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처녀 비유에서 등잔과 기름을 준비한 영리한 다섯 처녀는 주님을 영접해서 구원 받은 사람이고, 또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가진 사람은 전도를 해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벌었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해서 구원 받게 됩니다.
이제 최후 심판에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뵙고 구원 받음을 예화로 설명해 주십니다.
이 달란트도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루가복음 10,25~42을 예로 들겠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이중 계명에서 주님께서는 예화를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것이 하느님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대로 살아가면 열매인 사랑이 오기 때문에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입니다.(요한복14,23).
또 이웃 사랑은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통해서 강도를 맞아 거의 죽어가는 사람에게 기름(성령을 상징함)을 발라 주고 포도주(예수님을 상징함)를 부어 상처를 싸매 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강도맞은 것처럼 어렵게 살아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는 치유됨을 예화로 들어서 설명해 주시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을 만나게 해 주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은 나 자신입니다. 이웃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물을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주고, 감옥에 있는 사람을 방문하고, 병든 사람을 친절하게 돌봐 주는 것 등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 예수님께 해주는 것이라고 이웃 사랑을 설명하십니다.
내가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 주고 사랑했느냐가 우리들의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열 처녀 비유에서 하느님을 못 만나면 다시 달란트 비유에서 주님을 만나도록 예비해 주시고, 거기에서도 못 만나면 또 다시 이웃 사랑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도록 배려해 주십니다. 그래도 만나지 못할 때는 요한복음 2장에서 만나게 해주십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성모님이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 하고 말씀하시자 예수님은 "아직 제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만드는 기적을 행해 주셨습니다.
성모 마리아님이 포도주를 청해 주신 것처럼 우리들은 성모 마리아님께 증보의 기도를 청해야 합니다.
최후 심판(마태 25,31~46)
31 "인자가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더불어 오면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입니다
설명: 천사는 육의 차원(낮은 차원)에서 볼 때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사로 보지만영의 차원(헬라어로 '푸뉴마')에서는 하느님 말씀을 전달하는 전달자, 즉 메신저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이고 신약에서는 사도들입니다. 오늘날은 하느님 말씀을 증거하는 성도들입니다.
옥좌는 세상에서는 왕들이 앉아 있는 의자이지만 영적으로는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수난 받고 돌아가신 십자가가 옥좌이며 보좌입니다. 영광은 우리들의 육이 죽고 영으로 부활하는 것이 영광입니다.
우리들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은 말씀화가 되어서 육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우리들의 영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는 것입니다.
32 모든 민족이 인자 앞에 모여들 것이고,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서로 갈라서
33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세울 것입니다.
설명: 오른편은 우리들이 시공간 차원에서 볼 때는 오른쪽이지만 영의 차원에서 볼 때는 오른쪽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은 다 오른편에 속하고 구원받은 자들이지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왼편이며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도(예수님의 십자가의 오른편에 매달려 있던 강도)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구원 받은 자를 의미하고,좌도(십자가의 왼편에 매달려 있던 강도)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제단을 보시면, 제단은 히브리 말로 '에벤루아흐'로, '에'는 아버지를 뜻하고, '벤'은 아들을 뜻합니다. 그래서 제단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뜻하며,
복음 독서대가 제단의 우편에 있는 것입니다. 제단이 3 층에 있는 것은 고린토 후서 12,2 을 보면 천국이 3 층 하늘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미사 때 제대가 몇 층에 있는지 보십시오. 제대도 3층에 있습니다.
34 그 때 임금(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함)은 오른편 사람들에게 말할 것입니다.'내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부터 너희를 위해 마련해 둔 나라를 상속받아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맞아들였다.
설명: 굶주림은 육적으로 볼 때는 먹을 음식이 없어서 굶주린 것이지만 영적으로 봤을 때는 하느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고 사는 사람이 굶주린 사람입니다.
하느님 말씀은 영이고 생명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묵상해서 '레마(헬라어로 감동된 하느님 말씀이란 뜻임)'로 먹지 않으면 굷주린 사람입니다. 목말랐을 때는 육안으로 볼 때는 마실 물이 없어서 목마른 것이지만 영으로 볼 때는 하느님 말씀을 문자로 보는 것이 목마른 것입니다.(고린토 후서 3,6)
나그네는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안 계시면 우리들은 하느님이 우리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에 고아이고 또한 나그네 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안 계시면 영적인 남편인 예수님이 안 계시므로 남자나 여자가 다 과부이고, 하느님이 우리 아버지가 아니시므로 다 나그네이고 고아들입니다.
36 헐벗었을 때 입혀 주었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으며,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와 주었다.
설명: 헐벗음은 육안으로 볼 때는 옷을 못 입는 것을 말하지만 차원을 달리해서 영차원으로 볼 때는 말씀의 옷인 그리스도 옷을 입지 못하는 사람을 말하며 마태복음 22장에서는 예복을 말합니다. 또한 모시옷으로도 상징합니다.
감옥은 육안으로 볼 때는 죄를 지은 죄수들이 있는 곳을 말하지만 영안으로 볼 때는 우리 에고인 육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없을 때는 내 육체 자신이 육의 감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들은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 됩니다.
37 그러면 의인들이 대답할 것입니다.'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이 굶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시게 해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해 드렸습니까?
38 저희가 언제 주님이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맞아들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혀 드렸습니까?
39 저희가 언제 주님이 병들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주님을 찾아 갔습니까?'
40 이에 임금이 말할 것입니다.'진실히 말하거니와, 너희가 지극히 작은 네 형제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었을 때마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설명: 병든 것은 육안으로 볼 때는 몸이 아픈 것을 말하지만 영안으로 볼 때는 우리 심령 안에 죄가 있는 것을 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인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주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해 주는 것이 영적인 병을 치유해 주는 것입니다.
매일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전해 주는 것이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해 주는 것이 되고 예수님께 해 드리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 사랑은 성경 말씀을 읽는 것이 하느님 사랑이고, 이웃 사랑은 성경 말씀을 전해 주는 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41 아울러 임금은 왼편 사람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악마와 그 심부름꾼들을 위해 마련된 영원한 불 속으로 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지 않았다.
43 나그네 되었을 때 맞아들이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 입혀주지 않았으며, 병들고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오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이 대답할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이 굶주리거나 목마르거나 나그네 되거나 헐벗었거나 병들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주님께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이에 임금이 말할 것입니다.'진실히 말하거니와, 너희가 이 지극히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지 않았을 때마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그래서 이들은 영원한 벌을 받으러 갈 것이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러 갈 것입니다.' "
설명: 신부님의 강론을 예화로 듭니다. 태어날 때부터 세례를 받은 구두 수선하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오늘 너를 찾아가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분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침 일찍 청소하는 사람이 자기를 찾아 온 것을 보고 커피 한 잔을 대접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청소부는 평상시 구두쇠 같던 분이 어쩐 일로 커피를 주나 의아해 했습니다. 왜냐하면 커피는 아침 식사이기 때문입니다.
좀 있다가 소녀가 꽃병을 들고 가다가 깨뜨렸습니다. 그래서 구두 수선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오시다가 발을 상하면 어쩌나' 하고 자기 화병을 그 소녀에게 얼른 갖다 주고 깨진 꽃병 주위를 깨끗이 청소해 놓고 기다렸습니다.
한참 있다가 자기한테 구두를 수선하였던 사람이 와서 수선비로 500원을 달라고 하였으나 그 사람이 자기는 300원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500원을 다 받았을 터인데 예수님이 오실 것을 생각하여 300원도 좋다고 하여 보냈습니다.
하루종일 기다려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그 사람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하루 종일 예수님을 기다렸는데 왜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아니다. 오늘 내가 너를 세 번이나 찾아 갔었다. 그런데 너는 나를 모른다 하지 않고 나를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이 예화를 통해서 우리는 이웃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게 되었으며, 예수님께서는 매일매일 우리가 만나는 사람을 통해서 오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랑과 기쁨과 친절을 베푸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 해 드린다는 것을 알고 살아야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웃 사랑을 말씀하시고, 26장에서는 이웃 사랑은 희생과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26, 27, 28장에서는 가장 큰 사랑은 형제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 놓는 것임을 보여 주십니다.
심판은 율법으로 볼 때는 십계명을 지키고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 보지만 영차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사랑의 사람으로서 살아갈 때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 받는 자입니다.
이제 마태 26장, 27장, 28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수난 받고 죽으시고 부활을 하심으로써 천국을 완성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