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게 나누고 베푸는 절제

2016. 3. 1. 오전 6: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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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게 나누고 베푸는 절제

 

 

"재의 수요일 미사를 봉헌하고 집에 들어오는데 남편 요셉이 갑자기 아내 마리아에 게 다짐합니다. '내가 이번 사순 시기 동안만이라도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겠어!' 마리아는 그 다짐이 예뻐 보였지만, 왠지 한숨이 나왔습니다. 이 다짐은 매번 사순시기만 되면 똑같이 반복되는 연례행사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좀 꼭 지켜요!'라는 마리아의 핀잔에 요셉이 큰 소리로 응수합니다. '걱정 마!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순시기 동안 금연할 테니깐!'" 사순 제1주일입니다. 사순 시기가 되면 으레 많은 교우가 위의 상황과 같은 '절제의 다짐'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순 시기는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기 위해 희생과 참회의 삶으로 속죄하는 40일의 시기이기 때문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절제하는 희생을 많이 합니다. 성경에서 '40'의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로 약속의 땅을 찾아 광야에서 보내야만 했던 40년과,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준비했던 40일의 시간, 그리고 엘리야 예언자가 호렙산으로 하느님을 만나러 떠난 40일의 여정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그러나 역시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세례 후 공생활을 준비하시기 위해 광야에서 보낸 40일이 사순 시기의 가장 큰 의미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유혹은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위해 예수님이 공생활 동안 스스로 극복하셔야 할 삶에 대한 유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극도로 배고픈 시간에 악마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돌로 빵을 만들 라.'고 제안합니다. (루카 4,2-3 참조) 인간에게 필요한 가장 원초적인 것에 대한 유혹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활 내내 배고픔의 고통과 싸우셔야 했습니다. 어쩌면 이 유혹은 공생활 내내 당신 친히 경험하셨고 극복하셨던 모습입니다. 그 다음의 유혹은 '악마에게 경배만 하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는 제안입니다. 너무나 달콤한 제안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아마도 예수님의 공생활 내내 회유하고 꼬셨던 모습일 것입니다. 그들 편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권세와 영광을 받을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과감히 그 유혹에서 벗어나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을 시험해 보라는 즉,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보여주라는 제안입니다. (루카 4,9-11 참조). 보여주기만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쉽게 믿을텐데, 왜 이렇게 어렵게 사냐는 한탄의 목소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제안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겨냅니다. 하느님께서 그런 방법을 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당신이 보여주신 모습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겪는 세상에서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보여 주고 계십니다. 바로 그 답은 말씀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 그리고 주님을 위해 절제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사순 시기에 하는 우리의 절제의 다짐을 돌아봅시다. 나의 다짐이 너무나 개인적이고 내적인 모습만은 아닌가요? 물론 이런 다짐도 필요하겠지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절제의 모습은 외적이고 사회적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내가 희생하고 절약하고 절제한 것들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나눔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사순 시기는 많은 교우들이 이웃과 좀 더 많이 나누는 은혜로운 사순 시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이재현 요셉 신부(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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