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을 바라보는 시선
의정부교도소에 고해 성사를 주기 위해 처음 방문했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소지품을 모두 내고 교도관을 따라 여려 겹의 철문을 지나고,
숨 막힐 듯 무거운 공간으로 들어서던 그 순간은 마치 제가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등 뒤로 철문이 철컥 닫힐 때의 싸늘함의 기억은 여전히 차갑게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들어가서 재소자들에게 면담 고해성사를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생각과 그들에게 내가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두려움과 걱정을 한가득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고해성사 때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아주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무섭고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아프고 약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사람보다 열악한 처지에 처해 있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아프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맞닥뜨린 어떤 순간을 참지 못해 범죄자가 된 것뿐,
저와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그분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저에게 일어났다면, 충분히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외국의 사례에서지만 좋은(?) 교도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개신교에서 설립한 민간 교도소가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곳의 재소자들은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곳에서 생활을 하기도 하고,
가족들과 함께 지내기도 합니다.
자율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지내보기도 하고, 운동과 문화생활을 즐기기도
합니다.
그것은 죄인을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아프고 약한 사람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회복시키고 교육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죄인들에게 그렇게 잘 대해줘도 되느냐고 하지만,
이런 방식의 교도소를 거쳐간 사람들의 재범률은 벌을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일반 교도소를 거친 사람들의 십분의 일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그 대답을
대신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이 죄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죄인을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아프고 약한 사람"으로 바라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살리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들에게 다가가
만나고 치유하며 함께하셨습니다.
큰 죄를 지은 자녀일지라도 당신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버리지 않고 돌봐주시는
부모님처럼,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끌어안으셨습니다.
죄인을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나도 언제든 아프고 약해질 수 있고 그래서 언제든 죄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깨닫고 닮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들에게 다가가 함께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진원 십자가의바오로 신부(교하 협력사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