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켜보시는 분
'ME VIDIT DEUS!' 라틴어 경구로 '하느님이 나를 지켜보신다.'는 뜻입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 굵은 펜으로 종이에 써서 책상 머리맡에
붙여놓았습니다.
어느 책에서 발견한 구절인데 오랜 기간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어렵고 지칠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면 힘이 솟았습니다.
할머니께선 어린 제 손을 잡고 불광동 고갯길을 넘어 성당에 다니시곤
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나의 하느님께서는 늘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바라보는 분이셨습니다.
학창시절 제 기도의 대부분은 '함께 계시면서 나를 지켜봐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대학입학 후 그분의 말씀을 담은 성경을 묵상하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넘겼습니다.
한 평 반짜리 고시원 쪽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는 여의도본당
창세기 성경공부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법시험을 앞두고서도 시간을 쪼개어 성경체험을 나누고 나면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합격 후 사법연수원 시절, 홀로 찾아간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는
기도하고 일하면서 읽은 성경 구절 속에서 제가 가야 할 길을 찾았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마태 6,31-33 참조)
그 해 명동성당에서 견진성사를 받으며 7가지 성령의 은사 중
'바른 의견'을 간구했습니다.
검사가 된 후에는 범죄를 단죄하는 숨 가쁜 일과 속에서 하느님 이외의
많은 눈을 마주 보아야 했습니다.
사체(死體) 없는 살인사건처럼 물증 없는 사건을 수사하거나,
범인과 피해자의 진술이 엇갈릴 때는 진실을 찾기 위해 밤늦게 까지
책상 앞에 마주 앉아 씨름해야 했습니다.
큰 경제사건이나 거대 집단의 수장(首長)에 대해 수사할 때면
국민의 매서운 시선을 느낍니다.
선배들은 '내가 처리하는 사건에서 억울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생기지 않도록 하라,
훗날 후배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처신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집안에 순교자 네 분을 두신 선배검사는, 중요사건을 수사할 때면
신앙을 위해 피를 뿌리신 선조들을 뵙는 날 고개를 들 수 있기 위해
애쓴다고 하였습니다.
만고(萬古)에 처량한 이름이 되지 않도록,
숨겨진 진실을 있는 대로 밝혀내는 것이 검사의 숙명입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져 밟힐 따름입니다.(마태 5,13)
많은 검사와 수사관들이 검찰을 지켜보는 눈길을 생각하며 땀방울을
흘립니다.
오늘도 '보시기에는 미흡할지라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성의와 정성을 다하자'고 다짐하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되새깁니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거짓이 있는 곳에 진리를, 어둠에 빛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봉욱 바오로 (법무부 법무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