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시대착오?
쓰기 싫은 이름들이지만, 이 이름들을 나란히 적어본다.
박근혜, 김정은, 트럼프.하아... 우리나라와 남북의 통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름들인데, 하나같이 모자라 보인다.
희망은 사라지게 하고 걱정만 앞서게 하는 이름들이다.
답답하고 참담함이 진해져만 가는 오늘, 우리의 전례력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가리킨다.
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데 어째서 왕이라는 시대착오적인 개념을 아직도
고집하느냐는 생각도 있겠지만, 이렇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권력을 갖기 위해 온갖 술수로 왕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모습으로 찾아온 왕이라면...
스스로 인정받기 위해 나팔을 불어대는 왕이 아니라,
진정한 왕으로서 백성들 사이에 살기 위해 오히려 그 신분을 비밀에 부쳐 두었던
왕이라면... 뭐든지 지시하고 명령하며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는 왕이 아니라,
오히려 봉사하는 왕이라면...
자신이 옳고 똑똑하니 모두 내 말을 들으라 강요하는 왕이 아니라,
백성의 발을 씻어주는 왕이라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왕이 아니라,
우리에게 천국을 알려주기 위해 머리 둘 곳조차 없이 살다가 결국은
십자가의 죽음까지 선택한 왕이라면...
자신의 실수 앞에서 이런저런 말을 궁리하며 도망갈 길을 찾는 왕이 아니라,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선택할 왕이라면...
지난 연중시기 전체를 통해 우리가 묵상하고 따랐던 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왕이시다.
왕이란 존재가 먼 옛날부터 기름 부어 세운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라 하여도,
그리스도 왕과 저 위의 이름들을 비교해보라.
누가 더 권위적인지.
누가 더 시대착오적인지.
누가 지금의 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데 더 적합하고 잘 어울리는지.
저 위의 이름들은 통일과도, 정의와도, 사랑과도 멀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왕이시고 나는 그 나라의 아무 권한 없는 백성이어도
하나 억울하지 않다.
하느님으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가 왕이시라는 것 때문에
전혀 답답하지도 고리타분하지도 않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
라는 바오로 사도의 둘째 독서 말씀에 더 희망을 걸게 된다.
현재의 그 어떤 권력과 이름보다 훨씬 더 돋보이시는 희망이시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때 저를 기억해 주시"도록
그분의 백성으로서 대한민국을 위해, 또 남북의 통일을 위해
오늘도 기도하고 사랑하련다.
-권찬길 세례자 요한 신부(금촌2동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