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팔을 걷어붙이고 세상에 나아가는 기도를…
요즈음 각 나라마다 지진이나 태풍으로 피해가 크다는 소식을 자주 접합니다.
우리나라도 지진과 태풍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자연재해보다 전쟁에 의한 피해가 더욱 큽니다.
난민을 잠정적 테러범이라고 거리를 두는 분위기에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난민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합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수해를 입은 이들과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온갖 조롱으로 원색적인 싸움을 하려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일들 중에서 특히, 이번 태풍 후에 저는
'어떤 기도를 했어야 했는가?' 스스로 묻게 되었습니다.
태풍이 안 오도록? 아니면 막을 수 없으니 피해를 줄여 달라고?
지붕에 올라가서 두 팔을 벌리고 태풍을 치워 달라고 해야 하나?
태풍이 지나가면 '아무 일 없어서 다행입니다.'라며 감사기도 하면 끝인가? 하고
말입니다.
이러한 기도가 과연 마지막 때를 기다리는 이의 기도일까?
의구심이 드는 것이지요.
제1독서에서 모세의 두 팔은 하느님의 힘,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직접 싸우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태풍에 나가서 두 팔을 벌려 기도한다고 나의 두 팔이 하느님의 힘을
드러내는 행위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뛰어내려보시오.'
(루카 4,9) 하고 유혹했던 악마의 마음을 드러낼 뿐이지요.
나의 두 팔은 그 자체가 하느님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기도는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을 드러내는 도구로써
쓰이도록 내어드리는 다짐이 되어야 합니다.
힘에 부쳐 포기하고 싶어질 때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하시며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들고 계십니다.
과부처럼 하느님의 힘(정의)이, 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도록 청해야 하며,
바로 나의 청이 들어질 수 있도록 온갖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수고는 바로 제2독서의 바오로 사도처럼 세상에 복음(성경)을 전하는 것에서
시작되며, 결국 복음을 듣는 모든 이들이
"온갖 선행을 할 능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도록" 포기하지 않고 전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느님의 자비하심과는 반대로 흘러가면서 그것이 정의인 양 반대자들을
향해 총을 겨눕니다.
그 속에서 입에 저주를 담고, 두 손에 폭력을 담는 이들은 하느님의 기적만을 바라고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이들보다 그들을 짓누르는
권력과 돈을 쫓아갑니다.
하지만 믿는 우리는 마지막 때까지 믿음을 지키며 그들에게 "선을 행하는 능력"이
생기도록 끊임없이 가르치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가 드러날 수 있도록 나의 두 팔을 기꺼이 주님께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하느님의 도구로서 기도해야 한다면 이렇게 기도하려 합니다.
"불의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또한 세상에 전쟁과 자연재해로 고통 받는 이들, 나약하고 쓰러지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주세요."가 아니라,
이젠 '나'의 기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가야하겠습니다.
-홍석윤 (베드로) 신부(제주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