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2016. 11. 7. 오전 6: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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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광고문구입니다. 그런데 그 문구만큼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과 자비는 늘 우리가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을 초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리 자캐오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죄인이었습니다. 자캐오 역시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캐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예수님 곁에 다가가지도 못합니다. 그가 기대한 것은, 먼발치에서나마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루카19,3)’ 보는 것이었습니다. 운이 좋으면 좀 자세히 그분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운이 나쁘면 그냥 형체만이라도 볼 수 있겠다고 기대하며 나무에 올랐겠지요. 하지만 그 후 자캐오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그 많은 군중 속을 뚫고 자타공인 죄인인 자기에게 다가오셔서 손을 내밀며 내려오라고 말을 건네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은 말도 섞길 꺼려하는 자신의 집에서 하루를 머물겠다고 하십니다. 자캐오가 기대한 것은 그저 멀리서나마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보는 것이었으나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다가가시고, 말을 건네시고, 함께 머물러주십니다. 자캐오가 상상한 것, 그 이상의 이상을 예수님께서는 행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를 우리의 인간적인 한계 안에 가두고자 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뭔가 잘 해야만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실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내가 이런 죄를 지었으니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날 싫어하실 거야, 나에게 벌을 주시려고 준비 중이신지도 모르지’하며 성당에 가기를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제1독서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은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그들의 죄를 보아 넘겨'주시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고,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인간인 만큼 인간적인 사고의 범위 내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상상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늘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용기를 가지고 나무에 오르는 일입니다. 우리가 상상하기에 도저히 용서될 것 같지 않은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동안 남을 위해 희생하거나 선한 일을 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여겨지더라도 자캐오가 나무에 오르듯 예수님을 향해 우리가 한 걸음만 내딛는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천 걸음, 만 걸음을 다가와 우리와 함께 머물러 주실 것입니다. -양현우 바오로 신부(해외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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