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체험, 그 종교적 감동
1. 얼마 전, <박노해의 시에서 붓다의 속울음을 듣는다>라는 법인스님
(조계종 교육부장)의 글을 읽었습니다.
스님은 박노해 시인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 실린 300여
편의 시를 읽은 후, 선별한 세 편의 시를 통해 자신이 느낀 종교적 감동을
아래와 같이 전해줍니다.
⑴ "그가 밥을 구하러 가네/ 빈 그릇 하나 들고/ 한 집/ 두 집/ 세 집/
밥을 얻으러 가네/ 일곱 집을 돌아도/ 밥그릇이 절반도 차지 않을 때/
그 사람/ 여덟 번째 집에 가지 않고 발걸음을 돌리네/ 일곱 집이나
돌았어도/ 음식이 부족하다면/ 그만큼 사람들이 먹고살기 어렵기에/
그 사람/ 더 이상 밥을 비는 일을 멈추고/ 나무 아래 홀로 앉아 반 그릇
밥을 꼭꼭/ 눈물로 씹으며 사람의 배고픔을 느끼네."
<구도자의 밥> 탁발의 정신은 본래 걸식을 통해 무소유 정신을 구현하며
겸손과 하심(下心)의 마음을 간직하고, 인욕의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는 탁발한 반그릇의 밥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배고픔과 핍박, 나아가 그들의 눈물과 염원까지를 온몸으로담아내고 있습니다.
⑵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새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그 겨울의 시> 비록 많이 배우지 못한 시골의 우리 할머니들이 었지만 생명에
대한 그 안쓰러움에 차마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는 대자대비한 마음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합니다.
⑶ "......내 나이 팔십이 넘으니 오늘에야/ 내 숨은 죄가 보이기
시작하는구나/......다른 사람들이 단속반에 끌려가 벌금을 물고/ 일거리를
못 얻어 힘없이 돌아설 때도/ 민주화운동 하던 다른 어머니 아들딸들은/ 정권
교체가 돼서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도/사형을 받고도 몸 성히 살아서 돌아온/
불쌍하고 장한 내 새끼 내 새끼 하면서/ 나는 바보처럼 감사기도만 바치고
살았구나/ 나는 감사한 죄를 짓고 살았구나."
<감사한 죄> 시인의 팔순 어머니는 젊어서 홀몸이 되어 온갖 노동과 가난으로
살아왔지만, 어려움속에서 도움을 주는 이웃이 많았음에, 자식들이 정의롭게
늘 살아가고 있음에 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살아왔노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착하고 착한 팔순의 노모가 새벽녘에 참회의 흐느낌을
토해냅니다.
연유는 다름 아닌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만족과
감사의 기도만 드리고 산 것이 크고 큰 죄랍니다.
2. 저도 이 시집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제 삶을 반성해야 했습니다.
성령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성령 체험은 아마 강렬하고 뜨겁게 전해지는 '종교적 감동'과 관계할 것입니다.
너무 뜨겁고 강렬해서 우리 삶을 온통 뿌리채 뒤흔들어버리는(걸림돌) 그러한
영적체험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종교적 감동(성령)을 받고 제자들이 회개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감동을 전하기 위해 세상으로 향합니다.
십자가를 재현한 스테파노의 죽음 때문에 종교적 감동(성령)을 받은 사울은
회개하고, 그 감동을 전하기 위해 세상으로 뛰어 나갑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깊은 감동을 받고, 십자가의
삶을 재현하는 사람들입니다.
종교적 감동을 느낄 수 없는 우리 시대, 곧 종교인들이나 세상사람들이나 별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입니다.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이하여 십자가가 우리에게 깊은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간구합시다.
-맹제영 로마노 신부 / 의정부교구 성직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