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믿음의 최고봉입니다

2012. 6. 5. 오전 7: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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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믿음의 최고봉입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재물, 명예, 권력 등을 향한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우리를 실의에 빠지게 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나는 새를 보라. … 들의 백합꽃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욕망에 허덕이지 말고 하늘을 우러르는 마음으로 넓은 시야 안에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주변에 물질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온갖 시련을 다 겪으면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렇게 성공하기까지 그 과정에서 수많은 배신과 누명과 속임과 불이익을 준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오늘 날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는 인격이 파괴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성이 메말라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거에 내게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원수 갚겠다고 이를 갈고 한을 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하려는 목적 자체가 나에게 모욕주고 억울하게 했던 사람들에게 성공한 모습을 보임으로 복수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복수극이 나오고 인간성 파괴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처로 얼룩진 세상에서 용서는 그리스도인이 부딪치는 가장 본질적이고도 민감한 문제입니다. 용서에 관하여 우리가 제 삼자에게 먼저 용서하라고 이야기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각자가 그러한 일에 당사자가 되어보면 '내가 먼저' 용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압니다. 우리는 용서하고 원한과 복수심을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누구를 용서할 만큼의 마음의 크기가 없습니다. 속마음이 작아서 조그만 것도 용서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늘 작은 문제 가지고 싸우고 원망하고 보복하고 복수하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것을 뛰어넘으려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일입니다. 그리고 용서의 기쁨이 있어야 누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능력이 있어서 누굴 용서하고 용납하고 살아가겠습니까? 그럼에도 인간이 누굴 용서하고 용납하며 살아가는 것은 내가 진정으로 용서받은 은혜가 있고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마술이 아니며, 마술보다 강한 힘이 있습니다. 용서는 믿음의 최고봉입니다. 용서받지 못한 사람은 용서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상처받으며 어렵게 성공한 사람은 그동안 당한 만큼의 권력을 아랫사람들에게 휘두르기 쉽습니다. 남에게 상처준 사람, 나를 억울하게 만든 사람, 나에게 해를 입힌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 44> 형제에게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 22>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며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라 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면서 하느님의 용서하심을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자의 믿음은 서서히 메말라갑니다. 만 달란트의 채무를 탕감 받은 우리가 백 데라니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하는 믿음은 서서히 무감각해지는 것입니다. 믿음의 깊이는 용서해야 온전함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용서해야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 복이 오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원수에게 핍박받고 손해를 보더라도 기꺼이 감수하는 겁니다. 우리 삶에도 그런 용서와 화해가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용서하는 기쁨을 체험하기 바랍니다. 거기에 행복한 삶이 있습니다. -주님의 향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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