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장은 마태복음의 묵시록이고 교회의 심판장입니다.이 심판장은 구원과 심판으로 갈라 놓은 것입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잔(믿음을 상징)에 기름(성령을 상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구원이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잔은 있으나 기름이 없기 때문에 심판과 죽음의 길입니다.
우리들 보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등잔에 기름(성령)를 준비하여 영적인 신랑인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구원을 받을 것인지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등잔은 가지고 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서 심판과 죽음의 길로 갈 것인지 우리들보고 자유의 의지로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 차체이시기 때문에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다섯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구원의 길과 사망의 길을 예화로 보여 주십니다.
다섯 달란트(달란트는 예수 그리스도 상징)와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전도를 했기 때문에 구원과 생명의 길이고 ,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율법에 매어 있기 때문에 하느님을 무서운 하느님으로 보고 받은 달란트를 전도해서 한 달란트를 더 벌어야 하는데 한 달란트를 땅속인 자기 마음 안에 숨겨놓고 말씀 전도를 안했기 때문에 심판과 사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달란트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 전도를 해야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다시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을 예화를 들어서 말씀해 주십니다 배고프고 , 목마르고, 헐벗고, 감옥에 가고, 병든, 가장 작은 내 형제에게 해 주는것이 예수님께 해 주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세상적으로도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도 구제를 해야 되겠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픈 것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어서 영적으로 굶주리고, 예수님의 사랑과 참 평화가 없어서 참 평화에 목마르고, 말씀과 사랑의 옷이 없어서 헐벗고 , 원죄(원한, 원망, 선악과로 살아가는 사람)의 감옥에 갇혀 있고 병든 자에게 생명의 말씀인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도록 복음 선포하는 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성경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요한 14,23).하느님 말씀을 지키고 말씀으로 살아가면 열매인 사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나깨나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웃 사랑은 그리스도를 주는것, 즉 성경말씀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내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최후심판의 기준은 하느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가장 작은 자에게 이웃 사랑을 해주는 것이 예수님께 해드리는 것이며. 이런 사람은 우편에 서는 사람이고 구원을 받는 사람이고, 작은 자에게 사랑을 베풀지 못한 사람은 좌편에 서는 사람이고 심판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 사랑을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것이 가장 큰 이웃 사랑이라고 하시고, 마태복음 26~28장에서 수난받고 죽고 부활하심으로써, 구원의 완성과 천국의 완성을 해 놓으신 것입니다
청지기 종 비유(마태 24,45~51)에서 슬기로운 종과 미련한 종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마태복음 25장에서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를 비유로 들어 교회에 들어온 성도들의 심판을 말씀해 주십니다.
예화는 사무엘 상 25장에 나오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다시 설명해 주십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예화는 다윗('사랑 받는 자'라는 뜻임)이 나발('미련한 사람'이라는 뜻임)이라는 사람에게 빵과 포도주를 보내 달라고 요청을 했으나, 다윗이 앞으로 왕이 되리라는 것을 모르고 거절을 했습니다.
나발의 부인인 아비가일 ('내 아버지는 기뻐하신다'라는 뜻임)에게는 영리한 다섯 여종(사무 상 25,48)이 있었는데 아비가일에게 가서 "큰일났습니다. 주인인 나발 어른께서 다윗 장군의 청을 거절했습니다."라고 보고를 해서,
화가 나서 나발을 죽이려고 오는 다윗 장군에게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미리 나가서 아비가일이 용서를 빌었습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청을 받아들이고 용서해 주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나발이 듣고 죽었습니다. 나발이 죽고 난 후에 아비가일이 다윗의 부인이 되는 것입니다.
도덕적인 면으로 보면 잘못인 것 같으나 나발이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못 보았기 때문에 죽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시며 만왕의 왕이시고 구세주라는 것을 모르고 영접하지 않고 믿지 않는 미련한 다섯 처녀가 되지 말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받아들이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약의 사무엘 상 25장의 예화에 아비가엘은 영리한 다섯 시녀가 있었고 나발은 미련한 다섯 시녀가 있었는데 아비가엘의 영리한 다섯 시녀들의 말을 아비가엘은 듣고 목숨을 구했지만 미련한 나발은 미련한 다섯 시녀들의 말을 듣고 다윗을 맞이하지 아니해서 죽었던 것을 예화로 들어서 우리들이 잘 모르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풀어서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윗은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다윗왕한테 가서 죽지 않고 사는 것처럼 우리들은 예수님을 영접해야 영혼을 구원받는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다윗왕은 신약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것입니다. 밧세바도 다윗의 부인이 되어서 밧세바가 낳은 아들, 솔로몬('평화'라는 뜻임)이 왕이 됩니다.
도덕적으로 보면 잘못인 것 같으나 우리들이 어떤 죄를 짓더라도 예수님께 가서 예수님을 믿고 영접을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구약에서는 다윗왕한테로 가면 살고 또한 다윗은 예언자였으며 앞으로 오실 예수님의 예표인 것입니다.
열 처녀 비유(마태 25,1~13)
영리한 다섯 처녀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이며 이 '슬기롭다'는 헬라말은 '프레니모스'로서 성령을 쫓아가는 사람들로 슬기로운 처녀들과 같습니다. 오늘날에는 성령을 충만히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세상의 결혼을 예화로 들어서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결혼을 통해서 성체가 되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복되도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요한 묵시록 19,9)! 성경에서 결혼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결혼을 말씀하십니다.
등잔은 믿음을 말하는데 이 믿음은 하느님의 말씀(레마)을 들음으로 옵니다(로마 10,17). 그래서 믿음은 요한복음 차원에서는 예수님이 말씀이므로 이 믿음은 예수님이고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있는 교회의 심판이라고 합니다. 이 등잔은 믿음을 상징하고 이 믿음은 은사를 상징합니다.
은사가 있는 사람은, 기름인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갈라디아서 5,22~23) 등의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고
이 은사나 열매는 하느님의 속성(성품)이므로 살 수도 빌릴 수도 없는 것이고, 말씀 읽고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해서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성경의 말씀을 다 가지고 있으나 읽지 않는다면 등잔은 있으나 기름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우리들이 성경 말씀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읽어서 말씀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등의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믿고 세례를 받은 성도들은 다 등잔을 갖게 됩니다. 등잔의 기름은 석유가 아니라 이 기름은 헬라말로 '크리스마' 인데 기름 부음받음 요한 1서 2,27 에 나옵니다. 이 기름은 성령을 말합니다. 우리들이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등(갈라 5,22~23)이므로, 친구들한테 빌릴 수도 없고 돈으로 살 수도 없으며 오직 신앙생활을 잘 하면서 말씀 읽고 열매 생활을 하는 것이므로 빌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돈으로도 살 수도 없습니다.
이 말씀의 열매는 성경의 말씀을 읽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여 그 말씀을 깨닫게 되는데 이 깨닫는 말씀을 '레마' 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성스러운 일이라고 해서 성사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일은 예수님께서 말씀인 '레마'로 하시기 때문에 레마사역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들이 하는 일은 이루어지지 않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은 사람도 살리시고 말씀(레마)하시는 대로 말씀 성취가 됩니다.
등잔은 성령의 은사를 의미합니다. 기름은 성령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육과 은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이지만 성령의 열매인 사랑은 영생의 양식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열매인 사랑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살아갑시다.
1 "그 때 하늘나라는 열 처녀가 등(믿음=성경책)을 들고 신랑(예수 그리스도)을 마중나간 것과 같을 것입니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 자) 다섯은 슬기로웠습니다(말씀=성령의 열매를 맺은 성도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갖고 있으나 기름은 갖고 있지 않았지만
설명: 나발을 따르는 다섯 시종들은, 다윗에게 빵과 포도주를 줄 필요가 없다고 나발에게 권한 어리석은 종들이며,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는 했지만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면 어리석은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4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그릇(우리들의 심령 안에)에 기름(성령의 열매)도 담아 갖고 있었습니다.
5 신랑이(우리들의 영적인 남편인 신랑은 예수님이며, 성경에서 남자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늦어지자 모두 졸다가 (영적으로 말씀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잠이 들었는데
6 한밤중에 '보라 신랑이다. 마중나가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모두 일어나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은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누어 다오. 우리 등이 꺼져 간다.' 했지만
9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돼. 그러면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테니 차라리 상인들한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했습니다.
10 그들이 사러 나간 사이에 신랑이 왔습니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묵시록 19,7) 문이(말씀의 문임. 골로사아서 4,3) 닫혔습니다
설명: 성령의 열매인 사랑의 삶을 사는, 즉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골로 4,3에서 헬라 원문에는 '호 로고스' 즉 말씀의 문이라고 되어 있는데 어떤 번역서는 '전도의 문'이라고 쓰어 있는 성경책도 있습니다. 성서의 말씀이 열리고 깨달아서 말씀화가 되는 것이 요한복음 차원에서는 천국입니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님, 주님. 열어 주십시오.' 했지만
12 신랑(예수님)은 대답했습니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나는 너희를 모른다.'
설명: 아멘, 아멘. 두번 반복하시는 것임. 반드시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13 그러니 깨어 있으시오.그 날과 그 시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설명: 영원한 생명은'한 분이신 참 하느님을 알고 그분이 파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요한 17 ,3). 안다는 것은 눈으로 보아서 아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같이 살아가면서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아는 것처럼 우리들도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면서 아! 하느님의 속성인 사랑과 기쁨과 평화가 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럴 때 하느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것이 영원한 죽음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모른다고 하시면 영적으로 잠들고 죽은 상태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모르는 자는 예수님을 모르고 또한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5,39 에서는 "당신들은 성경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경를 연구하고 있지만, 바로 그 성경이 나에(예수님)대해 증언하고 있다."고 하십니다.아멘.
성경의 책은 구원의 책입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 등잔과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구원을 받고,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심판을 받게 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다시 구원하시기 위하여 달란트 비유를 들어서 구원 과정을 계시해 주십니다.
이 달란트가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마태 20,4 에서도 데나리온 즉 'dikaios' 라는 헬라말(상당한 삯)은 의로움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13,44~46 을 보면 예수님을 진주 또는 보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천국가는 데는 돈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마태 2,10 에서도 동방의 세 박사들이 황금 유황 몰약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은 금은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라는 뜻이고, 유황은 신성을 상징하고, 몰약은 썩지 않게 하는 약인데 예수님의 인성을 말합니다. 자세한 것은 마태 2,10 을 읽어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는 사도들이고, 두 달란트는 성인들이고, 한 달란트는 평신도들로 비유해서 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계시되어 있는 뜻을 잘 알아서 우리들도 모두 구원을 받도록 하십시다.
묵시록 21,15 에 나오는 금갈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갈대는 우리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이사야서 42,3 에 나오는 부러진 갈대는 우리들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의 열 처녀의 비유에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성도들을 달란트 비유를 들어서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을 설명하십니다.
달란트 비유(마태 25,14~30;마르13,34;루카,11~27)
14 "그것은 여행가는 사람의 경우와 같습니다.떠나면서(마태 24,46) 종들을 불러 재산을(영적 양식) 맡기며
15 깜양대로 하나에게는 다섯 달란트(레마-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함),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설명: kai는 헬라말로 '그리고'라는 뜻임. 원문에는 깜양=능력이라는 말이 생략이 되어 있습니다.
16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곧 가서 그것을 활용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설명: 다섯 달란트를 벌은 것은 그리스도를 받고 그리스도를 주어서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들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그 좋으신 복음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17 두 달란트 받은 종도 그렇게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18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숨겼습니다.
설명: 여기에서 땅은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를 받아서 나의 마음 속에만 간직하고, 복음을 전하고 전도를 해야 하는데 전도를 하지 아니했으므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받은 능력을 하느님께서는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받은 능력대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율법에 매어 있으니까 두려워서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19 많은 시일이 지나 주인이 와서 셈을(말씀 심판, 요한 12,48) 밝혔습니다.
설명: 주인이신 하느님이 오셔서 셈을 하신다는 말의 뜻은 헬라말로는 쉬나아로(suvaipw)인데 헬라원어 성경에는 로고스(logos)라는 말이 있는데 즉 말씀으로 심판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말씀으로 심판을 하시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많이 읽고 말씀에 의 하여 말씀대로 살아가면 구원이고 말씀을 거슬러 살아가면 말씀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요한12,48)
20 다섯 달란트 받은 이가 다가와서 다섯 달란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다섯 달란트를 맡겨 주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니
21 주인(하느님)이 말했습니다.'잘했다. 착하고 충실한 종아, 작은 일에 충실했으니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주인의 기쁨(성령의 열매, 갈라 5,22~23)을 함께 누려라.'
22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다가와서 '주인님, 두 달란트를 맡겨 주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자
23 주인은 말했습니다. '잘했다. 착하고 충실한 종아, 작은 일에 충실했으니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주인의기쁨을 함께 누려라.'
24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이가 다가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주인님, 저는 주인님이 모진 분이라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도 않은 데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달란트를 땅(마음=심령) 속에 숨겼습니다.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입니다.'
26 주인이 대답했습니다.'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도 않은 데서 모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27 그렇다면 내 돈을 돈놀이꾼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랬더라면 내가 와서 이자와 함께 돈을 돌려 받았을 것이다.
설명: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율법의 하느님,무서운 하느님, 벌 주시는 하느님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즉 복음을 받아서 자기 안에 간직하고 전도를 아니 했으므로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벌 주시는 구약의 하느님으로 보시지 말고 자비와 용서와 사랑의 하느님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28 그자한테서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종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넘치게 가질 것이고 갖지 못한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설명: 하느님께서 돈을 많이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게 하고 돈이 없는 자는 더 가난하게 하시는 하느님으로 보시지 말고, 그리스도 즉, 복음을 받아서 성령의 열매인 사랑을 받으면 받을수록 사랑이 충만해지고 기쁨의 열매를 맺으면 기쁨이 더 커지는 것을 말합니다.
기쁨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 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달란트를 그리스도 즉 예수님으로 보셔야 성경의 맥이 통합니다.
30 이 쓸모 없는 종을 바깥 어둠 속으로(지옥을 상징함) 쫓아내라.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