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의 첫날밤
내가 신부가되어(1932)
지금의 중림동 성당(약현성당)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사제들 사회에서 보좌신부로 가는 것을 (시집간다)고 하고...
본당 신부를 (시에미)라고 부른다.
휴가를 끝내고
1933년 1월 10일 시집으로 가야겠는데
데리러 오는 이가 한 살람도 없었다
다른 친구신부들은 회장들이 다 모시고
동서남북으로 재 갈길을 찾아 나섰는데 말이다
( 아' 첫날부터 재수 더럽구나)
혼자 중얼거렸다
거의 저녁이 다 되었을 무렵
키가 장승같이 크고 바짝 마른 영감님이 문을 여밀었다
"신부님이 오 요셉 신부십니까?"
" 네 전데요!"
"저 미안한 말씀이지만 본당신부님이 종부 좀 가시랍니다."
"네, 참 딱하기는 하오나 본당 신부님의 명령이시니...."
그 영감님은 말끝을 흐렸다
" 과연 재수 한 번 더럽게 됐구나!
애기신부에게 종부서ㅓㅇ사를 가라니!
내 첫 부임지가 병자의 집이라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습니다 가십시다."
그때는 서울 명동, 중림동, 혜와동(백동)
이렇게 세 곳에만 성당이 있었다.
가는 곳은 영등포였다.
전차를 타고 내려서는 골목골목으로 들어간다
석탄 쌓인 옆 땅굴길을 지나
기어서 들어가니 땅굴 집이었다
부엌도 새까맣고, 방문도, 방바닥도, 이불도 석탄빛이다
콜록콕록 기침하는 환자의 얼굴까지 새까맣다
(아이구 맙소사)
폐병 3기에 눈만 감으면 송장이다.
35년 동안 첫 고해도, 첫 영성체도 견진도 받지 않았다
물론 혼배도 없이 그냥저냥 만나서 사는 거다
이런 판국에 죽을 병이 들은 것이다
애송이 사제가 이런 여러 성사를
한꺼번에 한 자리에서 어떻게 하나?...
걱정이 태산같고 눈앞이 캄캄했다.
(애라, 이왕 내친 걸음이다!)
이를 악물었다
집을 안내했던 회장님은 어느사이에 나를 혼자 두고 가버렸다.
"영감님, 고해성사를 보십시요."
"뭐요?'
"고해 말예요!"
"난, 그런 거 몰라요!"
난감했지만 휘어 잡고 해내고 말리라..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다짐을 하고
내가 말하는 것에
"예" 또는 "아니요" 라고만 대답하라고 했다.
일일이 물어가며 해야 하는 것이다
(젠장! 죄는 지가 짓고, 고백은 내가하는 팔자로군!)
마음안 타령이 절로 나왔다
폐병 3기라서 입에다 구ㅣ를 바짝 갖다 대고
겨우 무슨 소리이지 짐작해 가는 고해성사였다.
그나마 (울걱)할 때면 요강을 갖다 대고 각혈을
주먹덩이만큼씩 받아내야만 했다
어디 그뿐인가, 얼굴, 입, 수염에 묻은
새빨간 피를 내 흰 손수건으로 닦아줘 가며 주는 고해성사였다.
사제의 첫 걸음이 이렇게 재수가 좋은 첫 걸음인가...
아니면 기구한 운명의 첫 발자국인가...
이 두가지가 다 어우러졌다.
거의 한 시간이 넘도록 내가 그 병자에게 고백을 한 셈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처음으로 마직막임 노자 성체로 첫 영성체를 해주고 나니
내 등에는 식은 땀이 흘렀다
혼배성사기 유효하도록 바로잡아 주고 ,이어 병자 성사를 주었다.
마직막으로 임종전 대사
즉 그냥 죽어도 연옥에 안들리고 바로 천국으로 가라는
전대사를 주고... 강복을 주고나서...
그 해골같던 얼굴에서 주루룩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내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앞자락까지 흘러 내려 옷을 적셧다.
"신부님, 나 좋아요, 참 즐거워요!
내가 먼저 천당엘 가요.
가서 우리 신부님 자리 내 옆에 준비해 놓고 기다릴께요
그럼 신부님, 다시 천당에서 만나....."
말끝을 흐리더니 내 손을 꼭 쥔채
한 많은 이 찬류 세상을 떠나갔다.
그의 장래준비를
영등포 공소 최 회장님에게 부탁하고는
(시집)으로 저녁때 들어왔다.
(시집) 첫날밤이었다.
이불을 덮고 드러누웠다
김 바오로의 해골 같은 앙상한 얼굴이 아롱거린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겨우 27살 난 애기신부로서 그럴만도 했지만 우습기만 하다.
다시 누워 신학교에서 배운 성사를
그것도 한 자리에서 대 여섯 가지나 잘 햇는지
손가락을 곱아가며 이리저리 뒤치닥거리며 더듬어 보니
다행이 모든 성사를, 오로지 책으로만 배운 것을
난생 처음 적응하는데 성공을 한 셈이었다.
한숨 (후....)
내쉬다가 문득 한 생각이 더올랐다
처음이자 마직막으로 고해 성사를 받는 바오로에게
너무 오랜 시간에 걸처 성사를 주다보니
그만 끝에 보속을 주는 것을 잊어버렷던 것이다.
(젠장)! 죄는 지가 짓고 보속도 내가 해야 되는군!)
속으로 몇마디 하고는 내가 보속을 해 주었다!
만약 그 시각에 내가 없었더라면
김 바오로의 영혼은 어찌 되었을까?
생각하면 (시집)에서 첫날밤의 등불을 밝힐 때
(그래... 나는 다시 태어나도 또다시 사제의 길을 가련다)고
내 사재 생활의 모토를 굳혔다
그의 눈물, 내 눈물이 교차되던 그 찰나에...
나는 사제가 된 행복감을 느꼈다.
{ 다시 태어나도 사제의길을 } 중에서
- 고 오기선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