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을 했을 뿐

2016. 10. 13. 오전 5: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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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예전 같지 않다. 이젠 훈련병들 속에서 복사나 독서자를 찾기도, 해설자를 찾기도 어렵다. 그나마 경험자가 있어서 다시 신앙훈련을 시켜볼까 하고 얼마나 기억을 하는지 물어보면 아무 것도 기억을 못하고, 독서를 시키면 무슨 난독 환자처럼 독서를 한다. 속은 뒤집어지지만 그래도 꾹 참고 시켜본다. 미사 해설은 신교대에서 세례를 받은 한 녀석을 휴가증으로 꼬여서 매주 나오게 했다. 그래도 휴가증의 약발이 있어 매주 나와서 성실히 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 녀석 제대할 때 쯤 되면 또 누구를 점찍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예전에는 훈련병들과 미사 하는 것이 즐거웠다. 간식 하나에도 대답 잘하고 또렷이 쳐다보는 모습에 무엇인가 채워주어야 할 책임감과 의무감이 막 생겼다. 그래서 '내 봉급은 공금이요.'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먹이고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나이 50살이 넘었다. 힘에 부친다. 아버지뻘 되는 나의 말이 영 공감이 안 되는지 반응도 없고, 웃지도 않는다. 하도 궁금해서 갓 임관한 초임 신부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제 난 군종신부로서 병사들과의 약발이 다 된 것 같다. 무늬만 군종신부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오늘도 나는 그들의 안색을 살피고 표정을 살피고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 살핀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감 떨어진 군종신부, 무늬만 군종신부가 되는 것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 교회가 하지 않는 것이고, 교회가 하지 않는 것은 바로 내가 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나 자신의 역할과 소임을 다한다. 탓하고 핑계 대며 주저앉기보다는 그저 묵묵히 내 할 일을 다 하는 종의 모습을 견지하고 싶다. 오늘 복음처럼 먼 훗날 이렇게 고백하고 싶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묵묵한 겸손과 순명의 태도로 무장한 실천적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현광섭 프란치스코 신부(군종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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