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철학은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동물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주제에 대해 답을 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에 대해 철학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습니다.
그중에서 중국 전국시대에 활동했던 맹자(孟子. BC 372-289)는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근본적인 특성을 '차마 참지 못하는 마음'인 불인인지심
(不忍人之心)이라고 보았습니다.
불인인지심은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불행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는 마음'
입니다.
하지만 동물에게는 상대를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배고픔을 면하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동물을 그냥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최소한의 도의(道義)나 양심을 지키려고 하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연민의 정이나 자비심을 갖고 대합니다.
인간의 착한 본성은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과 불행을
보게 되면 나타납니다.
그래서 맹자는 '불인인지심'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보면, 바로 맹자가 이야기한 '불인인지심'의 의미와
일맥상통합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불행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는 착한 심성을
갖고 있어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지금 모습을 보면, 과연 우리가 동물과 다를 바가 무엇일까?
심각하게 고민하게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어둡고 탁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은
무슨 이유인지 도저히 그 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점점 더 이웃의 고통과 아픔에 무관심하기 시작했고,
불의를 보고도 나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는 일이라면 나서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일인 듯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러한 때에 과연 불인인지심을 가진 '착한 사람'은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의문마저
들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맹자가 말한 인간의 착한 본성은 어쩌면 정답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에 반해서 '인간은 본성적으로 악하다.'라고 말했던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인 순자(荀子. BC 300-230)의 말이 더 맞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어떤 신앙인이 되어야 할까요?
이 현실의 답답함을 나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식의 논리로 포기하고
있거나,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해야 합니까?
아니면 현실적으로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렵다고 인정해야 합니까?
어떤 답이 정답일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제1독서인 신명기의 말씀을 보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계명은 너희에게 힘든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늘에 있지도 않다.
또 그것은 바다 건너편에 있지도 않다.
사실 그 말씀은 너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
너희의 입과 너희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신명 30,11-14 참조)."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말씀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타인의 고통과 어려움에 무관심하지 않으며 도움의 손길을
주저하지 않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임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이석재(안드레아) 신부(수원교구 안법 고등학교 교목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