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입성(마태 21,1~11)
'예루살렘'이라는 뜻은 '예루'는 하느님이라는 뜻이고 '살렘'은 평화라는 뜻입니다. 이 예루살렘에의 입성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서 가시는 길입니다.
요한복음 17,1 에서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하소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그 성혈로써 우리들의 모든 원죄와 본죄를 사하시고 우리들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들도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는 것은 세상의 어떤 일을 잘 해서 바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육 즉 육적인 마음과 생각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으로 부활하는 것이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는 일입니다. 예루살렘에 예수님께서 입성하시는 것은 영적으로는 우리들의 육체 안으로 그리스도(진리 성령=말씀)께서 지금도 매일매일 오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우리들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말씀, 진리성령으로 우리들 안에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둠에 있고 육에 있을 때는 이 성서의 말씀이 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고 나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이나, 우리들이 깨닫고 보면 즉 예수님의 마음과 눈으로 보면, 오늘 현재 나에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으로 느껴져서 우리들은 말씀의 능력으로 변화됩니다.
- 전례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33년을 사셨기 때문에, - 예수님의 성탄 - - 성가정 축일 - - 주님의 공현 대축일(삼왕래조 축일)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시고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이방인인 동방 세 박사와, 가난한 이스라엘의 목동들과,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양, 말, 소 등과 성모님과 성 요셉 즉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나타남.
- 예수님의 세례 축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땅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세상의 죄를 없애 주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 고 증거를 하므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갑니다. 그리고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오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해 아가패) 아들이다. 너희들은 그의 말을 들어라." 라고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 왔으며, 하늘에서는 하느님께서 친히 증거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례축일부터 연중 제1주가 시작됩니다. 재의 수요일부터는 사순절이 시작되고 사순절과 부활의 시기가 끝난 후에 다시 연중으로 계속 갑니다.
그렇게 연중 33주가가 끝나고 그리스도 왕 축일이 끝난 다음에, 대림 1주, 2 주, 3 주, 4주가 끝나고, 예수님의 성탄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면 그 내용이 우리들의 마음 안에 이루어지는데, 즉 모든 주일과 대축일은 우리들의 마음 안에 예수님의 몸을 만드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33년을 사셨기 때문에 연중도 연중 33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성모님과 사도들과 성인 성녀들의 축일을 함께 지내면서 이 내용이 우리들 안에 이루어지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올리브나무 가지를 땅에 깔았읍니다. 성지주일은 성지가지를 들고 우리도 주님을 환영하는 주일입니다. 성지가지만 집에 가져와서 십자가에 걸어만 놓을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 안에 예수님을 모셔야 우리들의 몸이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거룩한 성전이 되고 감실이 될 것입니다. 이럴 때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이고 우리들은 가지가 될 것입니다.
1 일행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올리브산 벳파게에 다다랐을 때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며
2 이르셨다. "맞은편 마을로 가시오. 그러면 곧 암나귀와 그 곁에 새끼나귀가 매어 있는 것이 보일 터이니 풀어서 끌고 오시오.
3 혹시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님이 쓰시겠답니다.' 하시오. 그러면 풀어 줄 것입니다."
4 이리하여 예언자를 시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설명: 암나귀는 율법을 상징하며 새끼나귀는 복음을 상징합니다. 이사야서 1,2~3을 보면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자식이라 기르고 키웠더니 도리어 나에게 반항하는구나.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만들어 준 구유를 아는 데, 이스라엘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철 없이 구는구나.' " '하늘아 들어라.' 라는 말은 하늘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즉 하느님의 자녀들 즉 영의 자녀들을 상징합니다.
'땅아 들어라.'는 이스라엘의 백성 지도자가 아니고 육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말도 나귀도 자기를 타는 주인을 알고 있습니다. 소도 주인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소를 부릴 경우 소가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으로 매어 있지 않는, 고삐가 없는 새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구세주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말구유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시어 말의 음식으로 오셨다는 것은 영적인 하느님의 자녀들의 영적인 양식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으신 하느님의 자녀들만이 성체를 미사 중에 모실 수 있는 것도 좋은 예입니다.
5 "시온의 딸들에게 일러라. 보라, 네 임금님(메시아)이 오신다. 온유하시어 암나귀 타고 오신다. 짐바리 짐승 새끼나귀 타고 오신다."
설명: '시온의 딸들'할 때 이 딸이라는 말은, 씨이며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한테 없는 사람들로 성서에서는 남자나 여자 모두 딸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들 안에 들어오셔야 하느님의 아들들이 됩니다. 그래서 창세기 6,3 에서 하느님의 아들들과 사람들의 딸들이 결혼한 것은 영의 자녀들과 육의 자녀들이 결혼한 것을 말하며 영과 육이 결합했을 때 바벨탑 같은 거인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일러 주신 대로 하여,
7 암나귀와 새끼 나귀를 끌고 와서 그 등에 겉옷을 얹었다. 예수께서 올라앉으시자
8 많은 군중이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았고, 더러는 나무에서 가지를 꺾어다 길에 깔았다.
설명: 나뭇가지의 가지라는 뜻은 헬라말로 '크레마' 인데 요한복음 15장에서 참포도나무인 예수님과 가지인 사도들과 오늘날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을 말합니다. 성지주일 때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환영하는 것은 예수님과 가지인 우리들이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는 빵과 빵조각을 이 '크레마('크라도스' 라는 말은 같은 어원에서 유래됩니다.)' 라는 뜻으로 사용했으며, 지체라는 말로 말씀하셨습니다.(고린도 전서 11장의 성 만찬을 보십시오.)
9 군중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외첬다. "다윗(메시아라는 뜻입니다.)의 아드님께 호산나(하느님, 구원 하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축복받으소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 호산나!"
10 이윽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도성이 술렁거리며 "이분이 누구요?" 하였고,
11 군중은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 예수시오." 하고 말했다.
요한복음은 2장에서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시나, 마태복음에서는 21장에서 상인들을 쫓아내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성전에서 소, 양, 비둘기를 바쳐서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구약의 제사이며 그림자이므로,
신약의 제사에서는 그림자가 아닌 실체인 하느님의 아드님이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구약의 제사를 지내지 말고 하느님의 외아들인 나를 알아보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림자에 제사를 지내면 영혼이 죽으니까, 복음인 내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소는 전능하신 하느님 즉 성부를 상징하고 양은 예수님을 상징하며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소, 양, 비둘기를 잡아서 바치는 제사는 구약의 제사이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안타까워서 사고팔고하는 자를 쫓아내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은, 우리들의 마음 안에 예수님이 들어오셔야 성전이 이루어지므로 우리들의 마음 안에 있는 소, 양, 비둘기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율법으로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마음을 비웠을 때 에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 안에 오시어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율법으로 드리는 제사는 그만 두고 새 계약의 성취를 이루러 오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율법에서 차원을 달리해서 복음의 차원인 예수님 믿고 자유가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시다(마태 21,12~17)
12 예수께서 성전으로 들어가시어, 성전에서 팔고사고하는 자들을 모두 쫓아내며 환전상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의 의자를 들러엎고
13 말씀하셨다. "성서에 '내 집은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라고 씌어 있거늘, 당신네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소."
14 성전에서 맹인들과 절름발이들이 다가오자 예수께서 고쳐 주셨다.
설명: 율법 즉 하느님의 말씀을 자기의 의로 지키고 행할려고 하는 사람들이 병자들인데, 이 병자들이 중풍병자, 간질병자, 절름바리, 소경들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율법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안에 오셔서 사랑으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고 하십니다.
15 대제관들과 율사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과, 성전에서 "다윗의 아드님께 호산나!" 하며 외치는 아이들을 보고 언짢아하며
16 "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있습니까?" 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듣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철부지와 젖먹이들의 입에 찬양을 마련하셨도다.' 하신 성서의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습니까?'
17 그리고는 그들을 두고 성 밖으로 떠나가 베다니아에서 밤을 지내셨다.
성전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건물로서 성전, 신자들의 모임인 영적 성전, 그리고 주님을 모시는 우리 몸을 일컫는 성전입니다(1코린 6,19 참조).
오늘날 건물로서 성전은 그 중앙에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제대가 있고 성체를 모셔 두는 감실이 있습니다. 이곳은 신자들이 기도하고, 자신을 깨끗이 하며, 주님께 위로를 받는 하느님 현존의 표징을 드러내는 거룩한 공간입니다.
영적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하여 신자들이 만나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친교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삶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분과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서로 지체가 되는 거룩한 만남이 성전입니다(로마 12,5 참조).
성령께서 거처하시는 궁전으로서 우리 몸 또한 주님을 모시는 성전입니다. 우리 몸은 성체를 받아 모시고 말씀을 품고 사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 몸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1코린 6,19)
신앙인에게 기도하는 공간도, 만남도, 한 개인의 삶도, 모두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주님의 성전입니다. 우리가 다니는 성당도 거룩한 장소가 되도록 해야 하고, 이웃과 만남도 아름다워야 하며, 우리 몸도 거룩하고 깨끗하게 보존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