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 수녀님이 투병을 마치며 쓴 12월의 편지 중에서…

2011. 1. 15. 오후 7:32:31

글자
 

해인 수녀님이 투병을 마치며 쓴 12월의 편지 중에서…


오늘 이 시간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 이며

'어제 죽어간 어떤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 임을 새롭게 기억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상의 여정을 다 마치는 그 날까지
이왕이면 행복한 순례자가 되고 싶다고 작정하고 나니
아픈 중에도 금방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음엔 담백하고 잔잔한 기쁨과 환희가 물안개처럼 피어올라
전보다 더 웃고 다니는 내게 동료들은 무에 그리 좋으냐고 되묻곤 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답으로 들려주던 평범하지만
새로운 행복의 작은 비결이랄까요.
어쨌든 요즘 들어 특별히 노력하는 것 중 몇 가지를 적어봅니다.

첫째,

무엇을 달라는 청원기도보다는 이미 받은 것에 대한
감사기도를 더 많이 하려 합니다.
그러면 감사할 일들이 갈수록 더 많아지고
나보다 더 아프고 힘든 사람들의 모습까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몸과 마음으로 괴로움을 겪는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들어주는 마음의 여유도 생겨서 가끔은 위로의 편지를 쓰고
양로원과 교도소를 방문하기도 하지요.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어 그렇게까지 큰 도움을 주진 못할지라도
마음을 읽어주는 작은 위로자가 되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눔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

늘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일들을 기적처럼 놀라워하며
감탄하는 연습을 자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삶이 매 순간마다 축제의 장으로 열리는 느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신발을 신는 것도, 떠오르는 태양을 다시 보는 것도,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것도 얼마나 큰 감동인지 모릅니다.
수녀원 복도나 마당을 겨우 거닐다가 뒷산이나
바닷가 산책을 나갈 수 있을 적엔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길에서 만나는 모르는 이웃조차 왜 다들 그리 정겹게 여겨지는지!
최근에 읽은 함민복 시인의 산문집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를
화두처럼 뇌며 만나는 이들에게 마다 '반가워요.
다 저의 일가친척 되시는군요!' 하는 사랑의 인사를 마음으로 건넵니다.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고 표현한
정현종 시인의 시집에서 발견한 '꽃 시간' 이란 예쁜 단어도 떠올리며
그래 나는 걸음걸음 희망의 꽃 시간을 만들어야 해.' 다짐합니다.

셋째,

자신의 실수나 약점을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여유를 지니도록 애씁니다.
부탁받은 일들을 깜박 잊어버리고,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가고,
다른 이의 신발을 내 것으로 착각해 한동안 신고 다니던
나를 오히려 웃음으로 이해해 준 식구들을 고마워하며
나도 다른 이의 실수를 용서하는 아량을 배웁니다.

넷째, 속상하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때는 흥분하기보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어질고 순한 마음을 지니려 애씁니다.

인간관계가 힘들어질 적엔 '언젠가는 영원 속으로
사라질 순례자가 대체 이해 못 할 일은 무엇이며
용서 못 할 일은 무엇이냐'고 얼른 마음을 바꾸면
어둡던 마음에도 밝고 넓은 평화가 찾아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