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이 무섭지 않은 이유
꽤 오래전 일입니다.
휴일에 동창 신부와 찜질방엘 갔습니다.
찜질방에서 파는 생맥주가 하도 맛있어 보여서 한잔 마셨습니다.
한 잔 마시니 성에 안 차 한 잔 더 마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뜨거운 방에 들어가 땀도 많이 흘리고 잠도 좀 잤습니다.
시간도 제법 흘렀습니다.
그리고 차를 운전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아뿔싸! 경찰이 음주 단속을
하고 있더군요.
덜컥 겁이 났습니다.
머리가 아찔해지고, 심장이 급히 뛰기 시작하고,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괜찮으려니 생각해서 운전대를 잡았는데, 만에 하나 혈중 알코올이 측정되면
감당해야 할 일들에 대한 부담이 갑작스럽게 체감됐던 겁니다.
앞차들이 한 대씩 통과를 하면서 제 차례가 오기까지가 얼마나 길고 복잡하게
느껴지던지요.
이윽고 제 차례가 왔습니다.
경찰 손에 들린 음주 측정기에 '호~'하고 바람을 불었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다행스럽게도(?) 아무 일 없이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박카스만 먹어도 운전 안하는 모범 운전자로 거듭나서 살고
있습니다.
음주 단속 경찰을 볼 때마다 그 일이 생각납니다.
대림 제1주일을 지내는 오늘, 세상 마지막 날에 일어날 일들에 관한 예고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루카21,25~26)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듣고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혹시 무섭고 괴기스러운 말씀으로 느껴지시는 분 계신지요?
단언컨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 마지막 날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은 공포로 우리를 협박하시려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에게 희망과 긍정을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주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선한 의향을 가지고 살아가기만
한다면, 세상 종말은 우리에게 공포가 아닌 희망의 대상입니다.
음주 운전자에게 단속 경찰은 공포의 대상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단속 경찰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사고를 막아주니 고마운 존재죠. 마찬가지로, 주님을 믿고
그분 뜻대로 살고자 애쓰는 우리들에게 '마지막 때'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고마운 약속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대림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는 모든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똑같이 설레는 기다림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때를 기다립니다.
고마운 약속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두려움 없이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야겠습니다.
-김종민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대건카리타스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