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사랑 우리 신부님"
새신부일 때 주임신부님이 "어떤 신부가 되고 싶어? 뭐 하고 싶어?" 물으셨고,
저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신자분들 신앙생활하는 데 방해나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축일을 맞이하며,
"착한 목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뛰어넘어 "더 착한 목자"가 되라는 요청을
받는 요즘입니다.
착한 목자란 무엇일까?
난 어떤 신부였나?
몇몇 경험을 떠올려 봅니다.
1. 몇 년 전 신설 본당의 초대 주임신부로 지낼 때의 일입니다.
토요일 오후의 가족 주일미사에 참례하러 온 초등학교 저학년 꼬맹이가
저에게 묻습니다.
"신부님! 신부님 종교는 뭐예요? 불교? 개신교?"
"... 응?"
"난 천주교인데, 우리 집은 다 천주교에요. 신부님도 천주교였음 좋겠다."
2. 어린이 미사 때에 "연예인들은 인기를 먹고 사는데,
신부님은 무얼 먹고 살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원하는 대답은 '기도'였지요.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소주요!"
수도원에 관심이 많았던 중학교 예비 신학생이 며칠간의 수도원 체험을
다녀와서 "전 교구 신부님 될래요"라고 말했습니다.
마음이 변한 그에게 "왜?"라고 물었고, 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거긴 저녁에 치맥이 안 되는데, 신부님은 치맥을 할 수 있어서요."
3. 평일 미사를 마치고 신자분들과 인사하는데, 할머님들이
"신부님은 신부님 같지 않아서 좋아" 하시기에
"왜 제가 신부 같지 않아요?"라고 되물었습니다.
조금은 당황하신 할머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우스워."
4. 한산한 화요일 오전 사무실에서 원고를 작성하는데,
여성총구역장님이 "잠깐만 도와주세요."하기에 따라갔더니 주방이었고,
거기에 매실과 설탕이 커다란 대야에 담겨있었습니다.
"밑에서부터 위로 뒤집어 버무려주세요"란 주문을 받았고,
전 지금 손목까지 설탕을 묻히며 버무리고 왔습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착한 목자와는 거리가 먼,
"소주를 먹고 살아가고 치맥을 할 수 있는 힘쓸 때나 필요한,
천주교 신자였음 하는 우스운 신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족하게 살아가는 저에게 한 신자분이 노래를 선물해 주었는데,
그분은 20번도 넘게 연습했다며 직접 노래를 불러녹음해서 주었습니다.
맑은 기타 반주와 동요풍인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분을 믿어요, 느끼지 못한 그분을 그려요.
메말라가는 마음을 움켜쥐고 조금의 위안을 원해요.
가끔씩 마음이 약해질 때 나의 사랑이 점점 더 바닥날때,
그분의 목소리 듣고 싶어요.
그분과의 만남을 꿈꿨죠.
그래서 그분 대신 오셨나 봐요, 그분의 사랑 가득 안고서,
주님 사랑 우리 신부님!
우리 곁에 와줘서 감사해요, 깊은 사랑 주셔서 고마워요.
신부님은 언제나 우리 신부님!."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처럼 앞날을 준비하고 발전적인 사목이 아닌,
소모되고 소진되는 사목으로 '내몰린다'는 생각이 몰려오는 요즘입니다.
아직도 새 신부 때처럼 착한목자가 무언지 잘 모르겠으나,
'메말라가는 가슴을 움켜쥐며 하느님을 믿고 그리워하며 위로를 바라는
이들에게'여전히 '방해나 하지 말자'는 생각을 다잡습니다.
고갈되고 내몰리는 어려움도 있지만 도구로 쓰인다는 기쁨을 잃지 않게,
하느님이 주신 사제라 불리는 제가 썩어 버려지기보단, 닳아 사라지도록,
기도를 김대건 신부님과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또한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정석현 베드로 신부(평내 협력사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