열매(갈라 5,22~23)로 살아 가는 것이 참된 기도이며 참된 신앙인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깨어있다고 합니다.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시다(마태 26,36~46)
36 그 때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게쎄마니(기름이라는 뜻)라는 곳으로 가서 "내가 저기 물러가서 기도하는 동안 그대들은 여기 앉아 있으시오. "하시고는
37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근심하고 번민하며
38 말씀하셨다. "내 영혼이 근심에 싸여 죽을 지경입니다. 그대들은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시오."
설명: 육에 있을 때는 고난을 피하려고 하고 인성이 있으므로 고난이 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는 이 고난의 잔을 비켜가게 해 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성에 있을 때는 고난이 오고 근심이 오나, 예수님은 또한 신성이 있으시므로 고난과 근심에 싸여 있지 않으며 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순교자들도 주님의 은혜로 순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오늘날 피 흘리며 죽음으로써 순교는 하지 않으나 일상 생활에서 매일매일 순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녹색순교라고도 합니다.
39 그리고는 조금 더 나아가 땅에 얼굴을 대고 기도하셨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하소서.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시지 말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 ."
설명: 우리들의 믿음도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 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들의 뜻대로 살아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40 그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했습니까?
설명: 잠잔다는 뜻도 조금 차원에 따라 묵상을 해 보시면 은혜가 됩니다. 성서를 일차원인 구약차원에서는 숨을 아니 쉬고 심장이 멈춘 것을 죽었다고 합니다. 이차원인 공관복음에서는 심령이 죽어 있는 것을 잠을 잔다고 합니다.
요한 11,11에서는 육안으로 볼 때는 나자로가 죽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잠잔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우리들의 마음과 영혼 안에 말씀이 자리잡지 못하면, 영생이 없으니까 죽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공관 복음서에서 잠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여 성령으로 제자들 안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잠들어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잠잔다는 뜻은 육에 있다는 뜻이고, 깨어 있다는 뜻은 영에 있다는 뜻입니다. 잠잔다는 뜻은 육에 있으며 기복 신앙으로 살아 가는 것을 말합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기복으로, 육으로 매일매일 살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41 유혹에 빠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기오. 영은 간절히 원하지만 육신(사르크)은 약합니다."
42 예수께서 다시 두 번째로 가서 기도하셨다. "아버지 이 잔(고난의 잔 )이 비켜갈 수 없고 제가 그것을 마실 수밖에 없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
43 그런 다음 와서 보시니 그들은 또 자고 있었다. 눈이 무겁게 감겨 있었다.
44 예수께서는 그들을 버려 두고 다시 가서 거듭 같은 말씀으로 세 번째 기도하셨다.
45 이윽고 제자들에게 돌아와 말씀하셨다. "아직도 자고 쉬어야겠습니까? 자, 때가 되었습니다. 인자가 죄인들 손에 넘어갑니다.
설명: 때가 되었다는 뜻은 죽으실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 세 번 기도를 하시는 것은, 히브리 사람들은 비교급과 최상급이 없으므로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강조를 하기 위한 것입니다. 미사 때,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 세 번 반복하는 것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46 "일어나 갑시다. 보시오. 나를 넘겨 줄 자가 가까이 왔습니다. "
예수님께서 붙잡혀 고난을 받으시고, 죽고 부활하셔서 천국을 완성하시고 즉 구원을 완성하시는 것은 하느님의 아버지의 뜻이고 예수님의 뜻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세 오경과 시편과 예언서에 있는 구약성경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성모님의 몸을 통하여 오신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신성(하느님)과 인성을 함께 지니신 분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하느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이 예수님에게 이루어지셔서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셨으니 이것을 우리들보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 우리들 안에서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신약 성경 27권이 우리들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 열매인 사랑입니다. 이 열매는 갈라 5,22~23에 보면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등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고린도 전서 13,13에서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한 것은 구약에서 예언자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 예수에게 이루어져서 예수님이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가 되신 것을 믿으라는 것이고,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매일 신앙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미사 때 바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은사입니다(고린도 전서 12,9). 이것이 그리스도론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하시는 말씀이 내 안에 이루어질 것을 학수 고대하고 살아갈 때, 말씀이 내 안에 이루어지면 사랑 기쁨 등이 오는데 이것이 열매입니다. 믿고 소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랑이 내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원해서 붙잡혀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성 아구스티노는 "거룩하고 복된 죄여! "라고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많다. "고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매일매일 우리들의 심령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죽이고, 변화된 부활의 삶으로 살아 가야 할 것입니다. 마음의 변화가 부활입니다. 부활의 열매인 사랑으로 살아갈 때 이 열매인 사랑이 영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고통의 신비를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고통을 통해서 나의 마음과 영 즉 나의 심령이 죽고 예수님의 심령으로 변화된 것이 부활입니다.
나의 심령이 매일매일 죽어야 하는데 죽기 전에 고통이 오기 때문에 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죽으면 평화가 오고 기쁨이 옵니다.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묵상합시다.
붙잡히시다( 마태 26,47)
47 이 말씀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왔다. 또 그와 함께 대제관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보낸 많은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왔다.
48 그 분을 넘겨줄 자는 미리 그들과 암호를 짜서 "내가 입맞출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붙잡으시오. " 하고 말해 두었다.
49 그가 곧 예수께 다가와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 하고 입을 맞추었다.
50 예수께서 "무엇하러 왔소? " 하시는데 그 때 그들이 다가 와서 손을 내밀어 예수를 붙잡았다.
51 마침 예수와 함께 있던 이 가운데 하나가 칼을 뽑아 대제관의 종을 쳐서 귀를 잘라 버렸다.
5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칼은 도로 꽂으시오 칼을 잡는 자는 칼로 망하는 법입니다.
설명: 칼은 율법을 말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율법으로 망한다는 것입니다. 칼이 둘로 나눈 것처럼 말씀으로 심판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쌍날칼(히브 4,12)이라고 하시고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는 줄로 생각하지 말라. 칼을 주러 왔다. " 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믿는 우리에게는 구원의 말씀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고린도 전서 1,18) 심판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필요하나 사랑으로 완성이 되어야 영생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 20장에 십계명이 나오나 예수님께서는 요한 13,34 에서 새 계명인 사랑의 계명을 주시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53 내가 내 아버지께 청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까? 청하기만 하면 이제라도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내 곁에 세우실 것입니다.
설명: 여기에서 육적으로 보면 로마 병력의 일 군단은 보병이 6000명이고 말이 700필이나 되는 병력을 말하는데 영적으로 보면은 물론 날개 달린 천사들을 생각할 수 있으나 차원을 높이 해서 보면 하느님의 말씀 전달자가 천사들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하느님의 말씀 전달자들인 예언자들이 천사들이고 신약에서는 사도들이 천사들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청하시면 12 군단의 천사를 보내 준다고 볼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12사도를 통해서 예수님의 생애를 재현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12군단에 해당하는 12사도들을 통해서 복음의 새 시대를 재현하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문자나 육으로 보면은 세상의 군대를 통해서 적을 쳐부수는 것을 말하나, 영적으로는 심령의 싸움은 칼로 싸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하시기 때문에 칼로 싸움을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영적인 투쟁에서는 말씀 싸움입니다. 그래서 민수기에서 모세가 군인이 얼마인가 알고 싶어서 병적 조사를 했다가 벌을 받고, 다윗도 병적 조사를 하다가 벌을 받는 것이 나오는 것은 세상의 적들과의 싸움을 통하여 영적인 전쟁을 보여 주신 것을 모르고 그런 행동을 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입니다.
모세나 다윗이 적들과 전쟁을 하는 것은 외적으로 볼 때는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인들과의 싸움이지만 이 전쟁은 야훼 하느님과 사탄과의 즉 죄와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병적 조사를 하는 것은 모세나 다윗이 사람의 힘, 즉 자기들의 힘인 세상의 군대로 싸우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기도회에서 가르침을 할 때, 신자들의 수를 세어 보거나, 많이 왔다 적게 왔다라는 말을 하면은 하느님이 내 안에서 일을 하시는 것을 모르고 나의 힘으로 하고 있다고 자만하고 교만하게 하는 것이므로 나는 교리를 가르치거나 성서를 가르칠 때도 숫자를 세어 보지 않고, 수가 적거나 많거나 상관 없이 주님의 복음 말씀을 나누고 서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칼로 싸우지 말고, 복음의, 말씀의 열매인 사랑으로 영적인 전쟁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라 버린 것을 꾸지람하십니다. ??의 눈으로 볼 때는 이치에 맞지 않으나 차원을 높혀서 보시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성도들을 통해서 계속 하늘 나라를 이루시겠다고 하십니다. 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전쟁을 하시겠다는 것이 예수님의 뜻인 것입니다.
54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한 성서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
설명: 시편 1,9. 이사야 53장 및 구약의 모든 성서의 말씀이 예수님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특히 이사야 1~39장의 말씀은 구약의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고 이사야 40장 이후의 말씀은 신약에서의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 열매 즉 사랑으로 되고, 이 열매가 영생이며 새 계약이고, 이 새로운 계약은 미사 때 매일매일 이루어집니다.
이사야서 1~39장까지는 구약에서의 메시아에게 예언된 말씀이고, 이사 40~55장에서는 신약에서의 예수님에게 관한 에언이고, 이사 56~65장까지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성도들에게 이루어져서 구원이 완성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성도들의 마음 안에 이루어질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55 이어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강도라도 잡으려는 듯이 나를 잡으러 칼과 몽둥이를 들고들 나왔단 말이오?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서 가르쳤으나 나를 붙잡지 않더니만
56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예언자들의 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입니다. " 그 때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