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 땅에 태어나는 걸까요?
"우리는 왜 이 땅에 태어나는 걸까요?"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이지요."
우주 전체가 의미를 지니는 것은 어딘가에 자유를 가진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행성에 사는 미미한 존재에 불과한 인간은 우주에 짓눌려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사랑하면서 죽을 수 있기에 우주보다 위대하다.
사랑이 있기 위해서는 대양과 빙하와 별만으로는 족하지 않으며,
자유로운 존재들이 있어야만 한다.
인간의 자유는 때때로 두려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소멸될 수는 없다.
1949년, 당시 프랑스 국회 상원의원이었던 아베 피에르 신부는
자신의 담당 관할지를 산책하던 중 목을 매고 죽으려는
전직 목수(조르주)를 만난다.
죽으려고 하는 그 사람을 붙잡고 피에르 신부는 "죽는 것은 좋지만,
그 전에 나와 함께 집 없는 사람들 집이나 만들어 주고 나서 죽으라"고
말한다.
목수는 자기보다 더 비참한 상태로 놓여 있는 이들을 도와 그 고통을
나누어 짊으로써 스스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마침내 자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엠마우스 공동체'의
시작이었다.
피에르 신부가 시작한 엠마우스는 현재 44개국에 자리 잡았고
400여 개의 공동체가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가난하지만 궁핍을 뛰어넘어 베푸는 자들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말한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우리도 마음을 담아 나누고 구원을 베푸는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부족한 것이라곤 없는 당신들이
못할 게 뭐가 있는가?"
이것이 엠마우스 운동이다.
조르주는 "신부님께서 제게 돈이든 집이든 일이든 그저 베푸셨다면
아마도 저는 다시 자살을 시도했을 겁니다.
제게 필요한 건 살아가는 방편이 아니라 살아갈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그 후 그는 자신보다 더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을 도우며 살아간다.
절망자에서 구원자가 된 것이다. 엠마우스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타인들 없이 행복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들과 더불어 행복할 것인가.
혼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과 공감할 것인가.
공허한 말에 만족하지 말고 사랑하자.
그리하면 시간의 긴 어둠에서 빠져나갈 때,
모든 사랑의 원천에 다가서는 우리의 마음은 타는 듯 뜨거우리라.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아베 피에르 <단순한 기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