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죽일 음모 마태 26,1-5

2011. 9. 1. 오후 3: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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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장,  27장,  28장은 천국 완성을 말합니다.즉 예수님께서 수난 받고 죽고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우리 목숨은 헬라어로 '푸쉬케'이며 혼 또는 마음을 의미하고, 이 마음이 생각을 만들고 이 생각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의 성질을 그리스도와 함께 죽이고 그리스도의 마음인 사랑으로 인격적인 변화가 오는 것이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21-28에 보면 첫번째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를 하십니다. 그러면서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이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처럼 우리들도 마음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는 마태복음 17장 22절에서 말씀하시고, 세 번째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고는 마태복음 20장 1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저희들도 한꺼번에 죽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이 점진적으로 죽고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예화를 들면 한 주부의 남편이 건설업을 하는데 매일 밤 2시까지 술을 마시고 오기 때문에 그 부인과 남편은 매일 밤 2시만 되면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날 밤이면 모든 물건들이 깨뜨려지고 다음날 사오는 것이 반복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 자매님이 성서공부를 나와서 말씀으로 주님을 만난 다음에 사랑과 기쁨과 평화가 오기 때문에 남편이 밤 2시에 들어오기 전인 밤 12시에 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 자기 남편을 기도로 맡겼기 때문에 근심 걱정이 없어지고 마음의 평화와 자유가 와서  남편으로부터 해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며칠을 계속하자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으례 싸울 것으로 생각했으나 싸우지 않고  잠들어 있는 부인을 보고 그 남편은 혹시 자기 부인이 바람이나 나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부인이 어디를 다니는지 감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성서공부를 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가만히 뒷자석에 앉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지 얼마 후에 말씀 안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고 인격적인 변화가 남편에게 왔기 때문에 이제 남편은 술을 끊고 밤 2시에 돌아오던 사람이 저녁 7시면 퇴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이 두 부부는 그리스도와 함께 과거 생활에서 육은 죽고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우리 본래의 마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이제 하느님의 속성인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부활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질을 죽이지 않고는 변화가 될 수 없습니다. 이 변화가 바로 부활입니다.

 과거 내 성질을 죽이는 것은 너무나 아깝고 분하기 때문에 잘 죽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들은 반드시 변화됩니다. 심령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들의 마음이 죽어야 하는데, 이 때 마음에 고난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반드시 말씀이 들어 와야 죽고 변화가 됩니다. 이 심령의 부활은 육체로 있는 우리들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몸의 부활은 육의 옷을 벗어야 신령체의 부활이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심령의 부활은 이루어졌으나 몸의 부활을 위하여서는육체의 고난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영의 부활과 몸의 부활이 오기 전에 반드시 고난 받고 죽어 부활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고난의 잔을 달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를 죽일 음모 (마태 26,1~5)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모두 마치고 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알다시피 이틀 뒤에 해방절이 되는데 인자는 넘겨져 십자가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설명: 십자가형을 받게 된다는 것은 예언이고 유언입니다.또 해방절(과월절, 또는 유월절)은 출애굽기 12,1-16 을 보면 어린양을 잡아서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 양을 구워서 먹는  집안에는 살육의 천사가 지나가면서 맏아들을 다 보호했습니다. 그러나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지 않은 애굽 사람들의 장자는 모두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해방절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누룩 없는 빵도 죄가 없는 빵, 즉 죄가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합니다.  또 물에 삶아 먹지 말고 불에 구워 먹으라는 말씀은 하느님 말씀을 성령으로 먹으라는 것입니다. 쓴 나물과 같이 먹으라는 뜻은 고통을 의미합니다. 허리에 띠를 매고 먹으라는 말씀은 복음 진리 말씀으로 먹으라는 뜻입니다.

 에페소서 6장 14절을 보면 진리의 띠란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절 어린양을 잡아서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불로 구워 먹고 했을 때 구원 받았던 것처럼,오늘날도 십자가 상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성혈을 흘리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몸을 받아들임으로써 구원 받고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됨을 상징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이 예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몸을 먹으라는 말은 말씀의 살과 말씀의 피를 먹으라는 뜻입니다.

 3  그 때 대제관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가야파라는 대제관의 저택에 모여

4  속임수로 예수를 붙잡아 죽이기로 결의했다.

 설명: 요한복음 12장 24절에 의하면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육신이 죽으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성질이 죽을 때,성부 성자 성령의 열매인 말씀의 열매로서 사랑 기쁨  평화 인내 등의 많은 열매들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문자 그래로 보고 죽어야만 부활할 수 있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으면서  "우리도 부활하기 위해 죽읍시다."하고 자살하는 경우를 신문에서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들의 심령을 죽이라는 뜻입니다. 심령을 죽이고 예수님의 심령인 사랑으로 인격적인 변화를 가져오라는 뜻입니다.

문자로만 보고 자살하는 사건은 큰 잘못인 것입니다.죽으라는 말은 우리들이 화를 내고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는 마음을 죽이고 버리라는 것입니다.

5  그러나  "백성 가운데 소동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축제 동안에는 안 됩니다. " 하였다.

 부활에는 영의 부활과 몸의 부활이 있는데, 영의 부활은 육신이 살아 있을 때 심령의 부활을 말하는데, 우리들의 마음이 죽고(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이 영의 부활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여러가지 고통이 오며 병 때문에, 또는 돈 때문에 또는 가족 때문에, 특히 부부간이나 자녀들 때문에 많은 고통이 오는데 이 고통을 통해서 우리 마음이 죽고 변화되며,  

특히 그리스도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왔을 때 내 마음이 사랑의 사람으로 즉 예수님 마음으로 변화됩니다.

 그런 고통을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변화된 삶으로 사는 것이 영의 부활이고, 이렇게 영의 부활이 되는 사람이, 마지막 날 육신의 옷을 벗고 영과 몸의 부활하는 것을 신영체 부활이라고 합니다.

 예화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은혜 받았던 예화를 그대로 들겠습니다.

어떤 아버지와 엄마와 딸이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 사고가 났는데, 딸은 완전히 다리 병신이 되어 목발을 집고 다니고 아빠도 목발을 집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딸이 엄마를 미워하고 아빠는 양다리는 있지만 목발을 집고 다니기 때문에 서로 대화가 통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차에 다칠만한 위험한 상태에 있을 때 아빠가 목발을 던져 버리고 뛰어가 그 아이를 구해 내었습니다. 그래서 딸이 의아한 눈초리로 아빠를 바라보고 있을 때에 엄마가 말하시기를  "너희 아빠는 다리가 멀쩡하시단다. 그러나 너를 생각해서 일부러 목발을 집고 다니셨단다."  하고 말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아버지 안에는 하느님의 아가페 사랑이 현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즉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사랑해 주는 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아, 이 아버지에게는 하는님의 사랑이 현존하는구나." 하고 느끼기만하면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차원 더 나아가서 묵상해 보며는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소경이며, 영적 귀머거리이며, 영적 벙어리이며, 영적으로 절름발이이며, 영적으로 나병환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화를 내었을 때 이것은 분노의 마귀이고, 우리가 남을 미워했을 때 이것이 미움의 마귀이고, 남을 판단하였을 때 이런 것들이 영적으로 절름발이라는 것을 느끼고 깨닫게 되면은 우리 모두는 십자가로 된 목발을 집고 천국을 향해서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본당 신부님은 실제 육신으로 걸어다닐 때도 멀쩡하시며 영적으로도 절름발이가 아니지만, 우리 신자들을 위해서 십자가로 된 목발을 우리를 위해 짚고 다니시며, 우리들의 입장을 생각해서 우리들의 잘못을 보지 않고, 우리들의 좋은 점을 칭찬해 주시고 신자들이 미사에 나오면 기뻐하십니다.

 저희들의 입장으로 내려와서 저희들의 영성 생활을 위해서 십자가를 져 주시는 신부님을 보면 항상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서 나도 이제 집에 가서 이웃 사랑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서 병원을 하고 있는 의사인 내 아들이 친구들하고 오랜만에 만나서 술을 마시고 밤 열두 시에 들어왔는데 술에 취해서 싱크대에 많이 토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나가서 구토물을 전부 화장실에 버리고 싱크대를 깨끗이 씻은 다음에 술 취한 아들 방에 들어가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다음날 아침에 출근 하면서 우리 자매에게  "만일 정오 전에 일어나면 나에게로 오게 하고, 그 후에 깨어나면 오지 말라." 고 말하고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마치 12시에 내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왔기 때문에 내가 갈비탕을 잘하는 일번옥으로 같이 가서 갈비탕을 둘이 한 그릇씩 먹으면서 약주 후에는 이것이 몸에 좋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식사 후에 택시를 태워 귀가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 엄마에게 얘기하기를 아빠가 약주를 많이 하였다고 꾸지람을 하실 줄 알았는데 건강을 생각해 주시면서 사랑으로 대해주시는 아버지 때문에 약주를 절제해야겠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처럼 사랑만이 한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의 집에는 컴퓨터에 미친 자녀들, 술을 많이 마시는 부부들, 고스톱에 미친 사람들, 이런 분들이 영적 절름발이라고 생각됩니다. 나는 이런 분들을 놀부 같은 예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보잘것 없는 놀부같은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서에서 보면 모세는 에집트 왕자로 있으면서 에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동족들을 구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졌으며, 미국의 킹 목사는 학대 받는 흑인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졌으며, 마더 데레사는 병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사랑의 십자가를 졌으며, 김대건 신부님은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를 모르는 모든 불쌍한 신자들을 위해서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순교하셨습니다.  이런 분들이 부활 신앙(즉 신앙의 열매)으로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부활하는 사람은 남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자존자이고 현재 부활 신앙을 사는 사람입니다. 부활 신앙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7절과 14절을 보면 마리아는 예수께 향유를 발라 드리고,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예화가 나오는데, 마리아는 육적으로 귀중한 향유를 팔아서 예수님을 사는 것이 하느님을 영접하는 것이고(세상의 귀중한 것을 팔아서 하늘나라인 예수님을 사고),  가리웃 유다는 예수님 즉 하느님을 팔아서 육적인 세상을 준비하고 샀으며 예수님을 배반하는 예입니다.

 마태복음 13장 44~46절을 보면 값진 진주인 예수님을 사기 위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귀중한 분노 시기 질투 같은 것을 버려야 합니다. 돈을 버리는 것보다 마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바르는 것은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을 대사제로(대제사장) 축성하시는 것이며 과월절의 희생된 어린양의 실체이며,멜기세덱의 영원한 대사제라는(히브리서 7,11)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것을 같이 묵상했으면 합니다.

예수께 향유를 발라 드리다(마태 26,6~13)             

6  예수께서 베다니아에서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묵으셨던 때였다.

설명: 열왕기하 5,1;민수기 12,1. 나병환자는 육적으로 볼 때 치유할  수 없는 질환인 것처럼, 영적으로는 우리 마음이 화를 내고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면 마음의 나병을 못 고치므로 우리도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믿지 않은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영적 나병이라고 합니다. 나병은 치유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들은 모두 원죄가 있으므로 우리들의 힘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7  한 여자가 귀중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다가와서 음식상을 받고 계신     그분 머리에 부었다.

 설명: 향유는 마리아가 일생 모은 재산을 말하며 마리아가 가진 모든 것,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도유(기름 바름)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행위이고 예수님의 장사를 의미하며, 마리아가 자신의 귀중한 것을 팔아서 보물인 예수님을 사는 것입니다. 

 차원을 달리해서 보면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행위는 구원역사에서 큰 뜻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왕이나 제사장으로 임명할 때 기름을 부어서 축성을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께 기름을 부으신 것은 예수님을 대사제로 임명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7,11을 보시면  일반 제사장은 아론의 번차를 따라서 임명이 되었지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멜기세댁의 번차를 따라서 대사제로 임명을 하셨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갈바리아산에서 어린양으로서 희생 제물이 되시고 또한 대사제가 되셨습니다.

우리들도 세례를 받을 때 도유 기름 바르심으로서 평신도 사제직, 평신도 예언직, 평신도 왕직을 받는 것입니다.

 8  그러자 제자들이 보고 언짢아 하며 말했다.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설명: 사도들은 영적인 복음의 가치를 생각지 않고 물질적인 돈을 생각하기 때문에 낭비라고 말하지만 마리아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 바치는 것처럼, 우리들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 바치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즉 육을 팔아서 영을 사는 행위입니다. 세상의 귀중한 것을 팔아서 하느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것입니다.기름 바르는 행위는 예수님께서 영원한 대사제로 오셨다는 것을 우리들이 깨달아야 합니다.

 9  비싸게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었을 터인데. "

 10 예수께서 알고 말씀하셨다. "왜 괴롭힙니까? 그는 나에게 좋은 일을 했습니다.

 설명: 좋은 일은 선한 일로써 예수님께서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을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1  가난한 이는 주변에 늘 있기 마련이지만 언제까지나 그대들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은 아닙니다

 12  내 몸에 향유를 쏟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해서입니다.

 설명: 예수님의 장례 즉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 영혼을 위해서 죽으시는 것이고 천국을 완성시키기 위해 죽으시는데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로 천국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죽으셔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신영체 부활하신 후 제일 먼저 만나시는 분도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우리들의 경우에도 육체의 본능을 죽이고 즉 마음을 죽이고 심령의 부활을 해야 하며 마지막에는 육의 옷을 벗고 신영체 부활을 소망해야 합니다.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것도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시켜서 예수님이 대사제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이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3  진실히 말하거니와, 이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그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

 유다가 예수를 주기로 약속하다(마태 26,14~16)  

14 그때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 이스가리옷이라는 자가 대제관들에게 가서 

15 "내가 그분을 넘겨주면(영인 예수님을 팔아서 육인 돈을 얻음) 무엇을 주겠습니까? " 하니 그들은 "은전 서른 닢을 주마."고 하였다.

16  그 때부터 그는 그분을 넘겨주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설명: 마리아는 귀중한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와 하나됨으로써 구원 받는 사람들을 상징하며 우리 모두는 마리아처럼 우리가 버리기 아까운, 잘 안 버려지는 분노, 미움, 시기, 질투 등을 주고 예수님을 사서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구원 받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스가리옷 유다처럼 예수님과 복음을 버리고 육적인 세상 일에 짝짝궁하고, 돈에 눈 멀고, 욕심에 눈이 멀어서 예수님을 멀리함으로써 심판받는 그런 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구원과 심판을 잘 묵상하고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마리아가 하는 일은 복음이 전해진 곳엔 다 알려져야 한다. " 고  칭찬의 말씀을 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향유를 예수님께 발라드리도록 노력합시다.

 여기에서도 구원의 길과 심판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사건의 뜻은 큰 뜻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보시면 왕이나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기름을 붓거나 발랐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께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멜기세덱의 번차를 따라 대사제(대제사장)가 되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히브 7,11).  구약에서 모든 제사장은 아론의 번차를 따라 기름을 발라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희생양이 되셨으며 스스로 대사제가 되셔서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완성해 놓으셨습니다. 이렇게 기름을 바르신데도 구원에 대한 크신 뜻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세례를 받을 때 도유 기름을 바름으로써 평신도 사제직, 평신도 예언직, 평신도 왕직을 받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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