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영성 생활을 평가하는 것
사실 우리는 영성 생활의 진보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단순히 성숙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모두 성덕에로 불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의 완전성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정도 완전성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으로 오히려 자만심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채프면 신부는
'하느님께서 그 순간에 허락하시는 것은 단순하게 머무는 것'이기
�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영적인 진보는 하느님의 손에 내맡겨야 합니다.
실제로 그분께서는 우리를 이끄시고, 당신을 신뢰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에 따르면, 우리가 영성 생활의 어떤 지점에
도달하게 되면 즉 단조로움을 겪으면서도 충실하게 지속하면,
단조로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보하지 않는 것은 퇴보하는 것이고, 퇴보하지 않는 것은 진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성 생활에는 커다란 내적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베르나노스의 마지막 권고를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 에서
인용하겠습니다.
"우리가 책에서 읽은 바로는, 마치 대장장이가 철의 강도를
측정하기 위해 철 막대기를 사용하듯이 성인들을 시험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구두 제화공이 가죽의 유연성을 평가하기 위해
자신의 손바닥 사이에 가죽 껍질을 넣고 시험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매여, 자매 스스로를 그분의 손이 다루기 좋고
부드러운 것이 되도록 하십시오."
-내적인 삶의 발견(익명의 성 베네딕도회 수사 지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