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완성이며 천국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박해를 가하는 자들은 일반 백성들이 아니고 종교의 지도자들입니다.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종교 지도자들의 안에 있는 율법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들이 아가페 사랑이 없고 율법에 매어 있으면 이웃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며 형제들의 영혼을 죽이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빌라도에게 압송되시다(마태 27,1~2)
1 새벽이 되자 대제관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모두 예수를 반대하여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2 그래서 그분을 묶어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겼다.
유다의 죽음(마태 27,3)
가리옷 유다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보지 못하고 즉 영적인 소경이므로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메시아를 보지 못하고, 육적인 눈으로 볼 때 기적을 행하곤 하시어, 기적으로 로마를 쳐부수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왕으로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은전 30 닢에 팔아 넘겼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성경을 볼 때 문자로 보고 그 안에 있는 영적인 뜻을 모르면 영적인 소경이므로, 오늘날에도 예수님께 못 박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유다는 회개를 한다고 했지만, 자살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임을 모르고 하는 짓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명은, 하느님에게 속하므로 자살이나 타살이 모두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유다가 죽었다는 것은 기복 신앙으로 살아가는 육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매일매일 죄를 짓고 살지만 베드로 사도처럼 회개를 하느냐, 가리옷 유다처럼 자살로 회개를 하느냐, 여기에서 구원의 길 두 가지가 열려 있습니다. 우리들도 베드로 사도처럼 회개하고 살아 가도록 기도합시다.
3 예수를 넘겨 주었던 유다는 그분이 선고 받으신 것을 보자 뉘우치고 은전 서른 닢을 대제관들과 원로들에게 돌려 주면서
4 "내가 무죄('하마르타노' 즉 원죄라는 말임)한 피를 넘겨 주어 죄를 지었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무슨 상관이오? 그건 당신 일이오." 하였다.
5 유다는 성소쪽으로 돈을 내던지고 물러가서 목을 매었다.
6 대제관들은 돈을 거두면서 "이것은 피값과 같으니 성전 금고에 넣어서는 안됩니다." 하였다.
7 그리고 그 돈을 나그네 묘지에 쓰기로 결의하여 옹기장이의 밭을 샀다.(즈가리아 11,12).
8 그래서 그 밭을 오늘날까지 피밭이라고 부른다.
9 이렇게 해서 예레미야 예언자를 시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들이 은전 서른 닢을 받았으니 이스라엘 자손들이 값 매긴 자의 몸값이로다. "
10 그 들이 그것을 주고 옹기장이의 밭을 샀으니 주님이 나에게 명하신 대로 된 일이로다. "
유다와 베드로가 예수를 배반한 것은 우리들 안에서 선악과가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말로는 믿으면서도 삶으로는 모르고 육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메시아 하느님이라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빌라도와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백성들도 영안이 열리지 않아서 육안으로 보니까, 예수님 안에 계신 하느님을 못 보니까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죽이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왕이냐고 묻는 것은 빌라도의 눈에는 육체적인 세상의 왕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영적인 소경들이므로 예수님을 세상의 왕으로 생각을 해서 로마의 지배하에서 기적으로 로마를 처부수고 다윗과 같은 왕으로 다시 옛날의 이스라엘 왕국을 세울 것을 바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하늘나라를 세우시려고 오신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께 왕이냐고 신문을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8,37 에서 "당신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내가 하는 말이 당신들 안에 자리 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성경의 말씀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고 새겨지지 않으면, 우리들의 입을 통해서 나가는 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어서 남의 심령을 죽이는 일들이 될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해야 합니다.
나도 무심코 하는 말 때문에 가족과 여러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을 체험했습니다.
유다처럼 잘못을 하고 회개를 하는데 죽음으로써, 자살로써, 하느님의 뜻을 모르고 행동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베드로처럼 잘못을 하고서도 그냥 회개를 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고 신앙 생활을 하는 성도들임을 보여 주십니다.
구약에서 판관 입다는 "전쟁에서 적을 처부수게 해 주시면 승리하고 귀가할 때 제일 먼저 마중을 나오는 가족 중 한사람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약을 했는데, 전쟁에서 승리하고 집에 돌아올 때 외동딸이 마중을 나와서 그 사랑하는 딸을 인신 제물로 바칠 때 아버지인 입다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 것인가.
우리들도 하느님의 뜻을 모르고 열심을 낼 때, 고통스러운 신앙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때 "너는 너의 힘으로 싸우지만 나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싸운다." 고 즉 영적인 전쟁으로 싸운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우리들도 매일매일 기도로 생활을 할 때 하느님께서 도와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공의의 하느님이시고 아가페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하느님은, 죄를 지은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학수고대 하실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성경를 많이 읽고 묵상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을 생각합시다. 신앙 생활을 할 때, 베드로 사도처럼 할 것인가, 가리옷 유다처럼 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합시다.
빌라도의 심문과 사형 언도(마태 27,11~26)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서셨다. "당신이 유대인 왕이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그렇게 말합니다. (헬라말로는 '쉬 레게이스' '당신이 그렇게 현재 말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설명: 빌라도가 예수님께 당신이 왕이냐고 묻는 말은 ''세상의 왕이냐''를 묻는 말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이냐라고 묻는 말은 ''메시아로 오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묻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눈 앞에 보고도 영적안 소경들이므로 묻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성경을 보고 또 읽어도 영적인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므로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성경를 양식으로 먹기 위하여 읽어야 합니다.
우리들도 하느님이냐, 재물이냐에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말씀에서 멀어지면 세상의 왕인 재물에 매이게 되므로 나 자신한테 매일매일 물어봐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12 그분은 대제관들과 원로들로부터 고발당했지만 아무 대답도 하시지 않았다.
13 그 때 빌라도가 "저들이 얼마나 불리한 증언을 하는지 들리지 않소?" 하고 물었으나
14 그분이 한마디도 대답하시지 않으니 총독은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설명: "한마디도 하시지 않았다." 라고 한 한마디는 헬라 원문에는 ''레마'' 로 되어 있는데 이 ''레마''라는 이 말씀은 ''바로 이루어지시는 하느님의 말씀''이시고 예수님의 사역은 '레마'말씀 사역인 것입니다. 칠성사도 ''레마'' 말씀의 성취인 것입니다. 세레성사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말씀을 신부님의 입을 통해서 되풀이 하셨을 때 ''레마''말씀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바오로에게 세례를 줍니다." 라고 말씀하시면, 세례를 받으시는 사람이 "아멘." 했을 때 세례성사가 말씀의 성취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성사의 사효라고 교리에서 설명을 합니다.
15 축제 때마다 총독은 군중이 원하는 죄수 하나를 풀어 주는 관례가 있었는데
16 그때 마침 '예수 바라빠'라는 이름난 죄수가 있었다.
17 '그래서 빌라도는 사람들이 모여들자 "내가 누구를 풀어주기를 원하오? 예수 바라빠요, 아니면 그리스도라는 예수요?" 라고 물었다.
18 사실 그는 그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겼던 것을 알고 있었다.
19 그가 재판석에 앉아 있었는데 그의 아내가 전갈을 보냈다. "당신은 그 의인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말아요. 내가 오늘 꿈에 그 사람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어요."
설명: 빌라도의 아내에게 꿈으로 계시하는 것으로 빌라도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못 보지만 부인은 예수님을 의인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통해서 계시의 말씀을 주신다는 것을 알고 늘 하느님의 말씀을 가족이나 이웃 사람들로부터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바라빠''라는 뜻은 헬라말로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20 그러나 대제관들과 원로들은 군중을 부추겨 바라빠를 요청하고 예수는 없애 버리자고 하였다.
설명: 대제관들과 원로들의 마음은 육이고, 그들의 마음 안에는 금송아지(출애 32,4)인 돈과 세상의 왕을 원하고, 천국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 즉 메시아를 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육인 바라빠를 원하는 영적인 소경들인 것입니다.
21 총독이 되받아 "내가 두 사람 가운데 누구를 풀어 주기를 바라오?" 하고 묻자, 그들은 "바라빠요." 하고 대답했다.
22 빌라도가 "그렇다면 그리스도라는 예수는 어떻게 할까요?" 하자 모두들 "십자가형에 처해야 합니다." 하였다.
23 빌라도가 말했다.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했단 말이오?" 그러자 그들은 더욱 크게 외쳤다. "십자가형에 처해야 합니다!"
24 빌라도는 말해 봐야 소용없을 뿐더러 오히려 소동만 커지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했다. "나는 이 피에 죄가 없소, 이건 당신네 일이오."
25 그러자 온 백성이 대꾸했다."그의 피는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책임질 것입니다."
26 이에 빌라도는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는 채찍질한 다음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넘겨 주었다.
설명: 교회의 전승과 '앨련 에임스'의 영적 기록인 '예수님의 눈으로'라는 책을 보시면, 바라빠는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서 로마군들에게 폭동을 이르켜서 큰 죄인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육의 눈으로 볼 때, 바라빠를 취하고 메시아아인 예수님을 버렸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하느님이시고 메시아라는 것을 볼 수 있는 눈, 즉 영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성경를 읽을 때 성경 안에 있는 하느님의 뜻을 깨닭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육의 눈으로 볼 때는 바라빠가 이스라엘의 독립 운동가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군사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다(마태 27, 27~31)
27 그 때 총독의 군인들이 총독 관저로 예수를 끌고 가서 둘레에 온 부대원을 모았다.
28 그리고는 그분의 옷을 벗기고 붉은 망토를 둘러 입히고
설명: 붉은 망토는 세상의 왕들이 입은 옷이였다.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하여. 여기에서는 유대인들과 로마 군인들은 모르고 했지만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고 메시아라는 것을 말하고 예언서나 시편과 구약성경의 말씀이 성취되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사야서 1장~39장(제1 이사야서) 까지는 구약에 있어서 메시아인 예수님에 관한 예언이고 이사야 40장~55장(제2 이사야서)까지는 신약에서 예수님에 관한 예언이며 이사야서 56장~66장(제3 이사야서)는 신약에서 성도들에게 이루어질 예언의 말씀들입니다.
29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머리에 얹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려서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유대인들의 왕 만세!" 하며 놀렸다.
설명: 예수님께서 쓰신 가시관을 문자로 보면 고통을 주는 가시나무로 된 관으로 단순히 생각을 할 수 있으나 여기에 영적인 뜻이 있습니다. 민수기 33,55. 욥기 5,5. 잠언 22,5. 마태 7,16.에서 보시면 생명의 나무와 선악과 나무의 열매를 생각할 때 이 가시는 죄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죄의 가시관을 쓰신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의 성혈(보혈)로 우리들의 죄를 다 씻고 용서를 받았습니다. (예레미아 17,1)
갈대도 영적인 묵상을 해야 합니다. 이사야 42,3의 상한 갈대는 우리 죄인들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묵시록 21,15에서 금갈대는 예수님을 상징하며 말씀과 성령을 상징합니다. 이 금갈대는 예수님을 상징하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구원이 되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어리석고 심판이 되는 금갈대가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도 장난으로 했지만 구약의 말씀성취로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시며 만왕의 왕이라는 말씀의 성취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0 또 침을 뱉고(이사야서 50,6의 말씀 성취입니다.)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쳤다.
31 그렇게 놀리고 나서 망토를 벗기고 겉옷을 입힌 다음 십자가형에 처하러 끌고 갔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마태 27,32~44)
이 십자가 사건은 육이 죽을 때 고난이 있는 것처럼 우리들도 반드시 이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받게 됩니다.그러나 육이 죽고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여기에서 우리들의 육뿐만이 아니라 심령이 죽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들의 에고가 죽고 예수님의 에고로 변한 것이 부활이요, 영생이며, 아가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14,6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갈바리아 산에서 죽으시는 것이 예수님의 길입니다.그러나 우리들은 죽지 않고 살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길입니다.
우리들도 매일매일 우리들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 우리들의 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십자가는 때로는 돈 때문에, 병 때문에, 자녀들 때문에, 부부간의 불화 때문에 받은 고통이 있으나 이 어려운 고통을 예수님과 함께 지는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우리들의 에고인 마음에 하느님의 말씀이 들어 와서 육적인 마음이 죽고 영적인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이 부활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버리는 것, 즉 화를 죽이고, 미움을 죽이고, 시기 질투를 버리는 것이 매일매일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17,1~2 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이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시고 또한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육이 죽고 영으로 부활하는 것이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32 군인들은 가다가 시몬이라는 키리네 사람을 만나자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다.
33 이윽고 골고타 곧 해골터라는 곳에 이르렀다.
34 그들이 쓸개 섞은 포도주를 마시라고 드렸으나 예수께서는 맛만 보고 마시려 하지 않았다.
설명: 이 쓸개는 고통을 상징합니다. 출애 12,8 에는 쓴나물이 나오는데 이 쓴 나물은 이스라엘 민족이 에집트에서 받은 고난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고난의 잔을 스스로 자청해서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일상 생활에서 오는 고통을 피하려고 하지 말고 이 십자가를 질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쓴 나물은 육 즉 죄를 상징합니다.) 이 쓴나물과 쓸개는 고통과 박해를 상징합니다.
35 군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달고 나서 주사위를 던져 그분의 옷을 나누어 가지고는(시편 22,18 의 말씀이 예수님에게 성취되십니다.)
36 거기 앉아 그분을 지켰다.
37 그분 머리 윗쪽에 죄목을 붙여 놓았는데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적혀 있었다.
38 예수와 함께 두 강도도 십자가형에 처했는데 하나는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달았다.
39 지나가던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시편 22,8) 예수를 모독했다.
40 "성전을 헐어 버리고 사흘 안에 세우겠다는 자야, 네가 하느님 아들이거든 네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설명: 솔로몬 성전이나 성당의 건물을 말하지만 심안차원에서는 예수님의 몸 안에 하느님이 계시므로 예수님의 몸이 성전입니다. 요한복음 차원에서는 즉 영차원에서는 말씀 안에 하느님이 계시므로 말씀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계시차원에서는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말씀으로 성령으로 우리들 안에 계시면 우리들의 몸이 교회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이며, 성전이 됩니다. 즉 예수님의 몸이 성전이므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삼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시는 말씀이나, 바리사이들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41 대제관들도 율사들과 원로들과 함께 놀렸다.
42 "남들을 구했지만 자신은 못 구하나보구나. 이스라엘 왕이렸다? 냉큼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을 터인데.
43 하느님을 신뢰했으렸다? 부디 지금 구해 주십사고 하시지(시편 22.7).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했으니까."
44 마찬가지로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도 그분을 모욕했다.
설명: 우리들도 우리들의 입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레마''가 나올 때는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안 나오나, 사탄이 우리들 안에서 활동할 때는 우리들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 마음과 그 영혼에 큰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으므로,
말씀화가 되도록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그 말씀으로 살아 가도록 힘을 쓰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