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모신심운동과 레지오 마리애

2009. 8. 15. 오전 10:46:28

글자
註: 이 글은 월간 레지오 마리애 09. 8월호에 게재된 대구대교구 사목기획실장 전 광진 엘마노 신부님의 글 "한국의 성모신심운동" 중 서문과 레지오 마리애 관련 부분을 移記한 것입니다.
 
가톨릭 신앙은 하느님을 천지의 창조주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으며, 성령을 같은 하느님으로 믿는 것이다. 그 신앙을 실현하는 것은 말씀과 성찬을 통해 하느님과 하나되어 사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주일미사에 참례하여 말씀을 듣고 성체를 모시는 것,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세계 제1차 대전(1914-1918) 이 끝난 직후 비참한 파멸을 겪은 유럽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을 깊이 반성하면서 하느님을 다시 찾기 시작하였다. 신앙심이 강했던 사람들은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신앙을 실현하는 방식을 찾게 되었는데,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다양한 신심운동이었다.  성모님을 삶의 모범으로 삼는 성모신심운동, 성서를 삶의 중심으로 삼는 성서모임, 평신도사도직을 살려는 꾸르실료, 성령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려는 성령운동 등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성모님을 삶의 모범으로 삼는 성모신심운동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레지오 마리애 Legio Mariae
1921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경건한 평신도 신앙인이었던 프랭크 더프(1889-1980)와 15명의 여성신자들은 '자비의 모후회' 라는 모임을 결성해서 매주 병원을 방문하고 말기암환자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했는데 이 모임이 레지오 마리애의 모체가 되었다. 
가난한 암환자들을 방문하기 위해 모인 이 모임은 군인과 같은 굳건함과 용맹성을 가지기 위해 옛 로마군대를 본떠서 마리아의 군대 Legio Mariae라는 이름을 택하였고 세계로 전파되었는데, 전세계 평신도사도직단체 가운데 가장 큰 단체로 발전하였다.
 
한국의 레지오 마리애는 1953년 당시 광주대교구장 玄 하롤드 대주교의 지도로 전남 목포의 산정동본당과 경동본당에서 시작해서 착실한 성장을 거듭하여 한국의 평신도사도직 단체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성장하였다.  그 뒤로 우리나라에 성서모임, 꾸르실료, 포콜라레, 성모의 기사회, 성령운동과 같은 신심운동들이 속속 유입되어 신자들의 적성과 취향에 따라 자리 잡게 되었다.
한국의 레지오 마리애가 잡음없이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변칙을 철저히 배격하고 교본중심의 원칙적 운영으로 혼선을 미연에 막고, 이론적인 측면보다는 실천을 강조해 신앙과 실천을 함께 하고자 하는 신자들의 요구에 잘 부응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금전적 봉사를 철저히 금지시키고 기도와 노력봉사만을 허용한 점도 금전관계로 인한 잡음과 대립을 미연에 방지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언제나 주교와 본당신부의 지시를 받아 운영함으로써 본당의 일치와 화합을 저해하지 않고 선교와 사목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특히 입교권유와 냉담자 회두, 각종 봉사활동 등에 큰 성과를 거둠으로써 한국교회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신앙은 믿는 것만도 아니고 아는 것 만도 아니라 생활에서 실천되고 증거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신앙을 어떻게 우리생활에 실천할 것인가? 여기에 기도하고, 봉사하고, 선교하는 레지오 마리애는 해답을 주었다. 하지만 최근 세상변화에 따른 적응문제, 소공동체 운동과의 관계설정 문제, 젊은 단원 확보문제, 재교육문제 등으로 레지오 마리애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가 성모님의 인내와 끈기를 본받아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교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계속 해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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