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

2016. 10. 3. 오전 7: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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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남이가

 

 

잘 아는 부산교구 신부와 통화를 하다가 생각이 나는 몇몇 부산교구 신부들의 근황을 물었습니다. 통화하던 신부가 "어찌 그렇게 부산교구 신부들을 잘 아십니까?"라고 제게 물었습니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가 남이가"였습니다. '우리가 남이가'란 말은 왠지 정겹고 가슴 든든히 내 편이 되어주며 늘 함께 하는 구속력의 안정감을 전해주고 힘이 나는 고마운 말인 듯 싶습니다. 이러한 좋은 말이 정치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우리끼리 똘똘 뭉치자는 부정적 사용으로 이슈가 되기도 하지요. 오늘 복음에서 죽은 부자가 아브라함 품 안에 있는 라자로를 보고 그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자신의 혀를 식히게 해 주십사 아브라함에게 청합니다. 불길의 고초가 너무도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명확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우리와 너희 사이에 갈 수도 올 수도 없다." 부자는 아브라함을 "(할)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우리가 남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당신의 후손이고 당신은 저의 선조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한 가족이고 그러므로 저는 당신 편이고 당신 또한 제 편이십니다. 그러니 제 청을 들어주시고 당신의 높으신 권한으로 저를 좀 봐 주십시오.' 라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우리와 너희"라는 명확한 인칭대명사의 구분을 통해서 '우리는 남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하느님 편에 사는 사람과 세상 편에 사는 사람은 죽음 이후에 명확하게 갈라지게 됩니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 어정쩡한 신앙으로는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 편에 함께 하지 못합니다. 하느님과 남남이 된다는 것은 피조물인 우리 인간에게 최악의 형벌이 될 것입니다 -이승엽 미카엘 신부(송산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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