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지덕

2015. 12. 4. 오전 6: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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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지덕

 

 

세례자요한의 삶을 묵상해 보면 세례자 요한의 삶은 한 마디로 표현해서 '팍팍하기 그지없는' 삶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참으로 재미없는 삶이었겠지요. 그는 도시의 삶을 뒤로한채 황량한 광야로 나아가 그곳에서 홀로 살았습니다. 풀 한포기 없는 광야, 끝도 없이 펼쳐진 하늘과 땅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메뚜기와 들꿀을 먹어가며 쓸쓸하고 고독하게 살았습니다. 검소하게 살았다, 는 말 자체가 죄송할 정도로 극한 가난을 살았던 분입니다. 이렇게 세례자 요한은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오시는 예수님께로 주파수를 맞췄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삶을 한평생 추구했습니다. 당시 세례자 요한은 군중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그를 큰 스승으로 여겼지요. 세례자 요한의 인기는 당시 절정을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크게 추앙받았던 그였지만 그는 한없이 작고 겸손한 자리만을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세사의 전면에 등장하시자 즉시 이렇게 증언하며 크게 물러섭니다. "나는 그 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고 말입니다. 신발 끈을 묶고 푸는 일은 당시 노예들이 일상적으로 하던 일이었다고 합니다. 노예들은 주인 가족들을 위해서 하루 수십 번도 더 신발 끈을 묶고 풀었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신발끈 조차 풀어드릴 자격이 없다고 하니.. 자신을 노예보다 더 낮춘 것이겠지요? 세례자 요한이 조금이라도 덕이 덜 닦인 사람이었더라면, 선구자로서의 삶의 준비가 부족했더라면 백성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당시 자신에 대한 높은 지지율을 바라보며 착각에 빠질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는 파견된 자로서 자신의 소명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사 뿐 아니라 신앙생활에서도 연륜과 직함이 쌓이면 우리는 하느님보다 나를 앞세우기가 쉽습니다.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례자요한과 같은 훌륭한 신앙의 모범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까? 출중한 내 능력도.. 나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라고 하느님을 앞세우고, 나는 조용히 물러날 수 있는 마음.. 세례자요한을 통해 겸손지덕을 배우는 신앙인이 되어야 될것입니다. -주님의 향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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