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갚사오리 내 영혼이

2012. 5. 21. 오전 6: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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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갚사오리 내 영혼이 부활의 신비는 생명의 신비이며 사랑의 신비입니다. 지난주일 복음서에서 우리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서의 핵심은 이비유를 사랑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마치 죽은 나무와 다름없음을 깨닫는 가운데 사랑안에 머무를 때에만 신앙의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충직한 개가 물에 빠진 주인을 구했다는 옛 이 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떠돌이 개가 있었습니다. 우연히 그 개를 알게 되어 돌보아주기로 마음먹고 '은총이'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신설본당에서 외로움을 2년 정도 함께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은총이'하고 지내면서 배운 것은 마음에 상처를 입은 개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보살피고 산책을 같이하면서 오랜 시간 기다림 속에 어느 날 자기가 사랑받는 존재임을 '은총이' 개 스스로 본능적으로 느꼈을 때, 그 개는 마음이 안정이 되고 그때서야 짖기 시작하고 활기 차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이 동물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알고 주인을 대합니다. 하물며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자는 그 사랑을 기워 갚기 위해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우리를 위한 그 크신 사랑을 위해 수많은 성인성녀를 비롯 아우슈비츠에서의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 수녀가 보여주신 사랑의 실천이이를 증명합니다. 요한1서 말씀은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사랑하는 이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나 하느님을 안다고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전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도 서로 사랑하라고 그리고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종이 아닌 친구로 불러주십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들려주던 유언이기도 합니다. 유언은 마지막 말로 오늘날 살아있는 우리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값진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그중에 우리는 친구로 사귀어 그를 위해 목숨을 내던질 정도의 사람이 몇이 있는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역으로 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이 삶으로 직접 보여주신 것처럼 다른 이들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목숨까지 내놓는 것입니다. 삶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숙제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사랑은 늘 한계를 지니고 흔들림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으로부터 시작한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사랑은 참으로 그리스도인의 혼이며 생명입니다. 사랑은 결코 관념이 아닙니다. 사랑은 구체적인 실천과 행동을 요구합니다. 노연호 마티아 신부(고읍동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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