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0일 연중 제15주일
오늘 복음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는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계명은 힘든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계명은 한마디로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합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처럼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 불쌍한 이웃을
도웁시다.
독서 <그 말씀이 너희에게 가까이 있어, 너희가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신명 30,10-14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또 그리스도를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콜로 1,15-20
복음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루카 10,25-37
모세는 백성에게 주님의 말씀은 아주 가까이 너희의 입과 마음에 있기에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다고 한다(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모상이요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로 만물 가운데
으뜸이시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제2독서).
누가 내 이웃이냐고 묻는 율법 교사에게 예수님께서는 이웃에게 자비를 베푼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어 응답하신다(복음).
*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오늘 율법 교사의 질문에서 우리는 인간의 나약함과 두려움을 봅니다.
자신의 삶 안에서 늘 마주치는 불확실성과,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인간의 한계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인간은 이 두려움을 이겨 내려고 하느님을 만나고 싶어 하고,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처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찾던 하느님의 모습은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하느님을 "절대적 타자", 곧 우리와 완전히 다른 분으로 인식했던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그분과의 계약, 곧 율법에 충실함으로써 구원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절대자이신 하느님께 바칠 만한 절대적 충실함은 오히려 인간에게
더 큰 짐을 지워 줍니다.
반면, 우리에게 다가오신 메시아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분이 아니고,
하느님의 모상이시면서 동시에 완벽하게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이제 하느님께 드려야 할 봉헌도 율법 안에서의 완벽함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만나는 이웃들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착한 사마리아인은 비록 무시와 경멸을 당하는 사람이었지만,
종교적으로 거룩한 직분을 가진 이들이 그냥 스쳐 지나갔던
그 가엾은 사람에게 다가가 치료해 주고,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어 쉴 곳을
마련해 줍니다.
모든 것에 앞서 그의 근본적인 선택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매일미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