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용서

2016. 11. 19. 오전 7: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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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용서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용서만큼 힘든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나에게 불이익이나 언짢은 감정을 가져다준 이웃 동료들, 내 자신 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내 안의 부족함, 개개인의 성실에도 불구하고 알게 모르게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구조나 제도들에 대해 맘 편히 용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특히 자신이 생각하기에 상식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느껴졌을 때에는 더더욱 용서가 불가능합니다. 행여 용서했다고 할지라도 실은 그저 묻어두고 무관심 하는 것으로서 용서를 대신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웃이 내게 끼친 잘못에 대해서는 가끔 자신의 도량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벌을 감면해 주는 듯한 제스츄어를 쓰지만 아직 마음은 굳을 대로 굳어져 진실된 용서는 아닐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어쩌다 자비를 베푸는 듯한 용서는 진정한 용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용서란 근본적으로 잘못을 행한 이를 새롭게 일어서게 하는 힘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실상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는 일만큼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용서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용서하는 일에 그리도 서툰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아마 나 자신, 우리 자신이 각자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혹시 의인으로 착각하고 있는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실상 의인은 제대로 용서할 줄을 모릅니다. 사람이 너그러이 사면을 내리는 입장이 되면 점점 자신을 의인으로 치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한 사람은 용서가 자기의 힘으로 베푸는 것이 아닌 서로 나누는 것임을 압니다. 제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로 주어지는 것임을 알게 되면, 용서하는 이나 용서받는 이나 같은 화해의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자신이 늘 용서받아야할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실상 내게 피해를 준 어떤 행위도 용서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아니 용서하는 주체는 나 자신이 아님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잃었던 아들의 비유처럼 아들이 잘못을 고백하기 전부터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던 아버지의 품이야말로 아들을 뉘우치게 만들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들이 새로운 용기를 얻어 새 삶을 시작하게 만든 창조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용서는 아들을 뉘우치는 척하게 하지 않고 깊이 통회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생각합시다. -이상희 마르띠노 신부(용현동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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