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먼저 돌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것은 마지막 영성체,
즉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 옮겨가는 여행을 위한 음식인 노자성체이다.
오, 성인들이 노자성체를 늦지 않게, 그리고 가장 좋은 의향으로 받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던가!
성 도미니코 사비오가 중한 병에 걸렸을 때 의사는 곧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말을 하였으나, 그 거룩한 소년은 자기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는 천상의 의사를 뵙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는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다.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대주교의 건강이 악화되자,
주위 사람들은 이를 매우 걱정하여 의사를 부르려고 했다.
이를 알아차린 성인은 그들에게 "여러분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영혼을 먼저 돌보고 난 후에 육신을 돌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성사를 받은 후에야 의사를 부르도록 했고,
그에게 "이제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시지요." 라고 말했다.
영혼이 먼저요, 그 다음이 육신이다.
우리는 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너무도 자주, 아픈 사람을 위해서 의사를 부르는 일에는
온갖 신경을 쓰면서 사제를 모시는 것은 최후의 순간에 가서야 하게 되니,
병자가 의식이 온전한 상태에서 성사를 받을 수도 없고
아예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현명하지 못한 일인가!
만약 사제를 일찍 모시지 못하여 죽어가는 사람의 구령이 위험하게 되고
그가 마지막 순간에 받을 수 있는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답변할 수 있을 것인가!
성 요셉 카파소는 죽어가는 이들, 특히 사형 선고를 받은 이들을 돕는 일에
헌신했던 사제이다.
이 때문에 그는 병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들은 말하기를 "나는 카파소 신부님의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이 순간에 죽는다 하더라도 행복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는 병자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그들의 상태에 대하여 그리고 다가오는
죽음의 위험에 대하여 솔직하고 현명하게 말해주었다.
그는 모든 환자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 즉 죽음까지도 하느님의 뜻에 맡기도록
충고하였다.
성인은 말하기를 "이렇게 함으로써 그 병이 치명적인 것이라면 이미 희생이
봉헌된 것이며, 치유가 되면 그 공로가 남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죽어가는 이에게 노자성체를 모셔가는 일이라면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았다.
이는 그가 연로한 무렵에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노자성체를 모시고 가는데, 아주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만 했다.
어떤 이가 성인에게 "젊은 신부를 대신 보내시지요." 라고 말했을 때
그는 계단의 맨 꼭대기를 쳐다보며 말했다.
"더 높은 계단이라도 올라갈 것입니다
-주님의 향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